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의 티타임] '황제' 이지훈, 협곡을 떠나며 남기는 잔잔한 회상

2015 시즌이 끝난 후 이지훈은 중국의 비시 게이밍(VG)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밝혔다. 이지훈은 '댄디' 최인규, '벵기' 배성웅, '스위프트' 백다훈 등 여러 한국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팀이 상위권과 인연이 없었다. 2017 LPL 스프링 이후 VG가 2부 리그인 LSPL로 강등되며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 시즌 후반부에는 '파이어레인' 추화우가 주전 미드 라이너로 나서며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이지훈은 쑤닝 소속 코치로서 또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보낸 3년 동안 아쉬운 성적을 낸 것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전지 훈련차 고국을 방문해 인터뷰 자리에 나온 이지훈의 표정에서 먹구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며 미소와 함께 말하는 이지훈. 선수로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코치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 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제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새로운 관점에서 2019시즌을 맞이하는 기분은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코치직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배울 것들이 많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다사다난했다. 지금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중국에서의 3년을 포함해 선수로 지낸 기간 동안 스스로 나태해진 적이 없었다. 조용히 프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목표도 이뤘다. 그렇기에 내 선수 생활에 대해서 미련이나 후회가 남지 않았고, 담담히 은퇴를 결심할 수 있었다.

내가 VG에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데 팀이 강등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LSPL에서 우승하고 LPL로 승격하자는 생각만 하며 열심히 했다.
중국에 가면서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고, 동시에 기량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그때가 2016년 초였는데 옛날처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팬들이 좋은 말씀 해주시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스스로 내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봤을 때 내가 해야 할 만큼 못했기 때문에 VG가 3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내 기량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당시에 팀에 있던 '댄디' 최인규나 나를 보고 VG로 이적한 '벵기' 배성웅, 그리고 '크래시' 이동우와 '스위프트' 백다훈 등 한국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미안하다. 그 친구들이 나에게 바란 기량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포터로서의 출전은 내가 가장 먼저 팀에게 이야기를 꺼냈던 부분이다. 오히려 VG는 처음에 난색을 표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당시에 중국 선수들이 팀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굉장히 컸다. 비단 성웅이의 문제가 아니라 팀이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서포터로 가는 아이디어를 냈고, 일주일 정도 스크림을 진행했다. 예상보다 스크림 성적이 만족스럽게 나오자 체계적으로 준비해 실전에서 써본 것이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 아쉽고 팀에 미안하기도 했다.
선수에겐 대회가 전부다. 대회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그대로 쭉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불만보단 우선 팀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선수 생활 시작 때부터 갖고 있었다.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으로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던 것인데 결과가 나빠서 더 시도해보자고 할 이유나 명분이 없었다.

내 기량 저하에 대해 동료 선수들이나 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중국 이적 3년 차가 됐을 때 조이가 많이 사용됐는데 스크림 성적은 좋지만 대회 때 성적이 안 나오니 못 쓰겠더라. 그런 상태에서 서머에 들어가니 이렐리아나 강타를 든 아트록스, 탈론이 나왔다. 내가 2012년부터 프로게이머를 7년간 하면서 처음으로 메타에 적응을 못 하겠다고 느꼈다. 옛날부터 나는 프로 선수가 메타에 적응을 못 한다면 안 하는 게 맞다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월급을 받는 일에도 부담감을 느끼게 됐고, 팀에게 월급을 받지 않고 쉬고 싶다고 말했다. VG를 나왔다는 소식 자체는 팀과 내 이미지를 위해 합의 하에 엄청 늦게 나왔지만 이미 서머 시즌이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혼자 휴식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6월 즈음에 은퇴를 한 것이다.
'프레이' 김종인의 선례가 있듯이 휴식을 취했다가 메타가 바뀌면 돌아오는 방법을 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열의가 있고 자신 있는 선수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프로게이머로서 나이가 많은 편이고 군대 문제가 닥쳐오다 보니 앞으로를 생각하기엔 막막했다. 선수 은퇴 후 코치로 전향하면서 아는 분께 들은 말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그분께서 "그만둔 선수들 열 중 아홉은 후회한다. 그런데 코치를 그만둔 사람 중 후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선수들은 그만큼 비전이 있고 자신만 최선을 다해서 기량을 펼치면 되니 스트레스가 덜한데, 코치는 팀 안팎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자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난 선수를 그만두고 쉰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딱히 후회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은퇴했을 때 내가 나이가 있으니 곧바로 군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휴식기 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92년생은 국외여행 허가가 2019년 말까지 나온다. 1년을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11월 말에 쑤닝에서 연락이 왔다. 제안 자체는 굉장히 급작스러웠지만 쑤닝이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내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없이 바로 합류했다.

내가 선수 생활에 후회가 없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비록 성적으로 이어지진 못했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도 있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같은 프로 선수나 아마추어 선수를 두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단 이유도 있다. 프로 선수를 하면서 한 번도 솔로 랭크에서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님 뭐함?" 같은 가벼운 수준의 채팅으로라도 타인의 감정을 해치지 않고 존중하면서 게임하겠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웠고 그것을 끝까지 지켰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대리보다 자주 발생하는 이슈가 욕설이다. LoL를 하다 보면 같이 게임하는 타 플레이어가 내 입장에서 기분 나쁜 플레이를 할 때 고의 여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미드 라인에 섰는데 정글러가 미드 갱킹을 와서 무리한 다이브를 하다가 죽는 경우는 흔하지 않나. 그럴 때 단순히 ";;" 혹은 "님 뭐하세요?" 같은 말을 하거나 더 나아가서 수위 낮은 욕이나 인신공격을 대뜸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자신이 기분이 나빠질 플레이를 했다고 해서 타인을 비꼬거나 비판을 하는 사람은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과 심리적인 근간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들은 지금 자신이 굉장히 기분이 나쁜데 그것을 타인에게 풀겠다는 마음이고, 그런 말 자체가 상황을 좋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쑤닝에 있는 선수들 모두 괜찮은 선수라서 놀라웠다. '메이플'과 '소드아트'는 LMS에서 정점을 찍었던 선수들이어서 프라이드가 강하거나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들 성격이 정말 좋다. 게임에 임하는 자세나 멘탈, 성격 모두 훌륭하다.
국내외로 많이 알려진 두 선수를 제외하고 특히 주목하거나 눈여겨봐야 할 선수가 있다면
'웨이웨이' 웨이보한은 정글러인데 한국 솔로 랭크에서 인터뷰 전까지 2위를 유지하는 등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선수다. 나이는 어리지만 플레이가 독창적이어서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큰 원석이라고 할 수 있다.
EDG를 꺾는 등 데마시아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후반 실수가 나오는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지적됐다
코치진이 합류하고 거의 바로 참가한 대회라 맞춰볼 시작이 부족했다. 팀내 소통이나 선수들이 그리는 경기의 판도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데마시아컵 성적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2019 LPL 스프링부터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코치진의 가장 큰 목표고,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선수 이지훈이 아닌 코치 이지훈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무조건 롤드컵이 목표다. 코치로 지내는 1년 동안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선수 생활을 끝냈을 때 후회를 느끼지 않았듯, 2019년 연말에 코치 생활을 끝냈을 때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팬들은 내가 프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모든 것이다.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팬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 것이다.

사진=김용우 기자 kenzi@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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