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곰돌이푸' 한마디에 쫄딱 망한 게임

나비 효과가 아니라, 푸 효과가 시작됐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환원이 판매되고 있던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의 상품 페이지에 평점 테러를 시작했습니다. 서슬 퍼런 악평도 줄줄이 달렸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게임 속에 정치적인 메시지, 다른 나라의 지도자를 희화화한 문구를 삽입한 게임사를 맹비난했습니다. 곰돌이 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지만, 중국에서는 해리 포터 세계의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는 무언가'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한때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푸의 둥글둥글한 외모를 시진핑에 빗대 간접적으로 풍자·비판하자 당국이 철저한 검열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환원을 만든 인디게임 제작사 레드캔들게임스는 즉시 패치를 통해 문제의 이미지를 삭제하고 긴급 사과성명을 냈습니다. 게임사 측은 "아트 담당 직원이 인터넷에 떠도는 밈(meme·일종의 짤방)을 몰래 사용한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출시 전에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태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스팀에서의 게임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에서 '극도로 부정적'으로 곤두박칠쳤습니다. 세계 각국 배급사와의 계약도 해지됐고 계약 내용에 따라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한 불이익을 배상하게 됐습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의 동영상도 신고 누적으로 삭제됐고, 홈페이지도 마비됐습니다. 결국 게임사는 26일 스팀에서 환원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문제의 문구가 발견된 지 단 3일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환원은 레드캔들게임스가 2015년 창업 이후 내놓은 첫 작품 반교(返校: Detention)가 평단과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은 뒤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었습니다. 그만큼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중국에서도 게임 스트리밍 사이트와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소개될 정도였죠. 하지만 시진핑을 희화화한 이번 사태로 인해 환원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이번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support_redcandle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레드캔들게임스에 대한 응원 메시지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네티즌들의 평점 테러를 놓고 '당국의 사상 검증에 대비한 인민들의 생존(?) 전략'이라는 '웃픈' 해석도 나왔습니다.

◆로널드 럼프 대통령을 지켜라!
창작 작품 속에 일국의 지도자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아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특히 만화나 게임 같은 하위문화 콘텐츠에는 사회의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속성이 내재된 덕분에 지도자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더 적나라하게 담기곤 했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는 2016년 미국 대선을 한 달 앞둔 10월 출시된 인디 게임입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은 게임 개발자 X가 만든 이 게임의 내용은 주인공인 경호원을 조작해 대통령 후보 암살을 막는 겁니다. 내용만 들어서는 애국충정이 넘쳐 흐르는 게임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속 대통령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꼭 빼닮은 '로널드 럼프'라는 인물이기 때문이죠. 조작이 어려워 럼프 후보가 죽는 모습을 수없이 경험해야 하는 점만 봐도 개발자의 의도가 전해집니다.
럼프일 뿐 트럼프가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지만 영 의심스럽습니다. 유세장 곳곳 돈다발을 쌓아놓을 정도로 부자인 데다 멕시코 국경엔 장벽을 쌓고 이민자를 내쫓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는 고문 합법화 연설을 합니다. 럼프 후보는 루틴(푸틴이 아닙니다)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함께 춤추고 키스하고 엎드려 뻗쳐 기합을 받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총격에 의해 사망할 경우 찬연한 금발 가발만 남긴 채 뒤로 날아갑니다. 탈모인을 놀리지 않는 성숙한 문화가 그리울 따름입니다.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게임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농구게임 NBA JAM(1994)에 아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동반 출연해 선수로 활약합니다. 동명의 아케이드(오락실) 게임을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이식한 이 게임에는 앨 고어 전 부통령도 등장했었죠. 클린턴 내외가 높은 인기에 힘입어 게임 캐릭터에 이름을 올렸다면, 부시 전 대통령의 등장 배경은 다소 불명예스럽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이라크 순방 당시 이라크인 기자인 문타다르 알 자이디가 자신에게 신발을 투척한 사건을 소재로 한 플래시 게임에 등장했습니다. 신발을 던져 부시를 맞추는 게임도, 부시의 입장에서 날아오는 신발을 피하는 게임도 있었죠.

자국 대통령만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1993년작 코미디 영화 '못 말리는 람보'에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을 악당으로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두 번이나 사망하죠. 한 번은 영화 터미네이터2의 T-1000처럼 얼어붙어서, 두 번째는 피아노에 깔려서요.

