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작곡가 김정희 "애국가, 불가리아 민요 표절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
[경향신문]

최근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안익태 케이스>라는 책을 통해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파를 넘어 유럽에서 친나치 활동을 했다고 폭로했다. 일본명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히틀러 생일 기념 ‘베토벤 페스티벌’ 등 유럽에서 30여차례 공연하고, 나치독일 제국음악원 회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안익태의 ‘파렴치함’도 고발하고 있다. 경희대 강효백 교수는 애국가 작사가 윤치호(일본명 이토 지코)의 알려진 친일 행적과 무궁화가 일본 꽃임을 들어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해영·강효백 교수가 ‘문헌적’ 관점에서 애국가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철저히 ‘음악적’ 관점에서 애국가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있다.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3)다. 그는 강사지만 강사도 교수다.
-현재 애국가를 바꾸자는 주장과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주장은 약간 결이 다른 것 같다.
“<경향신문>에서 이해영 교수의 <안익태 케이스>를 첫 보도하지 않았나. 이 교수와 나는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최근 임진택 선생은 아리랑에 가사를 붙여 애국가로 하자는 등 애국가 문제가 대중화되는 분위기다. 애국가와 국가는 다르다. 조선 고종 시절에도 애국가는 여러개 있었다. 안익태 애국가 독점구조만 깨면 된다.”
애국가와 국가는 다르다 -오래전부터 한예종 강의에서 안익태 애국가를 음악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2011년부터 대학원 강의에서 미국·프랑스·일본·중국 국가 노랫말과 선율·음계·리듬 등을 분석해 들려줬다. 노랫말을 보면 미국 국가에는 그들의 역사가 들어 있다. 프랑스는 ‘깃발을 적의 피로 물들이자’라는 끔찍한 가사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피로써 얻고 지킨다’는 사회적 합의로 수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국가도 사회주의 투쟁과정과 비전이 들어 있고, 일본은 ‘천왕 통치 치세 작은 돌이 큰 바위가 되고’라는 나름 생산적 노랫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소모적 노랫말이다. 동양에 없는 ‘하느님’ 표현도 문제이고, 우리 건국이념이나 홍익인간 같은 뛰어난 인류애도 담기지 않았다.”
-노랫말도 문제지만, 곡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미국과 프랑스 국가는 4분의 4박자 장조로 서양음계에 충실하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는 자국 전통음계를 충실히 따라간다. 중국도 궁상각치우 5조에 궁조로 돼 있다. 국가는 그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애국가는 서양음계를 그대로 차용했다.”
-애국가가 서양음계 차용을 넘어 외국 민요를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국가는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O! Dobrujanski Krai)>와 거의 똑같다.(그는 휴대폰에서 이 음악을 직접 들려줬다) 강의시간에 이 곡을 들려주면 학생들이 충격을 받는다. 음악은 통상 두 마디 이상, 모티브만 비슷해도 표절이다. 그런데 애국가의 처음 ‘동해물과 백두산이’ 두 마디와 ‘우리나라 만세’ 마지막 두 마디도 같다. 안익태가 이 민요를 표절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수치스런 일이다.”

