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현관 비밀번호 오픈' 집주인의 허술한 보안의식에 불안한 자취 여성들

나진희 2019. 6.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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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비슷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며 혼자 사는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가해자들은 여성이 거주하는 건물 안까지 대담하게 침입해 현관 도어락 번호키를 누르거나 닫히는 현관문을 손으로 잡아 여는 대담한 시도를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성폭행, 살인 등 자칫 끔찍한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주거침입 시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데에는 임대인의 허술한 안전 관리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거침입 성범죄 하루 1건꼴
 
30일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3년간 주거침입 관련 범죄는 총 7만1868건이 발생했으며 이 중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는 99.8%였다. 주거침입 성범죄는 1310건 발생해 하루 평균 1.19건이었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퍼진 폐쇄회로(CC)TV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달 28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던 남성을 가까스로 막아낸 모습이 담긴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 공개되며 세상이 떠들썩했다.
 
영상 속 남성인 조모(30)씨는 범행 당일 오전 6시20분쯤 길거리에서 한 여성을 뒤쫓다 이 여성의 집으로 들어가려 시도했다. 손으로 현관문을 잡아 열려는 조씨를 피해 여성이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에도 조씨는 10여분 동안 벨을 누르며 손잡이를 돌리는가 하면 도어락 비밀번호를 여러 차례 누르고 복도 옆에 숨어 다시 현관문이 열리길 기다리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최근 조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미수로 구속기소했다.
 
서울 강동구에선 한 남성이 하룻밤 새 2명의 여성을 뒤쫓다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 18일 저녁 8시쯤 김모(31)씨가 여성 A씨를 골목길에서부터 빌라 공동현관 앞까지 따라갔다. 불안감을 느낀 A씨가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자 슬그머니 현장을 벗어난 김씨는 이후 9시간이 지난 19일 새벽 6시, 다른 여성 B씨를 따라가 근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까지 탑승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고 머뭇거리는 김씨에게 B씨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자 아무 버튼이나 누르고 먼저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씨를 조사해 성폭력특별법상 성추행목적공중이용시설침입 혐의 추가 적용이나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런가하면 광주에선 노숙자 김모(39)씨가 혼자 사는 20대 여성에게 ‘재워달라’며 집까지 쫓아가 침입하려 했다. 김씨는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해 오피스텔 입구에 앉아있는 걸 본 뒤 따라가 부축하며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고 집 앞까지 함께 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여성이 잠들면 집에 들어갈 생각으로 여성이 누르는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메모해뒀지만 경비원이 말을 걸자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구속했으며 그에게 강간미수 혐의까지 적용할지는 검토 중이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남성 조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현관문에 구멍 생긴다’며 보조키 설치 막는 집주인들
 
주거침입 관련 범죄가 이처럼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전·월세로 혼자 자취하는 여성들은 집주인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집주인들이 편의를 이유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음식 배달원, 택배기사 등 외부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개인정보도 쉽게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 중인 딸의 원룸에 낯선 남성이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오려 했다고 알린 50대 유모씨는 “사건이 있고 나서 집주인에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달라고 요청했으나 다시 공지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더라”며 “심지어 건물 주차장에는 몇 호에 사는 누구 차인지, 이름, 휴대폰 번호 등이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붙어있었다.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정말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관문에 구멍이 난다는 이유로 집주인이 보조키나 안전고리장치 등의 설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남자 집주인이 건물 관리를 위해 마스터키를 갖고 있었다. 불안해서 내 돈으로 원룸 현관문에 보조키와 안전고리장치를 달겠다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문에 구멍을 내놓으면 미관상 안 좋다고 하더라”며 “집주인은 오히려 자기를 의심하냐고 기분 나빠하던데 요새 주거침입 범죄 얘기도 많고 불안해서 계약 전에 이사 갈까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 ‘여성안심 홈 4종세트’사업도 집주인 동의 없으면 무용지물
 
서울시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해 비디오폰, 현관문 안전고리, 문열림센서, 휴대용 긴급비상벨 등의 보안장치를 무료로 지원해주는 ‘여성안심 홈 4종세트’ 시범사업의 경우도 집주인의 동의가 없으면 비디오폰, 현관문 안전고리를 설치할 수 없다. 관악구청 담당자는 “여성 1인 가구가 지원을 희망할 땐 건물주와 상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이 관련 내용을 물어보시려 저희 쪽에 전화를 주신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혹시 건물주의 반대로 비디오폰이나 안전고리 설치가 어려우면 휴대용인 문열림센서, 긴급비상벨만 신청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주거침입 범죄 발생 시 집주인에게도 도의적 책임 있어”
 
전문가들은 임대인들이 범죄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학)는 “집주인이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여기저기 알려줬거나 현관문 방범장치를 못 달게 했을 때 주거침입 범죄가 발생했다면 집주인도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집주인의 이러한 행동은 사실상 건물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여러 사람에게 나눠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다만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지는 사건별로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집주인들이 계약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세입자가 방범장치 확충 등을 요구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집주인들이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생활 주변에서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빈틈 등을 줄여나가는 범죄 예방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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