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황금돼지들
조각상·만화 등 기획전 풍성
돼지는 왜 죽어서도 웃는 낯인가.
이것이 사진가 박찬원(75)씨가 5년째 돼지 사진을 찍고, 고사상 돼지 머리를 작품으로 남기는 이유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중앙 무대 위에 32장의 돼지 머리 사진이 대형 벽화처럼 나붙은 '고사상 돼지'가 압도한다. 박씨는 "서울 마장동에서 도축 직후 찍은 사진인데 혀 빼물지언정 하나같이 웃는 표정"이라며 "인간에게 몸을 내주고 죽음조차 겁내지 않는 성자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안택고사를 지내듯 일련의 돼지 앞에서 숙연해진다.

개인전 '돼지가 우리를 본다'가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강원도 원주의 한 양돈장에서 100일간 촬영한 사진과 수채화 등 120여점이 걸렸다. 탯줄도 못 뗀 갓난쟁이부터 먹고 자고 발정 나 헐떡이는 돼지의 천태만상이다. 지상·지하 2층으로 나뉜 전시장 밑층은 조립식 비계(飛階)를 사용해 돼지 축사처럼 꾸몄다. 어릴 적 별명이 돼지였다는 박씨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을 끌고 와 "돼지우리는 욕망으로 들끓는 사람 사는 풍경의 일단"이라 주장한다. 영상 속 꿀꿀대는 울음이 전시장을 메우면 작품 내 돼지의 모든 부위가 애잔해진다. 박씨의 90세 집안 어르신이 썼다는 시조도 걸려 있다. '삼겹살 대포집에 취객들은 즐거워라… 작은 눈 지그시 감고 액귀를 쫓는구나.'
기해년, 돼지를 소재로 한 미술 전시가 전국서 잇따르고 있다. 지역 작가 100명의 기획전 '황금돼지 꿈'을 6일까지 여는 대구 아양아트센터뿐 아니라 광주 은암미술관도 특별전 'Piggy Dream'을 다음 달 8일까지 연다. 국내 작가 외에도 50년 가까이 나무로 돼지를 깎아온 히하라 고다이(74) 등 일본·베트남 작가 6인이 의기투합했다. 특히 '돼지 작가'로 잘 알려진 한상윤(34)씨의 '나이스샷' '사랑하는 내 새끼들' 같은 귀여운 작품을 보고 나면 돼지 새끼가 더는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
돼지와 풍속을 살피는 자리도 마련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조각상·불화·제기(祭器) 등으로 현현한 돼지 70여점을 모은 특별전 '행복한 돼지'를 3월 1일까지 개최한다. 특히 한 이발소에서 구했다는 연도 미상의 자수 그림이 눈길을 끈다. 젖을 빠는 아홉 마리 새끼 돼지, 그 옆에 '必有萬福來'(필유만복래)가 적혀 있다. 하도겸 학예연구사는 "손님 많이 들라는 부적 같은 그림"이라고 했다. 돈(豚)이 돈을 부르기에 돼지저금통을 빼놓을 수가 없다. "요즘은 꼬마들도 체크카드 쓰는 시대가 됐다. 돼지저금통이야말로 달라진 세태를 상징하는 단적인 예다."
돼지는 그 생김새 덕에 만화가가 유독 사랑하는 존재.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리는 만화 전시 '돼지 몰러 나간다'는 한국카툰협회 작가 40여명의 돼지 60점을 선보인다. 조관제(72)씨가 그린 '서기집문'(瑞氣集門)을 보니 멧돼지 한 마리가 질주하고 있다. 힘이 붙으면 시속 50㎞에 육박한다 하니 돼지가 한번 뛰기 시작하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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