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23 바르사 공인 올타임 레전드 스토리 上

(베스트 일레븐=바르셀로나/스페인)
스페인, 더 정확히는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곳이다. 아름다운 풍경,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혼이 담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등 볼거리가 풍성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축구팬들에게는 더 친숙한 곳이다.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세계적 축구 스타들이 몸담은, 그리고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이 한번쯤 몸담고 싶은 ‘이상향 클럽’ FC 바르셀로나의 연고지이기 때문이다.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모토를 가진 이 팀의 홈구장 캄 노우는 전 세계에서 몰려 든 축구팬들의 성지 순례로 늘 붐빈다.
그런데 이 캄 노우 정문 앞에 위풍당당한 포스를 풍기며 힘차게 볼을 킥하려는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리카르도 사모라·주제프 사미티에르·루이스 수아레스·요한 크루이프·호마리우·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히바우두·사비·카를로스 푸욜 그리고 지금의 메시에 이르기까지, 워낙 많아 쭉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 바르셀로나의 스타 계보에서 현지팬들로부터 가장 중요한 레전드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보통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을 확립했다는 이유로 요한 크루이프를 바르셀로나 레전드 중 첫 손이 꼽을 이들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1999년 바르셀로나 현지 팬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그 크루이프마저 발밑에 둔 역대 최고 레전드다. 그리고 현지 팬들의 이 생각은 옳다. 그 크루이프도, 이 동상의 주인공이 탄탄히 다진 밑바탕이 아니었다면 아예 바르셀로나와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를 주름잡았던 헝가리 폭격기 라슬로 쿠발라의 이야기다.

바르셀로나가 꼭 품은 ‘난민’ 출신 스타
1950년대를 중심으로 활약했기에 덜 알려진 선수다. 동 시대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던 ‘큰 별’ 알프레드 디 스테파노나 푸스카스 페렌치와 같은 선수들은 훗날 재조명되며 전설 중 전설로 꼽히지만, 이 쿠발라는 정말 마니아가 아닌 이상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월드컵과 ‘매직 마자르’에서 활약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같은 헝가리 출신 공격수 푸스카스나 코츠시스 산도르와 비교해도 한국 내 명성은 떨어진다. 적어도 절대 강자이자 ‘스타 군단’이었던 1950년대 헝가리의 핵심 멤버였다면 이 정도로 덜 알려지진 않았을 것이다.
부다페스트 혈통이긴 해도, 폴란드·슬로바키아 혈통의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딱히 조국관이 강하지 못했던 탓이다.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 즉 세계 시민으로 자처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1949년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헝가리를 스스로 탈출했다. 트럭 짐칸에 몸을 숨겨 헝가리를 벗어났다는데, 이 때문에 헝가리축구협회(MLSZ)가 FIFA에 제소하는 등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쿠발라는 ‘난민’ 신세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축구 선수 경력을 잇기 위해 1950년 헝가리 난민 출신 팀인 ‘헝가리아’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스페인을 떠돌면서 친선 경기를 이어갔는데, 이때 바르셀로나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RCD 에스파뇰을 상대로 폭발적 득점력과 환상적 개인기, 그리고 축구팬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는 쇼맨십 등 축구 스타로서 모든 기질을 가진 쿠발라에 매료됐다.
사미티에르 당시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쿠발라를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일화를 소개한다. 본래 쿠발라는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먼저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사미티에르가 도중에 끼어들어 바르셀로나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에 의해 영어식 FC(Football Club)가 아닌 카스티야식 CF(Club de Futbol)이라는 이름으로 개칭을 당했을 정도로 중앙 정부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이긴 하지만, 이때는 쿠발라를 영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사미티에르는 자신의 협상력을 발휘해 프랑코 정권의 동의를 얻어 레알 마드리드로 갈 뻔했던 쿠발라의 행선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너무도 혐오했던 프랑코 당시 스페인 총리는 공산주의가 싫어 헝가리를 탈출한 쿠발라의 이야기를 프로파간다 영화로 만드는 조건을 내세웠고, 사미티에르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바르셀로나에 입단시킬 수 있었다. 입단 후에도 문제였다. 헝가리축구협회가 FIFA를 움직여 쿠발라에게 1년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상태였다. 이 때문에 쿠발라는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고도 공식전에 나설 수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선수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쿠발라에 관해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미티에르와 바르셀로나는 그마저도 감내했다. 이 선수가 클럽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은 것이다. 그 믿음은 옳았다.

