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스타렉스
대한민국의 1박스형 승합차들은 80~90년대까지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었다. 국내에서 1박스형 승합차들은 상용차로서의 역할은 물론, 다인승 차량을 필요로 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가정에서도 요긴한 이동수단이 되어주었다. 1박스형 승합차는 크기에 비해 실내 길이가 길고 차체 크기에 비해 회전반경도 짧은 덕분에 대한민국 곳곳의 산업과 생활의 현장을 발로 뛰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 1박스형 승합차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1박스형 승합차는 구조적으로 충돌 안전에 취약하다. 기본적으로 1차 충격을 흡수하는 크럼플 존(Crumple Zone)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탑승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대 15명까지 승객을 탑승시킬 수 있도록 설계되는 차량이 충돌안전에 취약하다는 것은 곧 사고시 인명피해가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구식 설계로 인해 승용 시장에서 1박스형 승합차는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미니밴과 MPV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하며 상품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1박스형 승합차들은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론 신차 시장에서 모조리 퇴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퇴장해야만 했던 수많은 승합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차는 바로 현대자동차의 스타렉스(STAREX)다.
승용 미니밴과 승합차 사이
현대 스타렉스는 현대 리베로와 함께,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1.5박스형 상용차다. 이른 바 ‘세미보닛형’으로도 불리는 1.5박스형 차체구조는 적재량과 충돌 안전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어, 과거부터 유럽의 경상용차(Light Commercial Vehicle)들이 주로 취해 온 형상이다.
현대 스타렉스는 세미보닛형 차체를 중~소형 승합차에 적용한 첫 번째 사례이다. 또한, 철저하게 실용적인 측면에 무게를 실을 수 밖에 없었던 기존 1박스형 승합차량들과는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도 시도했다. 실내의 디자인과 패키징에 공을 들여 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승용차에 가까운 감각을 연출했다. 이렇게 완성된 스타렉스는 한층 크고 웅장한 외관과 더불어, 시장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현대 스타렉스는 개발 당시부터 여러 차종을 벤치마킹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다. 그 중에서도 협력관계에 있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델리카 스페이스기어(Delica Spacegear)’와 상당 부분이 유사한 구성을 띄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타렉스는 한 때 미쓰비시 델리카 스페이스기어의 라이센스 버전이라는 헛소문에도 휩싸였었다. 스타렉스는 처음부터 현대자동차가 독자적으로 개발을 진행한 차량이기는 했지만 델리카 스페이스기어를 카피에 가까운 수준으로 벤치마킹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진짜로 라이센스 생산했던 차종은 ‘그레이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던 미쓰비시 델리카(Delica)다.
스타렉스는 그 크기부터 다른 승합차들과는 크게 달랐다. 기존의 1박스형 승합차들이 주로 폭은 좁지는 길이가 긴 형태를 띄는 데 반해, 스타렉스는 길이는 짧고 폭은 넓으며, 높이는 더 높았다. 스타렉스의 길이는 모델에 따라 4,695~5,035mm, 폭은 1,820~1,840mm, 높이는 1,885~2,185mm에 달했다. 휠베이스는 RV왜건 모델은 2,810mm, 점보 왜건/밴 모델은 3,080mm였다. 또한 전반적으로 승용차를 닮은 곡선형의 외관 디자인을 적용하여 기존의 생계형 승합차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실내에서는 ‘고급화’ 전략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는 고급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초창기 그레이스의 사례를 기반으로 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스타렉스는 운전석부터 여타의 1박스형 승합차와는 달랐다. 스티어링 컬럼 각도를 승용차에 근접하게 설정하였고. 대시보드의 구성 또한 승용 세단에 근접한 디자인을 채용하여 남다른 분위기를 냈다. 고급형 모델에는 우드그레인 장식을 사용하고 인테리어의 색상 또한 승용차와 유사하게 설정함으로써 한층 남다른 감각을 뽐냈다. 좌석 구조는 밴 모델의 3인승 및 6인승, 왜건 모델의 7인승, 9인승, 11인승, 12인승 배치가 각각 존재했다. 11인승은 2-3-3-3, 12인승은 3-3-3-3의 배치를 가지고 있었다.
