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체육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체육계 미투' [임다연 칼럼]

[스포츠아시아] 2018년을 뜨겁게 달궜던 미투가 2019년에는 체육계까지 번졌다. 지난해 연예계, 예술계 등은 이미 미투 열풍이 한차례 지나갔고 그 당시 체육계는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최근 용기를 낸 한 선수 덕에 사건이 실체를 드러냈고, 뒤이어 많은 선수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
현재 스포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코치로서 재직하는 동안 유능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냈고, 국제대회 메달도 많이 따내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전 자신의 제자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제자는 국가대표 간판선수였기 때문에 더욱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후 영구제명이 됐지만, 이내 다른 곳으로의 코치 확정설이 돌며 또 한번 국내 선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월8일 한 언론을 통해 폭행을 당한 선수의 변호사가 단순폭행 뿐만 아니라 성폭행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며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그는 제자를 8살의 어린 시절부터 폭행했고, 미성년자인 17세부터 성폭행을 해왔다. 평창올림픽 한 달 전까지도 이 같은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만약 이 말이 전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는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괴물임이 틀림없다.
체육계에 이들과 같은 괴물이 또 탄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이들이 괴물과 같은 행동이 가능했던 그 이유를 반드시 되짚어야 한다. 최근 많은 운동부 코치들이 선수를 성폭행했다는 미투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이 때, 그렇게 많은 코치들이 괴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위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가 없음
■ 체육계의 성폭력 문제 왜 뒤늦게 알려졌나
현재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감사를 진행하고 쇄신을 통해 바로잡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장이 머리를 숙이고, 감사를 진행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필자는 현역 엘리트 선수로서 우리나라 체육이 이러한 괴물을 길러낸 그 원인을 파악하여 실질적인 개선방안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현재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 집단은 일종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섬에서의 '왕'은 누구일까? 아마도 '지도자' 일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섬을 만들고 왕을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일반 집단과 엘리트집단을 따로 분류하는 성향이 있다.
엘리트 집단 내에서는 허용되는 것들이 일반 집단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코치와 선수의 상하 수직관계 등을 보면 일반 집단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학교나 회사만 보더라도 교사와 학생,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그 어떤 관계도 코치와 선수처럼 극명하게 수직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한 예로 우리나라 실업팀은 선수를 영입 할 때 선수 당사자와 논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와 협상하는 식의 구조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부를 떠나 성인이 된 일반부 선수에게도 코치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따라서 엘리트 선수들에게 코치의 말은 곧 법이다. 만일 코치가 선수에게 체벌로 매일 특정 선수만 야간운동을 시킨다면? 선수는 물론 군 말없이 코치의 말을 따를 것이고, 선수의 부모님도 그 외 많은 사람들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오히려 코치가 선수를 진심으로 위하기 때문이라고,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코치도 함께 고생한다고. 심한 경우 야간훈련을 하지 않는 선수나 부모님은 서운해 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
자, 그렇다면 상황을 조금 바꿔 학교에서 교사가 특정 학생에게 체벌로 수업이 끝난 후 야간 공부를 시킨다고 해보자.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은 물론, 학교, 부모님, 전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체벌금지법까지 만들어진 상황에서 만약 이러한 사건이 난다면 사회적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 회사에서 직장상사가 특정 신입사원을 남겨 매일 야근을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는 이 상사를 정상적이라고, 아니 오히려 신입사원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참된 상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다른 예를 한번 생각해보자, 엘리트 선수라면 코치가 선수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상황은 한 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시합 전 격려를 위해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선수의 어깨, 팔뚝, 허벅지 등을 주무르거나. 이를 경험하는 코치와 선수는 물론 이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특별히 눈에 거슬린다거나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조금 바꿔 교사가 학생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엉덩이를 토닥인다면? 그리고 직장상사가 신입사원에게 회의 후 업무보고를 잘했다며 다리를 주무른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우리 사회가 일반 집단과 엘리트 집단을 분류하여 그들만의 섬을 따로 만든 것이 화근일 수 있다. 이제라도 우리사회는 일반 집단에서 허용되지 않는 건 엘리트 집단에서도 허용해선 안 된다.
다음으로 대부분의 코치직은 엘리트 선수가 은퇴 후에 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던 엘리트 선수가 그대로 성장해 코치만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 그래도 코치로라도 성장하면 그나마 엘리트 선수의 성공적인 은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우리나라 엘리트 시스템의 폐해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만 하고, 운동만을 바라보고, 운동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성장해온 엘리트 선수가 평생을 운동만 한 채 은퇴 후에도 코치가 되어 제자들에게 그대로 가르침을 물려준다.
