[횡설수설/송평인]임시정부의 대한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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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새해가 되면 나라에서 반드시 내놓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책력(冊曆)이다.
책으로 된 달력을 말한다.
조선에는 관상감(觀象監)이라는 정부기관에서 관력(官曆)을 발행했다.
조선은 농업 중심 사회였으므로 절기,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 삭망(朔望·음력 초하루와 보름)과 상하현(上下弦·반달)의 일시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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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도 1911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민력(朝鮮民曆)을 간행했다. 민력이라고는 했지만 편제의 주체는 조선총독부였다. 조선민력에 대항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낸 달력이 대한민력(大韓民曆)이다. 기미독립선언으로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한 이상 주체적인 달력을 내는 것은 임시정부의 당연한 임무로 여겨졌다. 대한민국 2년(1920년) 달력이 발견됐다. 임시정부가 출범한 것이 1919년 10월이므로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발행 달력이다.
▷현대인에게는 한 주가 7일이지만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낯선 개념이었다. 프랑스 혁명력은 한 주를 10일로 만들었다. 한 달은 3주가 된다. 각 30일로 이뤄진 12개월 후에 5일로 이뤄진 축제주간이 덧붙여진다. 소련의 스탈린은 한 달을 5일 단위의 주 6개로 구성했다. 토·일요일은 사라지고 노동자는 회사마다 5분의 1씩 돌아가며 쉬었다. 당시로선 자본주의보다 노동시간이 짧아졌지만 공통의 휴일은 없어졌다. 지배하는 자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지배하려 한다.
▷대한민력은 조선민력과 달리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일본의 표준시가 아니라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경성(서울)의 표준시를 채택했다. 조선민력의 일왕 생일 대신 단군 개천절과 독립선언일을 기념일로 내세웠다. 공간은 비록 일제에 빼앗긴 상태지만 우선은 시간만이라도 우리의 시간을 되찾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1945년 다시 우리의 공간까지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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