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이름에 '돼지' 들어간 식물엔 '毒' 있는 경우 많아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2019. 2.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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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났으니 이제 진짜 기해년(己亥年)의 출발점에 섰습니다. 2019년은 돼지해로, 돼지는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물입니다. 한문 집 가(家)자를 보면 지붕 면(宀)에 돼지 시(豕)를 넣어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한 지붕 밑에서 돼지를 기르는 곳을 집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 정도니 사람이 지은 식물명 중에 돼지가 없을 리 없습니다.

경상남도수목원에서 키우는 돼지.

재물과 복의 상징이긴 하나 식물명에서의 돼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돼지를 검색어로 넣어보면 우선 돼지감자가 보입니다. 돼지가 먹을 만한, 그래서 아마도 진짜 감자보다 못하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돼지감자는 사실 검색되는 것 자체가 낯섭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뚱딴지만을 정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뚱딴지와 돼지감자는 같은 식물이지만 돼지감자는 뚱딴지의 이명으로 취급했기에 다루지 않았습니다.

뚱딴지

그런데 떡 하니 등장해 있으니 낯설 수밖에요. 살펴보니 뚱딴지는 귀화식물로 등록돼 있고, 돼지감자는 2017년에 재배식물로 올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Helianthus tuberosus라는 같은 학명으로 등록돼 있으니 문제입니다.

귀화식물이 됐건 재배식물이 됐건 하나의 식물에 하나의 정명만을 부여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취지에는 어긋나는 것이니 수정이나 삭제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돼지풀

어쨌든 뚱딴지에 천연인슐린으로 불리는 이눌린 성분이 들어 있음이 발견됐습니다. 당뇨병 환자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이 재배해 새로운 농가소득식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버드나무에서 아스피린을 얻는다 해서 감기 걸렸을 때 버드나무 껍질을 갉아 먹으면 낫는 게 아니듯 뚱딴지도 직접적인 섭취로 당뇨병 치료를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병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려면 원재료에서 해당 성분만을 추출하고 농축하는 등의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뚱딴지로 구수한 차를 만들어 마시면 당뇨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위약효과에 길들여진 대한민국 사람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한탄강변의 단풍잎돼지풀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도 당연히 검색되는 식물입니다. 돼지풀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식물로 hogweed라는 영명을 그대로 번역한 이름입니다. 쓰레기 같은 풀이라는 뜻에서 ragweed라고도 합니다.

출현빈도가 매우 높고 가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식물이라 1998년에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했습니다. 일반적인 국화과 식물과 달리 돼지풀은 많은 꽃가루를 생산하는 방식의 꽃을 피웁니다. 유럽에서는 100대 악성 외래종 중 하나로 취급한다고 하니 가히 세계적인 악명이라 하겠습니다.

구릿대

단풍잎돼지풀도 돼지풀과 동향(同鄕)인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식물입니다. 돼지풀에 비해 전체적으로 커서 giant ragweed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잎이 단풍잎처럼 갈라지는 모습에 주목해 단풍잎돼지풀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단풍잎돼지풀은 처음에 경기도 연천군의 한탄강 주변에서 발견됐을 때만 해도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풀로 여겨졌습니다. ‘양키풀’이라고 부르며 미군 부대와 관련된 곳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였습니다.

황금실화백(국립수목원)

그런데 지금은 하천변을 따라 돼지풀보다 더욱 번지는 양상을 보이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입니다. 그러니 돼지풀과 함께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해줄 밖에요.

단풍잎돼지풀과 비슷하지만 잎이 갈라지지 않고 둥근 것은 둥근잎돼지풀(Ambrosia trifida f. integrifolia)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갈라지는 잎이 드문드문 나타나기도 해서 단풍잎돼지풀과 같은 것으로 다루는 편입니다.

황금회화나무(한국도로공사수목원)

재배식물로 큰멧돼지풀이라는 것이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무슨 식물인가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악마식물 자이언트하귀드(giant hogweed)라고 나옵니다. 엄청난 키를 가졌으며 스치기만 해도 발진이 생기는 맹독성 식물이라는 소개와 함께 미국 중서부에서 발견돼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국화과 식물인 돼지풀이나 단풍잎돼지풀과 달리 큰멧돼지풀은 산형과 식물입니다. 산형과 식물에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독성이 있으며 독미나리나 지리강활처럼 맹독성인 것이 있습니다. 큰멧돼지풀도 그런 모양입니다.

황금메타세쿼이아(홍릉수목원)

일전에 국내에도 자이언트하귀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문의를 사진과 함께 받은 적이 있습니다. 키가 커서 그런 의심을 한 것 같은데 잎의 모양으로 보아 그건 그냥 구릿대 같았습니다. 구릿대는 그렇게 키가 크게 자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산형과 식물은 모양이 비슷해 전문가들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공연히 불안 심리를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황금백합나무(홍릉수목원)

돼지풀아재비라는 것도 있습니다. 돼지풀과 비슷하다는 뜻일 겁니다. 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식물로, 1995년 경남 충무시(현 통영시)에서 발견됐으며 현재 마산, 울진 등지에서 번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잎이 돼지풀과 비슷하고 꽃은 서양등골나물과 비슷해 보입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특히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도 황금돼지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2007년에는 붉은색을 뜻하는 정(丁) 때문에, 2019년에는 노란색을 뜻하는 기(己) 때문에 황금돼지해라고 하는 거랍니다.

자생지의 황금(중국 지린성 투먼)

12년 전에 ‘붉은 돼지해’를 황금돼지해로 여긴 건 빨간색을 부(富)와 동일시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일 것입니다. 아무튼 황금돼지띠에 대한 민속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하니 전통이 됐든 미신이 됐든 믿는 자에게는 상술의 마수가 뻗칠 것입니다.

황금이 들어간 식물명은 더 많습니다. 잎이 황금색이 나도록 변형시킨 것은 대개 ‘황금’자를 넣어 이름을 짓습니다. 황금실화백이니 황금회화나무니 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홍릉수목원 같은 곳에서는 황금메타세쿼이아, 황금백합나무, 황금삼나무 같은 특이한 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황금은 뿌리가 노란색이어서 속썩은풀이라고도 한다.

이름이 아예 황금인 식물도 있습니다. 황금(黃芩)은 노란색 뿌리줄기를 생약명으로 이르는 풀입니다. 뿌리줄기를 잘라보면 노란색이어서 속이 마치 썩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속썩은풀’이라고도 합니다. 북부지방의 볕이 잘 드는 산지에서 자라며 남한에서 발견되는 것은 심어 재배하던 것이 야생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돼지해를 반기는 건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돼지를 뜻하는 돈(豚)과 금전을 뜻하는 ‘돈’의 발음이 같으니 돼지해는 복된 해가 되기를 바라기에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모두들 돼지꿈 꾸고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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