초대 스타렉스는 2.6리터 디젤엔진과 2.4리터 시리우스 가솔린 엔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LPG 엔진까지 총 3종의 엔진을 고를 수 있었다. 변속기는 수동 5단이나 자동4단 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초기 스타렉스에 사용된 디젤엔진은 미쓰비시자동차가 개발한 아스트론 계열의 엔진으로, 포터와 그레이스 등을 통해 신뢰성이 검증된 엔진들이었다. 단, 포터나 그레이스에 비해 훨씬 크고 무거운 스타렉스에는 동력성능이 부족한 편이었다.
2.4리터 가솔린 엔진은 초대 그랜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118마력의 최고출력과 19.8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가솔린 엔진이기에 정숙성은 뛰어났으나, 연비는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엔진을 탑재한 모델은 판매량이 매우 적었다. 구동계는 후륜구동을 기반으로, 파트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미쓰비시 델리카 스페이스기어의 구성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스타렉스의 엔진은 이후 2000년도의 부분변경을 통해 103마력의 최고출력과 24.0kg.m의 최대토크를 내는 T엔진으로 교체되었다. 가솔린 엔진은 라인업에서 제외하고 LPG 엔진 또한 새롭게 3.0리터 V6 엔진을 도입했다. 새로이 도입한 엔진들은 크게 향상된 동력성능을 제공하여 스타렉스의 흥행을 이끌었다. 또한 2002년에는 당시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쉽 SUV, 초대 쏘렌토에 먼저 사용되었던 최신형의 2.5리터 A엔진을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A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아스트론 계열의 엔진을 21세기의 기준에 맞게 대대적으로 개량한 것으로, 커먼레일 직분사(CRDi) 기구와 웨이스트게이트식 터보차저(WGT)를 적용하여 145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과 33.0kg.m의 최대토크를 자랑했다.
2004년, 데뷔 8년차를 맞은 스타렉스는 ‘뉴 스타렉스’라는 이름과 함께, 또 한 번의 변신을 이룬다. 2004년은 스타렉스에게 큰 변화가 요구되었던 시점이었다. 동사의 상용 승합차 역할을 하고 있었던 그레이스가 2004년을 기해 단종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의 스타렉스는 이전까지의 승용 미니밴과 상용차의 사이에 자리했던 포지션을 벗어나, 그레이스의 뒤를 잇는 승합차로서 변모하게 된다. 2004년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뉴 스타렉스는 기존에 비해 한층 달라진 전면 디자인이 특징이다. 대형화된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물론, 클리어 렌즈를 적용한 테일램프 등이 특징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기존 그레이스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기존 왜건과 밴 모델로 구성되었던 라인업이 대폭 늘어나, 더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파워트레인의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제공되었던 3.0 LPG 엔진은 단종을 맞았고, 기존 2.5리터 T엔진과 A엔진으로 엔진 라인업을 재편했다. 이 외에도 하이리무진 모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대적인 변화를 맞은 뉴 스타렉스는 2007년까지 판매되다가 후속 모델인 그랜드스타렉스에 바통을 넘겨주고 단종을 맞았다.
그랜드스타렉스는 2007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도 국내 상용 승합차 시장을 독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대적인 디자인 변경은 물론, 승용 세단의 감각을 살린 어반 모델과 리무진 모델을 새롭게 내놓으며 과거 초대 스타렉스가 누렸었던 승용형 미니밴과 승합차 사이를 다시금 노리고 있다.
초대 스타렉스는 현대자동차가 독자개발한 탄탄한 바디-온-프레임 차체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캡오버형 1톤 화물차와 차별화된, 새로운 개념의 1톤급 소형 화물차를 출시했다. 이 차가 바로 리베로(Libero)였다. 현대 리베로는 ‘1톤 리무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시장에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리베로는 스타렉스의 걸출한 성능과 편의성, 세미보닛 타입의 우수한 정비성, 그리고 안전을 모두 품은 1톤 화물차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기존 캡오버형 화물차에 비해 비싼 가격과 작은 적재함 크기, 그리고 큰 선회반경으로 인한 기동력 부족을 이유로 스타렉스와는 달리, 시장에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반면, 그러한 설계 기반 덕분에 다양한 형태의 특장차로 각광받기도 했다. 현대 리베로는 2007년, 스타렉스와 함께 단종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