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후엔 작은 지진 뒤따라..충격 쌓여 잠자던 지진단층 깨워
미세지진 63차례 발생에도
무시하고 지열발전 강행
결국 규모5.4 강진으로 연결
사전에 지질조사도 안해
졸속 입지선정도 도마 위에
조사단, 전국 단층조사 권고
◆ 포항지진 조사결과 ◆

20일 포항 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지난 1년간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국내 조사단과 해외 조사위원회는 각각 포항 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닌 지열발전에 의해 촉발된 촉발지진이라는 동일한 결론을 얻었다"며 "지열발전소의 (발전을 위한) 암반 물 주입이 활동하지 않고 있던 단층대를 활성화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를 구성하는 2개의 지열정(땅속에 물을 넣기 위해 매립한 기다란 관) 중 지하 4340m 깊이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파이프인 2번 지열정(PX-2)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면과 지하 3800m 지점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조사단장인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대한지질학회장)는 "단층에 물이 주입되면서 작은 지진이 유발됐고 지진 규모는 물 주입량이 누적됨에 따라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며 "지진이 발생할 만큼 응력(힘)이 쌓여 있는 단층에 (지열발전을 위한) 물 주입과 (물 주입으로 유발된) 규모가 작은 지진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과 이에 따른 유발지진으로) 남서쪽 방향으로 응력이 계속 쌓이면서 결국 규모 5.4의 포항 지진으로 이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조사단은 2009년 1월 1일부터 포항 지진이 발생한 2017년 11월 15일 사이 지열발전소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을 전수조사했다. 지열발전소 반경 5㎞, 땅속 10㎞ 이내에서 발생한 지진 520건 가운데 진원(지진이 발생한 지점)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98건의 지진을 추려냈다. 이를 3차원 공간상에 표현한 결과 일관되게 땅속 3800m 깊이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하나의 단층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이 확인됐다. 해외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셰민 게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지질학과 교수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단층면을 발견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열발전소는 발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지하 암반에 물을 주입해 인공적인 틈을 만드는 '수리(水理)자극'을 한다.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5차례에 걸쳐 총 1만2800㎥의 물을 주입했다. 이 정도의 물 주입은 일반적으로는 규모 3.5 이하 유발지진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지열발전소에 물을 주입한 시기부터 63차례의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미국 오클라호마 유전지대의 경우, 수백만 t의 물을 주입한 바 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물이 주입됐지만 포항 강진으로 연결된 것은 지열발전소와 단층이 직접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조사단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2번 지열정과 만나는 지하 3800m 지점에 단층면이 존재한다는 또 다른 증거로 시추 과정에서 확보한 암석 조각을 정밀 관찰한 결과를 제시했다. 지하 3790~3815m 구간의 암석 조각에서 단층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일관되게 발견된 것이다.
조사단은 지열발전소가 건설되기 전에는 이 지역에서 지진 발생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셰민 게 교수는 "적어도 2009년 1월부터 2015년 11월 이전까지는 지열발전소 반경 5㎞ 이내에서 지진이 관측되지 않았는데, 지열정 매립을 위한 시추 과정에서 먼저 이수 누출이 발생하면서 소규모 지진이 관측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수는 굴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넣는 물로 진흙 등이 섞여 있다.
다만 정부조사단은 포항 지진이 발생한 단층에 왜 수리자극이 가해지기 전부터 응력이 쌓여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앞서 지난해 8월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2011년 발생한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일어난 국내 관측사상 최고 강진인 규모 5.8 경주 지진으로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응력이 쌓였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강근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과 경주 지진은 포항 지진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며 "두 지진만으로는 규모 5.4의 포항 지진을 일으킬 정도의 응력을 쌓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해외조사위원회의 윌리엄 엘즈워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경주 지진이 포항 지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는 진원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앞으로 포항을 포함해 전국을 대상으로 단층 조사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태경 교수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층은 대부분 땅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만큼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조사단 연구 결과는 단층면에 대한 꼼꼼한 조사 없이 정부가 졸속으로 지열발전소를 허가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진한 교수는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면 응력이 쌓여 있는 단층에 지열발전소를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진한 교수와 김광희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 연구진은 2017년 11월 포항 지진 발생 직후부터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 활동에 의해 촉발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4월에는 포항 지진의 진원이 지열정과 매우 가까운 점 등을 들어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비슷한 결론을 내린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등 유럽 연구진의 논문도 함께 실렸다.
[원호섭 기자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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