이번 사건의 용기를 낸 선수도, 뒤이어 용기를 내고 있는 많은 선수들도 처음부터 쉽게 말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안타깝지만 먹고 살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엘리트 운동선수여도 운동선수 이외의 삶을 살 기회가 있다면, 괴물 같은 코치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협박은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용기를 내준 많은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코치에 대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를 이야기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이 평생해온, 자신이 사랑하는 운동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피해선수들의 입을 막고, 혼자 끙끙 앓게 만든 것 아닐까. 그리고 어른들은 이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체육계 미투를 촉발시킨 선수의 경우 운동을 그만둔 후에야 폭로를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체육계의 어두운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체육계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그렇다면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체육계는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엄격한 규율을 갖춰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현 우리나라 체육계에 절실히 필요한 요소이다.
communication의 사전적 정의는, ‘의사소통을 하다’, ‘정보 등을 전달하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나라 체육계에는 구체적인 정책(메뉴얼)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20년간 운동을 하고 있는 현역선수로서 잘 모르는 세분화된 구체적인 우리나라 체육계 정책(매뉴얼)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해선 실질적으로 선수나 지도자와 같은 체육인들이 아닌 정책을 하는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힘들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체육계 정책에 대해 선수, 지도자, 학부모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써 암묵적으로 이 정책을 지킨다는 약속이 된다. 그래야 어떤 상황이 올 때 매뉴얼대로 행동하게 된다. 정책을 만들어만 놓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실제로 매뉴얼이 필요한 엘리트 체육인들과의 communication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매뉴얼을 바탕으로 해당 매뉴얼을 교육하고 모두에게 익힐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communication과 함께 필요한 요소는 바로 enforcement이다. enforcement의 사전적 정의는 법률의 시행, 집행, 강행, 강제 등의 뜻을 담고 있다. communication이 잘 되더라도 정해진 매뉴얼을 어겼을 땐 그것을 제제할 수 있는 enforcement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대학 운동부의 유능한 선수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시합 전 금주’라는 항목을 한번 어겼다는 이유로 곧바로 팀에서 방출된 사례가 있다. 해당 선수는 그 팀의 에이스 선수로서 방출이 되면 단체전 메달을 놓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는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망설이지 않고 선수의 방출을 결정한 것이다.
만일 이 상황이 국내였다면, 과연 어떤 코치가 단체전 메달과 개인의 실적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 선수가 매뉴얼을 한번 어겼다는 이유로 고민도 없이 방출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communication과 동시에 enforcement가 갖춰져야 비로소 정책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
범죄자에게 형량을 늘리는 것은 법의 문제이다. 체육인들은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매뉴얼을 만들고, 그것을 교육을 통해 모두가 숙지하고 공유하도록 하며 communication을 실현하고, 엄격한 강제력과 집행력을 통해 enforcement를 갖춰야 한다.
체육계 미투로 인해 단순히 급하게 꼬리자르기가 아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길게 내다보고 어린 엘리트선수들은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4년 전, 한 사건으로 인해 고민 끝에 스포츠 클린 신고센터, 스포츠 4대악센터에 실명으로 종목단체 연맹 임원에 대해 민원을 제기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민원에 대한 답변도 굉장히 늦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해결책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또한 민원에 대한 답변을 받기 전부터 모두가 내가 민원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왜 미투가 언론을 통해서 밖에 이루어질 수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차피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각오가 된 채 실명으로 민원을 제기 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종목단체 연맹 임원이 필자가 민원을 제기한 것을 알고 연락이 오는 것을 보고, 4대악센터에 대해 실망을 했던 경험이 있다.
선수 겸 코치라는 직업을 가지고 스포츠윤리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내 제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절대 스포츠 4대악센터에 이야기 하라는 말을 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체육계 미투를 계기로 체육계 비리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윤리센터’만큼은 독립기관으로서 기존의 대한체육회 스포츠 클린 신고센터, 문체부 스포츠 4대악 센터와는 엄연히 다르게 운영되어야 한다.
어느 체육단체와도 관련되어있지 않는 투명성, 그리고 검증된 수사관들의 기용으로 사건의 전모를 확실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선수, 지도자, 임원, 학부모, 심판 등 체육인에게 필요한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매뉴얼을 익힐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진정한 스포츠윤리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용기를 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하고 싶고, 그들의 용기가 결코 냄비근성으로 인해 한순간 들끓었다가 무의미하게 식지 않기를 바란다.
*본 회 칼럼에 도움을 주신 국민대 박성주교수님께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대한체육회, 몬스터짐 DB
글=임다연 (경남체육회 수영선수 겸 DP클럽 코치, dpswim@naver.com)
편집=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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