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워: 삼국' 원소의 강력함은 의도인가, 버그인가?
[게임의 법칙-140] ◆삼국지 게임의 새로운 길: '토탈워: 삼국'
동아시아에서 인기 순위로 첫손에 꼽기를 주저하기 어려운 콘텐츠인 '삼국지연의'는 이미 수많은 게임들이 중심 소재로 삼아 다채롭게 다뤄진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코에이사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오래 생명력을 이어가는 전통의 시리즈로, 비록 여러 가지 단점들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삼국지'를 다루는 게임 콘텐츠로서는 부동의 인지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별 인물이나 특정 사건이 아니라 중국 후한 말 전역을 다루는 게임으로는 딱히 대적할 만한 콘텐츠 없이 오랫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스튜디오가 예고한 새로운 '삼국지' 게임의 등장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토탈워: 삼국'은 개발사가 오랫동안 집중해 온 냉병기 시대의 전략전술을 다룬 게임 제작을 통해 쌓아온 역량에 '삼국지연의'라는 콘텐츠를 입힌 결과물이었다. '토탈워' 시리즈가 보여준 실시간 전장의 스펙터클은 사실 오랫동안 '삼국지' 팬들 입에서 일종의 희망사항으로 거론되던 터였다. '토탈워' 시스템이 '삼국지'를 다뤘다면 어떨까? 그 오랜 희망과 기대가 2019년에 마침내 정식 출시되었고, 한국의 경우 성우 더빙을 포함한 한국어화가 완료된 버전으로 배포되면서 찬사가 그치질 않는다. 코에이는 적어도 '삼국지' 14편을 내려면 '토탈워: 삼국' 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후한 말 시대를 그려내는 방식은 어느 한쪽이 틀렸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정도이겠지만, 게이머 대중이 '토탈워: 삼국'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게임 속 원소의 강력함은 버그인가? 현실 묘사인가?
'토탈워: 삼국' 출시 후 흥미로운 점은 특정한 캐릭터 설정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비옥한 하북을 기반으로 하는 군주 원소는 '토탈워: 삼국'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선보인다. 원소가 아닌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는 수시로 강대한 원소로부터 속국이 되라는 협박을 받고, 실제 하북의 비옥함을 바탕으로 두터운 군대를 거느린 원소의 힘은 하북 근처에서 시작하는 플레이어에게는 극복하기 쉽지 않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원소 하나만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원소의 협박에 굴복한 수많은 원소의 속국들이 함께 밀려들어오는 상황은 게임의 초·중반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원소를 서양에서는 주로 일종의 버그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캐릭터의 AI가 지나치게 강대하고 과도하게 주변을 압박하는 잘못된 설정이라는 의견이 강했고, 유저들에 의해 원소의 하향을 세팅한 모드가 제작되어 유통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강력한 원소의 모습을 두고 후한 말 당시 하북의 경제력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의견이 더 많아 보였다. 원소의 강력함을 버그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하북의 원소는 강력한 게 정상이라는 입장이었다. 되레 원소에 끝까지 맞섰던 공손찬이 그동안 저평가되었다며 이런 원소를 상대로 버틴 공손찬이야말로 대단했다는 평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게임 속 후한 말 중국에서 하북의 강력함은 비단 '토탈워: 삼국'에서 갑자기 조명된 것은 아니다. 코에이사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최신작인 '삼국지 13'에서도 하북은 굉장히 강력한 지역으로 등장한 바 있었다. 과거 시리즈에서 주로 원소가 부족한 인재풀로 인해 후반으로 갈수록 죽죽 밀려나갔던 것과 달리 13편의 원소는 제대로 초반에 하북을 장악한다면 몇 명의 맹장이나 모사만으로는 감당 안 될 규모의 군세를 보유하고 게임을 지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와 현실 속 후한 말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 세부 묘사에 있어 다른 부분이 적지 않고, 하북과 그 하북의 맹주인 원소의 위상에 대해서는 현실에 비해 연의에서 좀 더 축소된 의미로 다뤄진다는 평이 적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삼국지 13'이나 '토탈워: 삼국'이 다루는 게임 속 후한 말의 무대는 연의보다는 역사 속 후한 말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삼국지'라는 콘텐츠 자체를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연의와 정사를 구분하며 각각의 모습이 달랐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소와 하북의 의미는 정사 속에서 좀 더 강력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한다. 이런 인지가 어느 정도 보편화된 한국의 경우 원소가 강력하게 등장하는 '토탈워: 삼국'의 모습은 게임이 다룰 수 있는 연출의 범위 안에서 인정된다. 반면 그런 맥락에 대한 인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중국 후한 말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서구권에서는 강력한 원소를 일종의 버그로 인식한다는 점은 플레이어들의 게임 플레이가 게임 안에만 머물지 않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 지식과 맥락 안에서 어우러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플레이어의 배경이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흥미로운 사례로서
가상공간 안에 설계된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규칙대로 활동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중국 후한 말은 현실과 소설이라는 기반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한, 시쳇말로 '열라짱센' 하북의 원소는 누군가에겐 게임의 규칙을 넘어선 오류로, 누군가에겐 실제 당시 하북을 반영한 납득 가능한 게임의 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하북이 센 건 버그가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방향으로라기보다는 규칙으로 연출된 하나의 상황이 납득 가능한 플레이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의 과정에는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여러 경험과 지식의 배경이 함께 작용한다는 점을 향한다. 많은 디지털게임들이 난이도와 숙련도의 길항 과정 속에서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전제할 때 그 양 축인 난이도와 숙련도는 결코 고정된 객관적 척도는 아니다. 둘은 모두 각각이 위치한 시공간 속에서 사회 전반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경험과 배경, 맥락 속에서 의미지어진다.
누군가에겐 버그로 인식될 현상이 누군가에겐 납득 가능한 설정으로 이해되는 것은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조차도 완전히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별 경험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게임 플레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좀처럼 보편적인 지점을 말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토탈워: 삼국' 속의 원소는 버그인가, 충실한 재현인가? 정답이 게임 콘텐츠 안에 있는 것일까?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모빌리티는 내가 최고"..'CES아시아' 세계 車업계 총출동
- SKT·MS 손잡고 '클라우드 게임' 만든다
- 멈춰선 삼성 컨트롤타워 "투자계획 올스톱 될라"
- 권오갑 부회장 "한국조선해양 게임체인저로 키울것"
- 용산 열정도 200m 골목, 클라우드 거리로 변신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매경ECONOMY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