-작곡가 입장에서 애국가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랫말과 선율이 합치하지도 않는다. ‘동해물’은 ‘해’가 강조되면서 ‘동-해물’로 들려 ‘해물’이 된다. ‘백두산’은 ‘백-두산’으로 음이 꺼진다.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을 푹 꺼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작곡의 기본이 안된 것이다. 노래는 가사를 가장 잘 전달하는 선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사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작곡은 콩쿠르에서 탈락감이다.”
김 교수는 “국가는 노랫말에 건국이념과 철학·역사·비전·자부심 5가지와 곡에는 문화적 정체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면서 “음악을 아는 사람은 애국가에서 자부심보다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그의 애국가에 대한 혹평은 끝이 없을 정도다.
그는 현행 애국가는 그냥 두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법은 공모를 통해 노랫말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랫말이 정해지면 이에 가장 잘 어울리고, 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전통 선율로 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공모로, 다수가 집단창작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왕이면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북측과도 노랫말과 곡을 협의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남북은 종종 단일기를 쓰고 있으니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북한 토속민요 연구로 석사학위 받아
김 교수의 전공은 북한 토속민요다. 그는 황해도 <풍구타령>에 매료돼 한예종에서 북한 민요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에서 한국민요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북한은 전통음악의 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는 “북은 음악을 활용하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전통 음악어법을 충실히 보존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양은 물론 일본·중국·인도 음악은 1박자를 2개로 나누는 ‘2분박’을 기본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3분박을 쓰지만, 우리 전통음악은 반대로 ‘3분박’이 기본이고 예외적으로 ‘2분박’을 쓴다고 한다. 이것은 남북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했다. 그는 “소리를 떠는 ‘시김새’의 경우 우리는 아래를 떨지만, 북은 위를 떠는 차이가 있다”면서 “팔도에 방언이 있듯이 음악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해 첫 음반 <일천 기러기 날아가듯>을 발표했다.
“그동안 모은 7곡과 4·27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기념해 새로 한 곡을 작곡해 8곡을 수록했다.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전통공연은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반을 들어봤는데 실내악곡은 요즘 카페에서 틀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 감각이다.
“민요 원곡이 워낙 좋다. 원곡이 아름다우니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이 좋을 수밖에 없다. 좋은 원석을 발견하고 다듬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게 나의 작업이다. 또 내가 곡을 잘 만들어도 연주자들이 잘 해줘야 한다.”
-음반평을 보니 최고의 연주자들이 참여했고, 제작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는 평가였다.
“피리 안은경, 퉁소 김동근, 가야금 추정현·조선아, 해금 김보미·문새한별, 북 유경화, 장구 윤호세·방지원, 거문고 류관우, 대금 김대곤, 생황 김태형, 아쟁 이화연, 양금 최휘선 등 연주자 모두 잘해줬다. 특히 녹음을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받은 황병준 사운드미러 대표가 했다. 음반제작 취지도 좋다고 절반 값만 받았다. 그래서 이 음반은 ‘내 음반’이 아닌 ‘우리 음반’이라고 소개한다.”
-작품에 ‘기러기’라는 표현이 많이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노래 가사에 ‘일천 기러기 날아가는 듯이’라는 후렴구가 있다. 농부들이 줄지어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러기들은 서로 도우며 그 먼 길을 같이 간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그렇게 기러기처럼 힘을 합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김 교수는 1966년 부산 출신이다. 아버지가 사업하다 실패해 어머니가 고생하며 자식을 키웠다. 그는 “집에 있는 세계 애창곡집을 매일 3시간씩 듣고 부르며 음악을 독학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했다. 음대에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레슨을 받지 못해 결국 중앙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전자공학은 너무 재미없었다. 1학년 때부터 공부보다 그룹사운드 ‘블루 드래곤’에서 베이스기타를 쳤다.
‘씻김 2014’ 세월호 추모 공연
그는 학창시절 흔한 데모를 싫어했다. 특히 보도블록과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폭력적이라 질색이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서 대학 3학년 때인 1988년 ‘변혁’이 일어났다. 고향 부산에서 학생 시위로 길이 막혀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시위대와 함께 걸었던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시위에 참여한 그는 이때 ‘학생의 폭력은 방어적 폭력이고 국가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 더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룹사운드를 그만두고 풍물패를 만들었다. 이 풍물패 ‘한마당’은 지금도 활동한다. 공대에 없던 민주학생회를 만들어 총무를 맡았다.
그 해 5월 15일 서울대 조성만 학생이 ‘군사정권 반대, 양심수 석방, 한반도 통일’을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할복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광주 망월동 장례식에 참석하는 버스 안에서 급하게 만들어 직접 부른 노래가 바로

<통일 그날까지>다. 이 노래는 악보 없이 떠돌다 최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수집한 <노래는 멀리멀리-1987~1989 민중가요 편> 367쪽에 수록된 것을 확인했다.
그는 “즉석에서 만들어 2절도 없이 짧고 노랫말도 소박하다”면서 “발견된 악보에는 작사·작곡가 이름도 없고 ‘조성만 열사 추모곡’이라는 부제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1991년 구로공단 전자부품 공장에 들어갔다. ‘전공’인 전자공학을 살려 열심히 납땜을 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해고되고 설상가상 폐결핵까지 앓았다. 부산 집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면서 미싱을 배웠다. 그리고 다시 경기도 안산 가죽·봉제공장에 취업했고, 노동현장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았다. 33세에 다시 부산예술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36세에 다시 중앙대 한국음악과에 편입했다. 이후 한예종에서 석사, 2016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하던 음악을 마음껏 하게 된 것이다. 그는 201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년국악단과 함께 ‘씻김 2014’라는 세월호 추모 씻김굿을 공연했다. 이 씻김굿을 바탕으로 세월호 추모곡 <꽃 같은 그대 별 같은 꿈>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요즘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 추모곡을 만들고 있다. 그는 “꽹과리, 태평소를 이용해 민요풍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이 강조한 것이 생명과 평화라는 말에 다시 만들고 있다”면서 “5월 11일 백남기 농민이 가꾼 보성 밀밭을 보고 최종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추모곡은 6~8월 연습해 9월 추도식 때 초연할 계획을 세웠다. 이미 중앙대 졸업생으로 이뤄진 노래패 ‘어울소리’도 만들어 격주 토요일 노래연습도 하고 있다. 그는 또 이내창 열사 추모곡도 만들고 있다.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은 1989년 거문도에서 의문의 시신으로 떠오른 의문사의 주인공이다.
그를 보면 음악에 대한 집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삶 역시 매우 치열했다. 체구는 작지만 목표는 컸다. 그는 자신이 이루려는 음악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우리 전통음악 어법을 책으로 정리하고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릴 것이다. 우리가 K팝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K’가 없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우리 국악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우리 음악어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내 음악의 최종목표는 우리 전통음악을 보통 가요에서 살리는 것이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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