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만8,759대. 지난해 국내 1t 트럭 판매량이다. 작년 국내 판매 1위 그랜저 11만3,101대보다도 많이 팔았다. 그런데 이 큰 시장이 전부 안전 사각지대다. 첨단 운전자 보조 장치는 고사하고 충돌 실험조차 통과하기 힘든 차들이 버젓이 신차로 팔리고 있다.
글 윤지수 기자, 사진 각 제조사, 관련 부처

운전석은 충격 흡수 구간?
보닛이 없어서다. 일반 승용차는 보닛과 앞바퀴를 앞에 두어 충격을 흡수하지만, 엔진을 시트 아래 넣은 ‘캡 오버’ 방식 1t 트럭은 충격 흡수 구간이 없다. ‘운전석은 화물을 위한 충격 흡수 구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공차중량만 최소 1.7t을 넘어서는 1t 트럭 관성을 보닛 없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실제 충돌 실험 결과도 처참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9년 보험개발원이 실시한 40% 오프셋(64㎞/h, 앞쪽의 40%만 고정 벽에 충돌) 충돌 실험 결과, 현대 포터2와 기아 봉고3는 1~4등급 중 최저점인 4등급을 받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슴(1등급)을 뺀 머리와 목, 하체, 차체 구조, 더미 거동 등이 모두 4등급이다. 보험개발원 관계자에 따르면 머리 상해 4등급은 수 시간 안에 의식불명이 될 가능성이 1등급보다 네 배 높다고.
실제 사고 시 사망 비율인 ‘치사율’ 역시 높다. 차종별 치사율 경찰청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승용차가 1.0%, 승합차가 1.4%, 화물차가 2.2%다. 화물차 치사율이 일반 승용차 두 배를 넘는 셈이다. 참고로 1t 트럭은 전국 화물차의 약 70%를 차지한다.

10년 전 얘기 아니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3는 지난 2004년 등장 후 15년째 큰 변화 없이 판매 중이다. 2009년 충돌 실험했던 차들과 밑바탕이 같다는 얘기다. 다만 최근 두 차 모두 에어백과 급제동 경보시스템 등을 기본으로 넣어 조금이나마 위험성을 줄였다.

적재량 550㎏ 경상용 트럭 GM 라보는 더욱 심각하다. 같은 캡 오버 방식이면서 1991년 등장해 지금까지 판매 중이다. 원본 모델인 스즈키 캐리 8세대가 1985년에 나왔으니, 34년 전 신차가 지금까지 나오는 셈이다. 안전 기능은 에어백은커녕 ABS(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조차 없다.

효율과 돈에 안전을 양보하다
왜 트럭은 보닛이 없을까? 결국 효율 때문이다. 캡 오버 방식은 운전자를 휠베이스 밖으로 밀어내, 짐 공간을 최대로 늘릴 수 있다. 과거 세미 보닛(작은 보닛이 있는 방식) 모양으로 나왔다 사라진 현대 리베로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리베로(초장축 일반캡) 전체 길이는 5,415㎜. 포터(초장축 일반캡)는 5,175㎜다. 적재함 길이는 반대다. 리베로 2,860㎜, 포터 3,110㎜다. 길이 대비 비율로 보면 리베로는 짐칸 비율이 52.8%에 불과하지만, 포터는 60.0%가 모두 짐칸이다.

또 긴 차체는 그만큼 좁은 길에서 불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앞바퀴가 운전석보다 앞으로 이동했기에 휠베이스가 무척 길다. 리베로의 경우 휠베이스 3,280㎜로 2,680㎜에 불과한 포터보다 훨씬 길다. 3,280㎜ 휠베이스는 대형 세단 제네시스 G90(3,160㎜)보다도 긴 수치다. 골목길 주행과 유턴 등 좁은 도로에서 캡 오버 방식보다 버거울 수밖에 없다.
시장의 독점, 트럭의 노후화, 정부의 관대한 안전 정책도 다 함께 맞물린다. 1t 트럭 시장이나 경상용 트럭 시장 모두 뚜렷한 경쟁차가 없다. 가만둬도 잘 팔리는데, 현대-기아차와 GM이 큰돈 들여 신차를 만들 이유가 없다. 2004년 등장한 1t 트럭과 1991년 출시한 라보가 장수하는 이유이며, 안전을 챙길 수 없던 이유다.

왜 경쟁사는 월 1만5,000대 이상 꾸준히 팔리는 소형 상용차 시장을 바라만 보고 있을까? 가격 경쟁력을 맞출 수 없어서다. 현대 포터 가격은 1,540만~2,096만 원. 이 값에 5m 넘는 프레임 차체와 유로 6 환경기준을 만족시키는 2.5L 터보 디젤 엔진, 그리고 상용차 내구성까지 갖췄다. 경쟁사가 비싼 돈 들여 신차 개발해서는 결코 맞추기 힘든 조건과 가격이다. 아울러 포터 같은 저가 1t 트럭 수요가 국내와 몇몇 국가에 불과해 시장이 좁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방법은 있다
역시 방법은 보닛 달린 구조다. 유럽은 엔진이 앞에 자리 잡은 세미 보닛 소형 화물차가 주류며, 미국은 큼직한 픽업트럭 또는 미니밴이 소형 화물차로 주로 쓰인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현대 리베로처럼 캡 오버 방식보다 공간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스즈키 에브리. 긴급제동보조장치도 들어간다
나름대로 절충안이 있다. 엔진을 엉덩이 아래 두는 캡 오버 방식을 유지하면서, 앞바퀴만 앞으로 당겨 보닛을 뽑는 스타일이다. 우리나라에 소규모로 판매 중인 중국제 소형 트럭이 쓰는 방식이며, 일본에서도 경상용차에 두루 쓴다. 앞 오버행이 짧고 앞바퀴가 가까이 있어 리베로 같은 방식보다는 공간 활용성이 높다. 더욱이 GM 다마스 원조 모델 스즈키 에브리의 경우 40% 오프셋 충돌 테스트를 대응할 만큼 안전하다.

한편, 르노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마스터가 세미 보닛 방식 상용차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마스터는 1.2~1.3t급 유럽 상용 밴. 2,900만~3,100만 원 비교적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00대 초도 물량을 모두 판매하며 인기를 끌었다. 비싸더라도 안전한 상용차에 대한 수요를 조금이나마 확인한 셈이다.

캡 오버 방식 소형 트럭. 높은 효율로 우리나라 물류의 중심을 지켜왔다. 그러나 부실한 안전 대책 때문에 사고로부터 수많은 운전자를 지켜주지 못했던 점 또한 사실이다. 온갖 첨단 안전 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이 쏟아지는 요즘, 소형 트럭도 경제성과 효율 뒤에 미뤄뒀던 안전을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