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페달은 거들 뿐, 쉐보레 볼트 EV

최근 눈물을 머금고 클러치 페달 없는 차로 자가용을 바꿨다. 덕분에 왼발이 심심한 상황. 그런데 쉐보레 볼트 EV는 한 술 더 뜬다. 가속 페달 하나만으로 가속은 물론 제동까지 겸한다. 제목 그대로 제동 페달은 그저 거들 뿐이다. 제주도에서 브레이크 페달 사라진 미래를 엿봤다.

글 윤지수 기자, 사진 쉐보레, 윤지수

이름하여 ‘원페달 드라이빙.’ 가속 페달 하나로 가·감속을 모두 아우른다는 뜻이다.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페달을 많이 밟으면 가속, 중간쯤 유지하면 항속, 페달을 떼거나 조금 밟으면 제동이다. 이때 브레이크 쓰지 않고 전기 발전 저항만으로 속도를 줄인다. 결국 최대한 에너지를 회수해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시승에 앞서 간략 소개부터. 볼트 EV는 골격부터 전기차만을 위해 만든 본격 소형 전기차다. 60kWh 대용량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 한 번 충전으로 최대 383㎞를 달릴 수 있다. 또 204마력 최고출력으로 7초 안에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성능을 품는다.

출발지에 도열한 쉐보레 볼트 EV(왼쪽)와 출발 직전 계기판(오른쪽)

시승 코스는 제주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라산 1100고지를 가로지르는 코스다. 출발 전 살펴본 주행가능거리는 301㎞. 본격적인 회생 제동으로 배터리를 얼마나 아낄 수 있을까? 볼트 EV에 앉자마자 변속기를 ‘L(Low)’로 당겨 원페달 드라이빙 기능을 켰다. 참고로 일반 ‘D(Drive)’ 모드에서는 일반 차처럼 페달을 뗐을 때 저항이 심하게 걸리지 않는다.

볼트 EV 실내(왼쪽)와 'D'아래 'L'모드가 들어간 전자식 변속 레버(오른쪽)

처음은 다소 어색하다. 습관적으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급하게 속도가 줄어 몸이 쏠린다. 마치 내연기관 차 저속 변속기어 물린 상태에서 엔진브레이크 거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보다 더 어색한 이유는 페달을 떼는 순간 즉각 속도를 줄이지 않고 조금 머뭇거린 후 저항을 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주의하며 페달을 조절해야 한다. 그 시간은 짧지 않다. 몇 번 울컥거리다 보면 금세 능숙하게 페달 하나로 제동을 조율할 수 있다. 페달을 모두 뗐을 때 제법 빠르게 속도가 줄기 때문에 불안감도 적다. 물론 완전히 멈출 때까지 속도를 줄이며, 정지 후엔 알아서 뒷바퀴를 잠가 밀림을 방지한다. 참고로 ‘L’ 모드에서 주행 중 가속 페달을 모두 뗐을 때 역방향 G 포스(중력가속도)는 약 0.22다. 일반 자동차 평균 제동 0.15보다 강하다.

시내를 통과해 본격적으로 한라산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흥미롭게도 원페달 드라이빙은 코너에서 더욱 빛났다. 코너에 진입할 때 페달에서 힘을 빼 앞쪽에 무게를 싣다가, 서서히 다시 밟아 코너 정점에서 가속을 시작한다. 그 과정이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오가는 일반 차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더욱이 즉각 최대토크를 끌어내는 전기 모터 덕분에 코너 탈출 재가속도 빠르다.

쉐보레 볼트 EV 보닛

볼트 EV는 오르막길을 힘차게 올랐다. 어느 속도에서건 36.7㎏·m 최대토크를 끌어내, 속 시원하게 달린다. 그러나 그만큼 계기판 속 잔여 주행가능거리는 뚝뚝 떨어진다. 오르막길에서는 코너 진입 전 말고는 속도를 줄여 충전할 틈이 없기 때문. 1,620㎏ 무게도 무시할 수 없다.