전설의 5관왕 팀, 그중에서 선봉은 쿠발라
1951년 족쇄가 풀려 정식으로 바르셀로나의 일원이 된 쿠발라는 장기인 화려한 드리블과 강력한 슛, 특히 정교하기가 이를데가 없었던 프리킥을 앞세워 데뷔 시즌부터 팀에 라 리가 우승을 안기며 당시 안방이던 레스 코르츠를 메운 꾸레들을 열광케 했다. 라 리가 우승 정도가 아니라. 1951-1952시즌 한 해에만 바르셀로나에 다섯 개의 공식 대회 트로피를 안겼다.
이는 훗날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시즌 6관왕을 얻기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 우승 횟수다. 이 전설적인 성과를 낸 탓에 당시 바르셀로나는 지금까지도 ‘5관왕 팀(Las Cinco Copas, 영어로 The Five Cup Team)’이라 불렸다. 당시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세자르 로드리게스·조르디 빌라·토마스 모레노·에두아르도 만촌 등 바르셀로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레전드 공격수들이 활동했는데, 그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가 바로 쿠발라다.
그리고 카탈루냐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의 존재감은 단순히 축구 선수에 그치지 않는다. 단적 예가 있다. 2012년 카탈루냐 방송인 TV3에서는 ‘쿠발라, 모레노, 그리고 만촌(Kubala Moreno i Manchón)’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크게 히트를 치기도 했다. 줄여서 KMM이라고도 불렸다는데, 이 드라마는 ‘5관왕 팀’과는 관련없다. 축구가 아닌 범죄 수사와 추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 정확히는 성(姓)만 ‘5관왕 팀’에서 따온 것이다. 이 드라마를 언급한 이유는, 이 드라마 제목을 통해 반백년 전의 축구 선수들이 카탈루냐 사회에 얼마나 친숙하고,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들은 전설 중 전설로 추앙되고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그 전설의 팀에서 간판은 바로 쿠발라였다.

“디 스테파노? 버려. 우리에겐 쿠발라가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쿠발라에 대한 애정은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이적 사가’로 불리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분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디 스테파노는 1953-1954시즌을 앞두고 바르셀로나로 갈 뻔했다. 그러나 종국에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으며, 이후 당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의 올타임 레전드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 독재 정권의 힘을 빌어 디 스테파노를 강탈하겠다는 주장을 하나, 엄밀히 말하면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리버 플레이트·미요나리오스(콜롬비아 클럽) 등 네 개 팀에 스페인 정부·스페인축구협회(RFEF), 심지어 FIFA까지 엮인 대단히 복잡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디 스테파노의 소유권이 리버 플레이트와 미요나리오스에 나눠져 있던 탓에 이중계약 파문이 일었고, 이 과정에서 바르셀로나가 공들여 영입하려 했던 디 스테파노를 놓쳤다.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아예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혀놓았던 특급 스타를 빼앗겼으니, 바르셀로나 처지에서는 두고두고 분통이 터질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디 스테파노 이적 사가의 결론은 엄밀히 따지면 바르셀로나가 선수를 빼앗긴 것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복잡한 이중계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스페인 정부와 스페인 축구협회가 궁리 끝에 내놓은 정확한 결론은 계약 기간 4년간 디 스테파노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매 시즌 번갈아 뛰는 것이었다.
디 스테파노가 자신의 선수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모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는데, 이때 바르셀로나가 디 스테파노를 포기했다. 바르셀로나는 지금도 박물관을 통해 ‘프랑코주의자들의 이상한 결론’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으나, 엄밀히 2년이라도 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다버린 건 그들 스스로였던 것이다.
결코 쉽지 않았을 이런 포기가 가능했던 이유, 바로 쿠발라였다. 이미 쿠발라와 같은 대스타를 가지고 있었던 바르셀로나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과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디 스테파노에게 더는 끌려 다닐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말인즉슨, 만약 쿠발라 같은 선수가 없었더라면 바르셀로나는 끝까지 이 분쟁을 지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쿠발라를 향한 바르셀로나의 믿음이 크고 거대했던 것이다.

-下편으로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