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딜러→치킨알바→쌈밥집→포차, 백종원 '장사의 희열' [콕TV]

신나라 2019. 3. 3. 08: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천생 장사꾼 체질인가 보다.

중고차 딜러는 백종원에게 지금의 장사 철학을 알려준 계기가 됐다.

이후 할머니는 백종원에게 가게를 맡겼고, 호프집 운영 수익으로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성공시켰다.

지난 1993년부터 백종원은 인테리어 사업과 쌈밥집 사업을 동시에 운영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리포트=신나라 기자] 천생 장사꾼 체질인가 보다. 백종원이 상처와 실패를 거듭하며 재기하기까지. 장사를 하면서 느낀 행복감에 대해 털어놨다.

백종원은 지난 2일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2'에서 "방송에서 비치는 이미지는 포장된 게 많다. 내가 뭐 다 알겠냐. 좋은 면이 부각된 거다. 어릴 때부터 관심은 많았다"며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사업가 기질에 대해 밝혔다.

백종원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간 산에서 농사 짓는 걸 본 적 있는데 나무만 세우고 물을 뿌렸는데 버섯이 나오는 거다. 어린 마음에 솔깃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했는데 사과 재배는 손이 많이 간다. 반면 버섯은 물만 주면 알아서 큰다고 하니까 '저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첫 아르바이트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했다. 첫 아르바이트는 중고차 판매였다. 중고차 딜러는 백종원에게 지금의 장사 철학을 알려준 계기가 됐다. 백종원은 처음엔 차에 대해 외워 차를 팔았다. 며칠 만에 6대를 팔다 보니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운행 거리가 조작된 차량인 줄 모르고 판매했다가 고객에게 뺨을 맞고 충격을 받게 됐다. 그는 "장사에 대한 책임, 소비자에 대한 책임, 내가 파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소비자 신뢰 회복, 등을 배웠다"며 경험에서 얻은 장사 철학에 대해 밝혔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서울 압구정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백종원은 당시에도 상권을 파악하는 눈썰미가 남달랐다.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났을 시기. 백종원은 직접 손으로 전단지를 작성해 아파트에 돌렸다. 200장의 전단지를 돌리고 나자 주문이 폭주했다. 그때 그는 "내가 떠올린 전략이 반응이 온 게 쿵쾅거리더라. 그런게 장사의 매력"이라고 회상했다. 이후 할머니는 백종원에게 가게를 맡겼고, 호프집 운영 수익으로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성공시켰다.

지난 1993년부터 백종원은 인테리어 사업과 쌈밥집 사업을 동시에 운영했다. 쌈장 개발부터 대패 삼겹살, 볶음밥까지 개발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지인으로부터 목조주택 건축자재 독점으로 수입건을 제안받았다. 백종원은 "처음엔 잘 됐다. 목조 주택 붐이 일어나서 건설회사까지 개업했다. 잘 됐는데 IMF가 왔다. 집 짓는 계약할 때 정확한 견적이 아닌 평당으로 계약한다. 자재비가 올라가면서 짓는 족족 적자가 발생해서 내가 물어내야 하는 돈이 늘어났고 빚도 늘어났다"고 고백했다.

당시 백종원은 인건비를 어음으로 지급했다. 은행 대출 또한 불가했다. 기업 상대도 아니고 개인에게 가는 돈이기에 결국 그는 쌈밥집에서 채권자들을 만나 무릎을 꿇고 사정하기에 이르렀다.

백종원은 "채권자들 놓고 '이 식당 하나 남았는데 나눠 가져도 얼마 안 된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서 꼭 갚겠다. 꼭 일어날 자신 있다'고 했다. 만장일치로 어음을 연장했다. 급한 건 일수로 막았고 빚이 17억이 됐다. 그때 일은 못 잊는다. 제일 창피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낙폭이 정말 컸다"고 털어놨다.

돈 앞에서 달라지는 지인들의 얼굴에 백종원은 모멸감을 느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백종원은 "많은 분들이 집안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오해 하시는데 집에서는 외식업을 너무 반대했다. 아버지는 내가 망한 줄도 몰랐다. 사업한 것도 독립하고 싶어서 그랬다. 자존심이 세서 빌릴 생각도 안 했다. 고생 정말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백종원은 포장마차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서빙부터 장보는 일, 요리까지 혼자 다 해냈다. 새벽 4시에 가락시장에서 장을 본 뒤 오전 6시에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준비했다. 오전 10시에 퇴근해 오후 4시에 다시 출근하는 하루가 반복됐다. 하루에 평균 4시간을 자면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백종원은 "몸은 힘든데 재밌는 거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니까. 이자를 감당하기 시작한 거다. 사람이 어마어마한 부를 누려 행복한 게 아니라 이자를 감당하면서 행복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신나라 기자 norah@tvreport.co.kr /사진=SBS

Copyright © TV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