◆금기를 깬 정치풍자의 금자탑 'YS는 못말려'
한국 정치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거목,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영욕와 공과를 이 자리에서 다시 헤아릴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1993년 출간된 정치 유머집 'YS는 못말려'(장덕균 지음, 미래미디어)의 존재 의의는 분명합니다. 이 책은 독재정권의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통령을 마음껏 풍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증거이자 상징입니다.
"국민연금? 안 된다. 내가 야당 시절 가택연금을 당해봐서 아는데 국민을 연금시키면 국민들이 싫어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들고 일어날기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첫 풍자 유머집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출간 3주 만에 20만부 이상 팔렸고 총 50만부 판매 기록을 달성했죠. 취임 이후 잇단 개혁·부정부패 청산 행보를 통해 지지율 83%를 기록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게임북 'YS는 내 친구'부터 비디오 게임 'YS는 잘 맞춰' 등 대통령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김영삼을 주인공으로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등 한국 현대정치사를 무협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간 '대도무문'(사마달·유청림 펴냄, 도서출판 천마)은 현실 정치인들의 캐릭터와 배경을 적당히 패러디하면서도 당시 유행하던 무협소설의 기본 요소를 충실히 따른 작품입니다. 실제로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하죠. 물론 주인공 곡운성(김영삼)에 대한 지나친 미화 등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지만, 가상의 무림과 현실의 역사를 잇는 시도는 지금 봐도 참신합니다.
'YS는 못 말려'를 쓴 장덕균 작가는 이후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 등 (제목이 장난 아니다) 여러 풍자 유머집을 내놨지만 원조 YS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습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에 대한 풍자가 더 이상 금기가 아니게 되면서 최초만큼의 화제를 끌어내지 못했고, 풍자의 무대가 책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로 옮겨간 이유가 큽니다.

◆푸짜르, 이세계의 용사님이 되다
이세계(異世界)는 일본 서브컬처(덕후문화) 업계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입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환생해 모험하는(그리고 수많은 이성을 만나는) 이세계물 장르가 라이트 노벨 시장에서 크게 유행한 덕분입니다. 너도나도 이세계물의 인기에 편승하다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의 졸작들이 범람하는 등 부작용도 컸습니다. 나무야, 인간이 미안해.
만화 '라이드 온 킹'(2018~)도 "눈을 떠보니 이세계였다"로 시작하는 평범한 이세계물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전혀 평범하지 않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거든요. 물론 대놓고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만화의 주인공이자 중앙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 프루지아 공화국을 이끄는 알렉산드르 프루치노프는 내로라하는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을 꼭 빼닮았습니다. 비행기, 헬기, 카레이싱, 바이크, 승마, 사냥, 사격, 격투 등 마초적인 취미를 섭렵하고 있는 것부터가 푸틴 판박이예요. '이세계 푸틴'이라는 웃긴 소재에 그치지 않고 완성도 높은 이세계 판타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게 의외라면 의외인 부분입니다.
미국에서 독설과 희화화를 통한 정치 풍자가 흥했다면 일본에서는 작품의 스케일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현직 대통령을 출연시키기도 합니다. 1991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인기 만화 '격투맨 바키' 시리즈에는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꾸준히 등장하는데 그 취급이 영 변변찮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작중 격투가들에 의해 농락당하거나, 납치당하고, 운전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특히 시리즈 4부인 '바키도'에서는 새 미국 대통령은 취임할 때마다 바키의 아버지이자 지상 최강의 전투 생물로 등장하는 한마 유지로와 상호 불가침·우호 조약을 맺는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이 등장합니다. G 부시, 바락 오즈마는 약간 개명이라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실명으로 출연해 한마 유지로 앞에서 벌벌 떨며 선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풍자와 비하 사이…일단 허(許)하라?
풍자와 조롱, 비판과 비하는 때로 종이 한 장 차이가 되곤 합니다. 한국에서 'YS는 못 말려' 이후 만개한 정치 풍자는 인터넷으로 옮겨 갑니다. 1998년 창간된 국내 최초 인터넷신문 딴지일보는 '엽기' 코드와 B급 정서를 바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류 정치인들과 재벌 총수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했습니다.
이후 소수의 생산자가 풍자 콘텐츠를 생산·유통하는 시기를 지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생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재생산하고 퍼트리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됩니다. 콘텐츠의 주체가 익명의 네티즌으로, 콘텐츠 유통의 주무대가 정치 성향이 짙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대되면서 단순한 풍자를 넘어 조롱과 비하로 읽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이후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주축으로 고인을 희화화하는 밈이 대거 등장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3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비꼰 모바일 게임 애플리케이션 '스카이 운지'가 앱스토어에 출시되자 민주당은 대변인이 직접 나서 "충격을 떠나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운영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일베 회원들은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PC 기반 플래시 게임으로 등장한 '쥐눈박이 때려잡기'를 예로 들면서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풍자고, 노무현은 모욕이냐"라며 반발했죠.
2017년 말 국정농단 사태 전후로는 '박근혜는 하야하라' '순실이 빨리와' '순실이 닭 키우기' '순실런' '근혜와 순실한 우주의 기운' '박근혜 감옥 탈출기' 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과 관련된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고, 유통할 수 있는 모바일 캐주얼 게임 생태계 덕분입니다.
2015년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서 벌어진 총격 테러 사건을 계기로 성역 없는 풍자를 어디까지 옹호해야 하는지 국내외에서 공론화된 바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는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는 없지만, 샤를리 에브도의 성역 없는 풍자와 수위의 적절성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재 진행형 이슈입니다.
[홍성윤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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