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쌍용자동차 이스타나
1990년대는 쌍용자동차에게 있어서 전사적으로 중대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1988년 쌍용그룹에 인수되기 전, 쌍용자동차는 일본의 이스즈와 기술제휴를 맺고 있었고 80년대 후반에는 스바루의 전신인 후지중공업과도 기술제휴를 체결하는 등, 안정적인 엔진 및 차량 공급을 위해 제휴선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아자동차가 쌍용그룹에 인수되면서 쌍용 김석원 회장이 일본의 기업과는 기술제휴를 맺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동아자동차 시절에 구축해 놓았던 이스즈와의 제휴선이 끊어지고 후지중공업과의 협업 또한 취소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당시 자체적인 기술적 역량이 부족했던 쌍용자동차에게는 큰 위기였다. 이 때문에 쌍용자동차는 일본이 아닌, 유럽이나 미국의 자동차 선진국들과 제휴선을 새로 물색해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스승을 찾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쌍용자동차는 프랑스의 르노와 스웨덴의 볼보자동차 등과 제휴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쌍용자동차는 1988년부터 르노의 대형세단 르노 25(Renault 25)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89년에는 볼보자동차와의 계약을 통해 91년도부터 볼보 240 세단을 생산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르노 25의 판매는 신통치 않았고 볼보자동차와의 계약은 최종적으로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쌍용자동차는 그야말로 기연(奇緣)을 만나게 된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으로 알려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제휴를 이룬 것이다. 최초의 기술제휴는 1991년, 상용차 부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 범위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면서 상용차용 디젤 엔진과 승용차용 가솔린 엔진 및 디젤 엔진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제휴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의 앞선 기술을 쌍용자동차로 본격 이전하고 기존 제휴 차종 및 향후 신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지게 된 신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쌍용자동차의 승합차 모델, ‘이스타나(Istana)’였다.
희대의 만남, 독특한 구성으로 태어난 쌍용 승합차
1995년 처음 등장한 이스타나는 그동안 쌍용자동차가 개발한 그 어떤 차종보다도 메르세데스-벤츠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하여 만들어진 차종이다. '이스타나'는 1991년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LCV(Light Commercial Vehicle, 경상용차)' 프로젝트 명으로 4년여에 걸쳐 총 2,500억원을 투자해 개발 되었다.
차명인 '이스타나'는 말레이어로 ‘궁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출시 후 광고에서도 ‘달리는 궁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기도 하는 등, 이전까지의 승합차와 다른 차종임을 강하게 어필하였다. 쌍용자동차는 “궁전처럼 편안하고 안전한 차라는 의미로 차명을 결정”했다고 하며, “승차감을 위주로 한 새로운 차원의 승합차로 개발했다”고 말한다. 이스타나는 쌍용 이스타나라는 이름 외에도 ‘메르세데스-벤츠 MB100’, 혹은 ‘MB140’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는 이스타나가 메르세데스-벤츠의 OEM 차종으로 대량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쌍용 이스타나는 90년대 승합차의 일반적인 1박스형 차체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여러 모로 다른 점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후륜구동이 일반적이었던 중 유일한 전륜구동계를 채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통념 상의 가로배치 전륜구동이 아닌, 세로배치 전륜구동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스타나의 다른 특징으로는 외형적으로는 1박스형 차체이면서도 구조적으로는 세미보닛에 가까운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타나의 전면 패널은 개폐식 패널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개폐식 패널을 통해 엔진 오일, 냉각수, 에어클리너 등을 교환하기 용이하게 했다. 간단한 경정비에 해당하는 정비 조차 좌석을 들어 내야 정비가 가능했던 여타의 승합차에 비해 월등한 정비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 1.3박스에 가까운 세미 보닛에 유사한 차체구조는 충돌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1박스형 승합차에 비해 더 유리했다.
이스타나는 국내 승합차 최초로 두께 5mm, 지름 90mm의 원통형 강철 프레임을 적용, 충돌 시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호하고 차체 변형을 방지했다. 또한 프레임과 범퍼 사이에 충격흡수용 구조재를 적용, 충돌 시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2차적으로 흡수하여 충격을 최소화했다. 또한 전륜에는 더블 위시본, 후륜에는 독특한 포물선형 리프 스프링을 적용한 서스펜션을 적용하여 주행 안정성이 높은 편이었다.
이스타나는 실내 바닥이 동급 차종보다 약 10cm 가량 낮았다. 이는 동급 차종 대비 상당한 강점이었는데, 그 이유는 승합차로서의 쓰임새 전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낮은 실내 높이는 승하차 편의성의 증대는 물론, 같은 전고의 동급 승합차에 비해 공간이 더 넓어지는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실내 공간 설계가 우수하여 동급 차량 최대의 실내 공간 및 적재 공간 확보로 거주성을 자랑했다. 특히 동급 최초로 본격적인 워크-쓰루(Walk-through) 설계 개념을 도입한 선진적인 설계로 인해 객석 공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실내 이동과 360도 회전 가능한 좌석을 적용했다.
이스타나의 심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OM662 엔진과 OM661 엔진이었다. OM662 엔진은 당시에는 높은 동력성능과 효율을 만족하는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으로, 95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OM661 엔진은 직렬 4기통 디젤엔진으로 79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쌍용 이스타나는 1995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신차발표를 시작한 이래 해를 거듭할 때마다 꾸준한 개량을 이어 나갔다. 출시 이듬해인 1996년에는 구급차량 및 장애인용 차량 등의 특장차량을 출시했다. 또한 1996년 2월에는 국내 양산 승합차 최초로 대한민국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97년에는 9인승 이상 전 차종에 평상시는 좌석으로 사용하다 테이블로도 전환이 가능한 좌석을 비롯한 각종 편의 사양을 적용한 모델을 추가했다. 밴딩 폴 안테나, 테일 게이트 투톤, 후면 엠블럼 확대 등을 새롭게 적용하여 세련된 외관을 연출했으며, 전 차종에 2,900cc 95마력의 개선된 디젤엔진을 탑재했다. 1998년에는 12인승 및 14인승 어린이 보호차량 모델을 출시했는데, 이는 기존의 승합 어린이 통학차량이 대부분 11인승 구성이었던 것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21세기를 앞둔 2000년, 이스타나는 대대적인 상품성 개선이 이루어진 2001년형 이스타나가 출시되기도 했다. 이렇게 이스타나는 2003년 5월까지 6년여의 여정을 마치고 단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