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삼대째 [만화로 본 세상]
ㆍ장인의 길은 운명이었나, 압박이었나
장인들이 스스로 길을 선택했다고 혹은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더라도, 사실은 문화의 압력, 사회의 압박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우려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는 유난히 ‘맛집’이 많다. 단지 우리나라와 비교해 그런 것은 아니고, 전세계 어디보다 맛있는 음식점이 많기로 유명하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 도쿄-요코하마-쇼난 지역에만 300여곳이 있고, 교토-오사카-고베-나라 지역에 비슷한 수가 더 있다. 미식의 도시 파리에 80개가 채 안 되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물론 미슐랭 가이드가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공통적으로 “어느 식당을 가도 맛있더라”는 간증을 덧붙인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일본의 식당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만화 〈어시장 삼대째〉에서 힌트를 찾았다. 이 작품은 은행원을 그만두고 츠키지 어시장의 중간도매상으로 활약하는 주인공 슌타로의 이야기다. 만화는 그가 어류 중간도매점 ‘어진’의 3대 주인이 되어 점차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하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라 부르는 장인정신을 굉장히 존중한다. 자식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가문의 일을 계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계자의 자리는 남성에게만 허락된다. 그 때문에 딸만 있는 집안은 가업을 유지하기 위해 사위를 양자로 입적하고 딸과 결혼하게 하는 ‘서양자제도’가 1947년까지 있었다. 가문에 대한 집착과 가업을 꼭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만들어 낸 기이한 제도다. 그렇게 무거운 책임을 안은 채 슌타로는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이런 문화 덕분에 일본에는 100년이 넘은 기업 시니세(老鋪)가 2만2000개나 있고, 이 숫자는 전세계의 80%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많은 수는 자신들만의 레시피를 지켜 온 식당들이고, 또한 어진 같은 좋은 식자재를 공급하는 중간도매상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셰프의 팔이 되어줄 식칼을 만드는 기업도 있고, 오랜 시간 숯을 만드는 것에만 열중한 작은 노포도 있다. 식당에 최고의 면을 공급하기 위해 몇 대를 거쳐온 공장도 있고, 고집스러운 시골의 양조장도 있다. 이렇게 한 우물을 100년 이상 수백 년을 바친 가문이 모여 일본의 거대한 ‘맛집’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부러운 환경이다.
그런데 쇼쿠닌(장인)의 노하우가 배어 있는 음식을 받아든 기분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아니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다. 우리가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바탕에는 어떤 식으로든 희생이 깔려 있다. 대량으로 사육하고, 개발이 늦은 지역의 인력을 착취하며, 자연을 훼손하는 식으로 우리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구태여 매번 떠올리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 나은 맛의 배경에도 이런 희생이 동반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찜찜한 심정이다. 장인들이 스스로 길을 선택했다고, 혹은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더라도 사실은 문화의 압력, 사회의 압박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우려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는 가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좋은 품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던 대기업이 도산하는 사례도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개인의 자유는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장인정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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