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아가씨' 나만 불편한가?..가족 호칭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
[경향신문] ‘남편의 고모의 아들’ ‘아내 오빠의 아내’
포털 사이트에 이같은 문장을 넣어서 검색하면, 이용자들이 올린 질문이 여러개 나온다. “남편의 고모의 아들을 뭐라고 불러야해요? 남편이 고모 아들보다 나이가 어리긴해요.” “아내 오빠의 아내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등이다. ‘남편의 고모의 아들’은 남편보다 나이가 많으면 ‘아주버님’, 남편보다 나이가 어리면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아내 오빠의 아내’는 ‘처남댁’이라고 부르면 되는데, 당사자를 부를 때는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그냥 이름을 부르면 안될까? 어르신들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간 등짝을 두들겨 맞거나, 근본없는 집안 출신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등짝을 두들겨 맞기 싫거나 망신당하기 싫은 사람들은 오늘도 열심히 여러가지 키워드를 조합해서 호칭을 검색한다. ‘가족 호칭 총정리’라는 글만 수백건이 검색된다.

이 수많은 가족 호칭들 중에서 요즘 유난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도련님’과 ‘아가씨’다. 결혼을 한 여자는 남편의 남동생을 ‘도련님’, 여동생을 ‘아가씨’라고 불러야한다. 결혼을 한 남자는 아내의 남동생을 ‘처남’, 여동생을 ‘처제’라고 부른다. ‘도련님’ ‘아가씨’는 누군가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지만, ‘처남’ ‘처제’는 호칭이다. 오래전부터 관습으로 써오던 가족 내 호칭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적 혹은 성별비대칭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일상 속 호칭 개선 방안’에 참여한 여성 응답자의 94.6%가 ‘도련님·서방님(남편 여동생의 남편)·아가씨’라는 호칭을 바꾸자’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6.8%도 ‘바꾸자’고 응답했다. 가족 내 호칭에 대한 이의제기가 계속되자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019 건강가정 기본계획’에 성평등한 가족 호칭과 관련된 개선안을 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국민생각함’ 사이트에서 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설문조사를 실시 중인데, 조사 일주일도 되지 않아 3만건에 가까운 의견이 올라올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성평등한 대체 호칭을 찾는 노력도 좋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왜 우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까? 가장 가깝고 편한 사이여야 할 가족끼리도 부르기에 전혀 즐겁지 않은 호칭을 사용하면서 서로를 불러야 할까? 호칭과 같은 언어 표현들 뒤에 숨은 의미를 연구해온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 사회는 남성중심적으로 짜여진 가족관계에 걸맞게 호칭체계가 발달해 있었는데, 가족관계는 계속 축소되고 사회가 변하는데도 호칭이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가족호칭은 사회적인 관계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지난해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책을 통해 ‘미혼’ ‘비혼’ ‘미망인’ ‘여교사’ 등 호칭에 담긴 우리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분석했으며, 여성가족부에 호칭 개선과 관련해 전문가 자문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신 교수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나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가 질문하고, 신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정리했다.