1100고지에서(왼쪽), 1100고지에 올랐을 때 잔여 주행가능거리 

그렇게 해발 1,100m 1100고지에 올랐다. 세상에, 주행가능거리가 216㎞밖에 남지 않았다. 겨우 23.5㎞를 달리면서 출발할 때 주행가능거리 301㎞에서 85㎞나 줄어들었다. 배터리 잔량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으로 앞으로 제주도 남쪽 해안도로 목적지까지는 내리막과 평지밖에 남지 않았다.

꼬불꼬불 내리막길에서는 모터 저항을 적극 활용했다. 페달을 조율해 지나치게 속도가 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다. 내리막길에 저단 기어를 물리는 내연기관 차 엔진브레이크와 비슷하지만, 선형적으로 저항을 조율할 수 있어 훨씬 부드럽다. 물론 rpm 치솟는 거친 엔진 소리 들려올 일도 없다.

그러나 내리막길인 만큼 모터 저항만으로는 코너 진입 전 감속이 다소 부족할 때도 있다. 이때는 운전대 왼쪽 패들시프트 위치에 자리 잡은 버튼을 당기면 ‘온 디맨드 리젠 시스템’이 켜져, 저항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딸깍이는 방식이 아닌 당기고 있어야 하는 버튼으로, 당기는 시간에 따라 저항이 점점 올라간다. 이때 제동 G 포스는 약 0.3까지 늘어난다. 이 정도로도 부족한 상황엔 결국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한라산 고갯길을 빠져나올 즈음 주행가능거리는 289㎞였다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잊은 채 내려오니 계기판 속 주행가능거리는 반등을 시작했다. 더욱이 내리막길이 길어지면서 주행 환경 변화에 따른 값도 계산하는 모양. 한라산 고갯길을 빠져나올 즈음 주행가능거리 289㎞에 달했다.

남쪽 해안도로 목적지에서 잔여 주행가능거리는 296㎞였다

이어 평지를 지나 남쪽 해안도로까지 ‘L’ 모드를 유지한 채 서서히 내려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잔여 주행가능거리는 296㎞. 주행가능거리 301㎞에서 출발해 산을 넘어 56.3㎞를 달려왔는데 주행가능거리가 단 5㎞밖에 줄지 않았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볼트의 꾐에 넘어가면 안 된다. 내리막과 평지가 이어지다 보니, 차가 주행 패턴을 파악하고는 주행가능거리를 멀찍이 표시해버렸다. 배터리 잔량은 가득 찬 상태에서 출발해 1100고지에서 총 20칸 중 4칸이 줄었고, 남쪽 해안에 도착했을 때에도 4칸이 줄어든 상태였다. 즉, 내리막에서 에너지를 회수해 평지와 신호 대기 중 소모하면서, 1100고지에서부터 남쪽 해안도로까지는 에너지 소모 없이 내려온 셈이다.

첫 출발지에 돌아왔을 때 주행가능거리는 191㎞로 줄어들었다

다시 되돌아오는 길은 동료 기자가 운전했다. 주행가능거리 294㎞(촬영 중 2㎞ 소모)로 출발해, 되돌아온 첫 출발지에서 191㎞로 마감했다. 배터리 소모량은 총 20칸 중 8칸을 소모했다. 총 주행거리는 118.7㎞. 첫 출발지 예상 거리였던 301㎞ 정도의 평범한 효율이다. 그러나 해발 1,100m를 오르내린 코스를 감안하면, 원페달 드라이빙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원페달 드라이빙. 처음엔 장난감 차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주행은 예상외로 편했고, 내연기관 차 브레이크 밟을 때보다 장점도 많았다. 특히 적극적인 에너지 회수가 강점이다. 다가올 전기차 시대에 미래가 밝은 셈. 우리네 발밑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클러치 페달에 이어, 다음 타자는 브레이크 페달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쉐보레 볼트 EV 가격은 4,593만~4,814만 원이다. 지난 3월 14일 2019년형 볼트 EV 국내 고객 인도를 시작했다. 국고 보조금은 최대 금액인 900만 원을 지원하며, 지자체별로 최소 45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