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한의 애묘일기] 벚꽃의 꽃말은 고양이
벚꽃 필 무렵, 시골 고양이의 꽃놀이
살랑이는 벚꽃 가지에 동요하거나 벌을 좇거나

내가 사는 시골에선 벚꽃이 필 때면 고양이들이 나무에 올라 꽃구경을 한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초등학생 아들이 묻는다. "아빠! 벚꽃의 꽃말이 뭐야?" 아들의 돌발 질문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응, 벚꽃의 꽃말은 고양이야." 아들은 엄청난 사실이라도 발견한 듯 엄마에게 달려가 호들갑을 떤다. "엄마! 벚꽃의 꽃말이 뭔지 알아?" "몰라, 뭔데?" "응, 고양이야!" 점심으로 쑥국을 끓이던 엄마는 웃고, 덩달아 아들도 웃는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벚꽃의 꽃말은 고양이가 되었다.
계절은 어느덧 꿈꾸기 좋은 봄이다. 고양이들도 마루에서 나른한 잠에 빠져 사료 꿈을 꾸는지 가끔 입을 실룩거리고 앞발을 까딱거린다. 간지러운 봄 햇살 속에서 어떤 고양이들은 한껏 기지개를 켜고 겨드랑이를 턴다. 몇몇은 장독 뚜껑에 고인 감로수(밤새 이슬이 내려 만들어진)를 천천히 음미한다. 계곡에는 벌써 생강나무가 부숭한 꽃망울을 잔뜩 피워 올렸다가 노랗게 져버렸다.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이 질 무렵이면 이제 산벚꽃이 꽃불 번지듯 봄 산을 물들인다. 생강나무꽃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양이들도 만개한 벚꽃 앞에서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어떤 고양이는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벚꽃 가지에 덩달아 마음이 설레 서둘러 벚나무에 오르고, 어떤 고양이는 아예 벚꽃 핀 나무에 올라앉아 바쁠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그루밍까지 한다.
벚나무에 오르는 목적이 다른 고양이도 있다. 턱시도 녀석은 제사보단 잿밥에 관심이 있었는데, 꽃구경을 하러 나무에 오른 것이 아니라 벚꽃 사이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을 잡아볼 요량으로 벚나무에 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보아도 벌이 잡히지 않자 녀석은 자포자기, 나무 위에서 별 감흥도 없이 꽃구경을 하는 거였다.
꽃보다 잠이 필요한 고양이들도 있다. 고등어 한 녀석은 왜 힘들게 나무까지 올라가느냐며 벚꽃 지는 그늘에 앉아 까무룩 꽃잠을 잔다. 봄에는 잠이지, 하면서. 하지만 의도치 않게 고양이의 옆구리며 이마에는 흩날리던 벚꽃이 내려앉아 잠자는 꽃냥이가 되어간다.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는 툭툭 꽃잎을 털고 도로 잔다.

사실 벚꽃이 필 때면 벚꽃과 어울린 고양이 사진을 찍어보려고 갖은 노력을 해보지만, 맘에 드는 사진을 찍은 적이 별로 없다.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벚꽃과 어울린 고양이는 그 자체로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역시나 벚꽃의 꽃말은 고양이다.

◆ 이용한은 10년은 여행가로 또 11년은 고양이 작가로 살았다. 199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고, 이후 고양이의 영역을 떠돌며 고양이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 저서로는 ‘안녕, 후두둑 씨’, ‘당신에게 고양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등이 있으며,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의 제작과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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