- ‘도련님’ ‘아가씨’는 예전부터 있던 호칭인데, 요즘 들어서 불편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 민주적인 사회가 됐다는 증거다. 우리 부모 세대는 아이들을 성차별 없이 평등하게 기르고, 많이 교육시켰다.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성차별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표현에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굉장히 많이 변했는데, 언어가 느리게 변하고 있으니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
- 사회가 민주화된 것은 오래됐고, 성평등 의식도 높아졌는데 그에 비해 불편하다는 목소리는 너무 늦게 터져 나온 것 같기도 하다.
= 오랜 세월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성차별적 호칭을) 써온 것은, 언어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습관화된 것에는 질문하지 않는다. ‘답이 있어? 여태 그렇게 불러왔는데?’라고 생각하고 쓴다. 언어는 사회적인 약속이고, 사회적으로 학습이 되면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은 그 언어를 받아들이고 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가 표현하려는 것과 맞지 않는다고 자각하게 되면,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문제의식을 던지면 거기에 귀기울이면서 자꾸 문제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가족 내 호칭에 대해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됐던 건 ‘외할머니’와 ‘할머니’다. 왜 똑같은 할머니인데 한쪽은 ‘외할머니’라고 부르느냐는 문제가 꽤 오래 전에 제기됐다. 그렇게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대체 표현을 만들려고 하게 돼있다. 간호사라는 단어는 원래 간호부였는데 중간에 간호원으로 한차례 바뀌었고, 지금은 간호사가 됐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바뀌면 또 금방 사람들이 적응해서 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될 때 많은 사람들이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초등학교라고 부르지 않나.
- 성차별적인 호칭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에는 왜 이렇게 많은 호칭들이 생기게 된 건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는 걸까.
= 그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한다. 제가 전세계 207개 언어를 분석했다.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2인칭 대명사가 ‘공손성’에 따라서 나눠지지 않는 언어다. 누구나 ‘You’라고 부를 수 있는 영어같은 언어다. 이 범주의 언어가 136개로 가장 많다. 두 번째는 2인칭 대명사를 공손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 언어다. 여기 속하는 언어가 50개 좀 넘는다. 세 번째 범주는 19개 정도의 언어인데, 2인칭 대명사를 공손한 정도에 따라서 세 개 이상으로 나눌 수 있는 언어다. 19개 정도 된다. 네 번째 범주에는 7개 언어가 있는데, 한국어가 여기에 속한다. 공손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2인칭 대명사로 타인을 지칭하지 못하는 언어다. 쉽게 말해서 ‘너’를 ‘너’라고 못하는 언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도 ‘너’ ‘당신’이 아닌 대체 호칭이 필요하다. 제가 기자님을 ‘야’ ‘너’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기자님이라고 불러야하는 것처럼.(웃음)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서로 간에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신상정보를 캐내는 거다. 명함을 교환해야 서로를 부를 수 있다.
언어는 과거의 산물이니까, 한국의 호칭체계는 다 과거에 있던 것이 그대로 온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신분제 사회였고, 가족관계가 중요했다. 그런데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고 그에 따른 호칭은 없어졌는데 가족관계 호칭은 남아있다. 가족관계는 계속 축소되고 있는데 호칭만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피곤함을 느끼는 거다. 심지어 가족관계 호칭이 사회로 확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좀 친해지면 가족이 아닌데도 언니, 오빠 이렇게 부른다. 엄마의 친구는? 이모라고 부른다. 나이 많은 어른은 친엄마가 아닌데도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선배 부인은 형수라고 부른다. 아줌마, 아저씨도 다 가족관계 호칭이 사회로 확장된 경우다.
- 가족 호칭을 못 쓰는 경우엔 서로를 꼭 직함으로 부르려고 한다.
= 신분제 사회였기에, 한 마디로 ‘어디서 상스럽게 이름을 불러’라는 생각들이 있는 거다. 옛날에 임금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고, 이름으로 사용된 한자를 쓰는 것도 금지됐다. 그래서 임금이름이 다 외자였다. 못쓰는 글자를 두 개가 아니라 한 개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려고 외자로 만든 거다. 신분제에 따른 호칭은 없어졌으니 이제 사람들이 직함이나 직책으로 서로를 부른다. 그래서 직장을 은퇴한 남성들은 혼란스러워한다. 가정주부의 경우 직함이 따로 없으니, 공손하게 보이는 직함을 만들려고 ‘주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호칭을 부르지 않겠다는 것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 된다.

- 이렇게 호칭이 복잡하니, 사람들이 호칭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다시 가족관계 호칭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족관계 호칭은 복잡할 뿐 아니라 성차별적인 면까지 더 반영돼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것 같다. 최근에 미투 운동부터 시작해서 여성들이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해 더 크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가족 관계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더 크게 나오게 된 원인이 아닐까.
= 그렇다. 호칭에는 파워를 가진 자, 기득권 계층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 남성 중심 사회였으므로 가족 내 호칭이 당연히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져있다. 여자는 결혼하면 ‘시댁’에 가고 남자는 결혼하면 ‘처가’에 간다. 남자는 결혼 후에 다른쪽 부모로부터 ‘~서방’이라고 불리지만, 여자는 ‘며느리’라고 불린다. ‘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다.
양쪽 부모를 지칭하는 말만 봐도 여자는 남편의 부모를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하는데, 남자는 아내의 부모를 ‘장인’ ‘장모’라고 한다. ‘어머님’ ‘아버님’은 부모를 부르는 말이니 결혼 후에 여자는 남편의 부모를 친부모처럼 대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남자는 ‘장인’ ‘장모’이지 친부모가 아니다. ‘도련님’ ‘아가씨’를 보면, 이 호칭들은 뒤에 존댓말이 붙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에 대응하는 ‘처남’ ‘처제’는 반말이 더 자연스럽다.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더 높은 서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럼 이런 호칭들을 한꺼번에 없애고, ‘~씨’나 ‘~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여성가족부에서는 대체 호칭 권고안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왜 굳이 대체호칭을 만들어야할까?
=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바꾸는 것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득권·주류에 있는 사람들은 이 호칭을 바꾸는 게 싫을 수밖에 없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호칭이 ‘내 귀에 캔디’인데 왜 바꾸겠나. 그런데 호칭이 불편하면 소통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는데, 듣는 사람이든 부르는 사람이든 누군가 호칭을 불편해하기 시작하면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대체호칭을 만드는 게 의미있을 수 있다.
또한 대체호칭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호칭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논의를 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여가부에서 대체호칭 만드는 과정에서 설문조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남편의 동생은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하고,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그동안은 생각을 못하다가 ‘어, 이상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그 다음은 대체호칭으로 ‘처남님’ ‘처제님’이라고 부를 거냐, 아님 이쪽도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통일을 할 거냐, 다 그냥 ‘~씨’라고 부를 거냐, 동생들이니까 ‘씨’를 떼고 이름을 부를 거냐 등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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