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를 보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엠블럼 크기가 점점 커지는 걸 볼 수 있다. 렉서스의 스핀들 그릴, BMW의 키드니 그릴, 현대자동차의 캐스캐이딩 그릴 등이 좋은 예다. 모두 보행자 안전규정과 관련이 있다. 엄격한 규제 때문에 차 앞부분의 생김새가 비슷해지고 있고, 제한된 공간 안에 캐릭터를 강조하려다보니, 거대한 그릴과 엠블럼으로 개성을 살리고 있다.

반면, 보닛 위에 우뚝 솟은 엠블럼은 사라진 지 오래다. 후드 오너먼트(Hood Ornament)라고도 부른다. 초기엔 라디에이터 캡의 과열 여부 판단할 온도 측정기로 시작했다. 일부 제조사는 운전자가 보기 쉽도록 라디에이터 뚜껑을 위쪽으로 솟아오르게 빚었다. 여기에 부가적인 장식을 더하면서 하나의 상징처럼 쓰기 시작했다. 국산차 중엔 현대 에쿠스와 쌍용 체어맨 등이 화려한 날개 장식을 달고 남다른 ‘품격’을 뽐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보행자 안전규정을 이유로 자취를 감췄다. 충돌 시 보행자의 가슴과 복부, 장기 등에 심각한 상해를 입힐 수 있어서다. 오리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던 범퍼가 지금처럼 매끈하게 변한 이유도 비슷하다. 보행자의 다리 등에 더 큰 부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재규어가 대표적이다. 동물 재규어 형상을 축소한 ‘리퍼(Leaper)’를 보닛 위에 장식처럼 달았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보행자 안전규정을 이유로 없애고, 지금처럼 라디에이터 그릴 안에 동그란 엠블럼을 붙이고 있다. 현대 에쿠스 역시 제네시스 EQ900으로 거듭나며 날개 오너먼트를 없앤 바 있다. 쌍용 코란도의 코뿔소 장식도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도로에 나가면, 후드 오너먼트가 없는 ‘요즘 차’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별도로 부착해 다니는 차를 볼 수 있다. 특히 택시의 경우 예전 그랜저 XG 등에 썼던 뾰족한 장식을 붙이는 사례가 많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본넷 후드 엠블램’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이 2만~3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설상가상 예전처럼 보닛을 뚫어 고정하는 방식이 아닌, 양면테이프로 부착하는 방식이다. 접착면이 느슨해져 주행 중 날아간다면, 주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문제는 법적 규제다. 신차의 경우 안전규정을 통해 후드 오너먼트 부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출고된 차가 사제로 부착하는 경우 처벌할 방법이 없다.

신차 중에도 지금까지 후드 오너먼트를 붙이는 차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롤스로이스 팬텀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충돌 시 엠블럼이 보닛 안으로 순간적으로 숨거나, 뒤로 젖힌다. 보행자 상해를 줄이기 위한 묘안이다. 그러나 사제로 붙이는 후드 오너먼트는 끝이 뾰족해 보행자 충돌 시 장기 손상까지 줄 수 있다.
즉, 판매자도 문제지만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로 붙이는 운전자도 문제다. 내 차의 품격이 상승하는 것도 좋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부착을 삼가야한다.
<재미있는 후드 오너먼트 역사>
① 링컨의 그레이하운드

보닛에 개를 붙인 제조사도 있었다. 1922년, 헨리 포드는 위기에 빠진 링컨을 인수했다. 이후 링컨에 새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독특한 장식을 고안했다. 바로 그레이하운드다. 시속 70㎞로 달릴 수 있는 개다. 길고 얇은 꼬리, 270°의 시야, 근육질 체형으로 무장한 게 특징이다. 링컨은 이 오너먼트를 1930년대에 썼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둘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 했다. 갈 곳 잃은 그레이하운드는 포드로 건너와 당시 V8 심장 품은 모델 48의 보닛 위에 새 둥지를 틀었다.
②쌍용자동차 코뿔소

20세기 쌍용자동차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코뿔소 장식을 기억할 듯하다. 쌍용차의 코뿔소 사랑은 남달랐다. 거대한 뿔로 묵직하게 달리는 모습에 푹 빠졌을 테다. 첫 번째 코뿔소 엠블럼의 주인공은 1세대 코란도다. 코란도는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의 줄임말로, 미국 AMC의 기술지원 없이 우리나라도 걸출한 사륜구동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쌍용차는 1993년 부분변경 거친 코란도에 처음으로 코뿔소 장식을 달았다.

두 번째 주인공은 무쏘다. 코뿔소 특유의 단단하고 듬직한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무쏘 초창기 모델엔 코란도와 같은 엠블럼이 들어갔지만,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무쏘스포츠 모델에 코뿔소 평면 엠블럼을 붙이면서 ‘코뿔소 사랑’을 이어갔다. 아쉽지만 현재 렉스턴 스포츠 등엔 코뿔소 장식이 없다.
③에쿠스의 날개

국산 최고급 세단 현대 에쿠스도 멋진 날개 장식을 뽐냈다. 그레이하운드처럼 표정이나 몸짓을 섬세하게 표현하진 않았다. 그러나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단순화해 에쿠스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④롤스로이스 환희의 여신

현존하는 가장 멋진 오너먼트를 꼽으라면 단연 롤스로이스의 ‘환희의 여신(Sprit of Ecstasy)’이다. 1900년대 초, 당시 영국 귀족 가문의 자제이자 롤스로이스의 대주주였던 존 월터 에드워드(John Walter Edward Douglas-Scott-Montagu)가 영국의 조각가 찰스 로빈슨 사익스(Charles Robinson Sykes)에게 여신 제작을 요청했다고. 이후 1911년 실버 고스트부터 들어갔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부턴 모든 장식에 도난 방지 기능을 심어, 도둑질을 원천봉쇄했다.
글 강준기 기자|사진 각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