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이순신 장군상' 역사적 조형물 vs 정치적 상징물.. 시대 따라 '수난'
-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논란史
1968년 “日기운 제어” 건립… 재료 부족해 탄피·놋그릇 녹여 제작
역사적 조형물 vs 정치적 상징물… 시대 상황 따라서 수차례 ‘수난’
높이 17m·무게 8t 동양 최대
故김세중 서울대 교수가 제작
“일본刀 들고 패장의 이미지”
1977년 졸속제작문제 불거져
YS정부땐 충무로 이전 검토
2010년 50일간 전면 보수도
새 광장 설계안에 다시 논쟁
결국 공론과정 거쳐 결정키로
서울시가 지난 21일 광화문광장을 3.7배 넓게 새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현재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400m 떨어진 정부서울청사 옆으로, 세종대왕 동상은 서쪽으로 100m 거리인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옮기는 방안을 내놓은 이후 불거졌던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 논란이 현 위치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가세한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 논란은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968년 건립 이후 이순신 장군 동상은 51년째 광화문 광장을 지키면서 숱한 논란을 겪었다. 건립 초기 부실 제작 논란을 시작으로 정권에 따라, 도시계획에 따라, 서울시장 교체에 따라 이전·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광화문 광장에 있으면서도 세종대왕 동상(2009년 건립) 이전 문제는 큰 논란이 일지 않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는 것이 이 같은 역사성,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조형물과 정치적 상징물로서의 두 가지 위상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앞으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상징성을 놓고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짝퉁’ 주장 속 철거·이전 논란 겪어 = 이순신 장군상은 제막 이후 ‘정통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왼손잡이가 아닌데도 칼이 든 칼집을 오른손에 잡아 패장 이미지를 풍기고, 칼은 일본도이며, 입은 갑옷이 중국 갑옷이라는 주장 등이다. 심지어 이순신 동상 얼굴이 표준 영정이 아닌 제작자인 고 김세중 서울대 교수의 얼굴을 닮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또 갑옷 자락이 발목까지 흘러 활달한 무인의 기상이 아닌데다 독전고가 똑바로 서지 않고 누워 맥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순신 장군상을 재설치하거나 철거하자는 논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공론화됐다. 동상 고증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비등한 데 따른 것이다. 1977년 이 동상이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졸속 제작된 사실이 지적되면서 1979년 5월 새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해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10·26 사태 여파로 정국이 요동친 가운데 동상 원작자의 예술성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맞물리면서 이 문제는 흐지부지됐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4년에는 이순신 장군상을 충무로로 이전하고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기로 검토했다. 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04년 세종로 보도를 넓히면서, 2008년에는 지금의 광화문 광장을 만들면서 다시 이전론이 나왔다가 수그러들었다. 이 문제가 가장 최근 재점화된 것은 2010년 11월 이순신 장군상이 부실 제작으로 대대적인 수리를 하게 되면서였다. ‘문화재제자리찾기행동’ 사무총장인 혜문스님은 “이순신 동상의 칼이 직선형의 일본식, 갑옷은 패치워크 스타일의 중국식이라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라며 “차제에 다시 철저히 고증하고 나서 새로 제작하는 문제를 본격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립 목적 = 기단 10.5m·동상 6.5m인 이순신 장군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는 지시로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세종로, 태평로가 뚫려 있어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니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풍수지리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광화문 사거리로 위치가 결정됐다. 당시 세종네거리 제1녹지대에 건립된 충무공 동상은 박 대통령이 기금을 헌납했고 친필로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이라고 새겼다. 제막식에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이효상 국회의장, 김종필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 총재, 장태화 서울신문 사장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제작은 김세중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서울대 미대 학장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동상은 전체 높이 17m, 무게 8t으로 동양 최대규모였다. 당시 경제 상황상 이만한 동상을 만들 재료가 부족했다. 폐어선의 엔진과 탄피, 고철, 놋그릇, 놋숟가락까지 녹여 만들어야 했다. 청동 고유의 색이 안 나와 청록색 페인트와 동분을 섞어 표면에 칠했다. 재료의 균질성이 떨어지니 부식에도 약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11월 동상 속에 내시경을 넣어 대대적인 ‘건강 검진’을 한 뒤 그해 연말까지 약 50일간 전면 보수를 한 배경이다. 이후 서울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4월 28일) 이전에 정기점검을 하고 동상을 세척하고 있다.
◇“연말까지 공론화 거쳐 결정”=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순신 장군상 이전 문제가 논란을 빚자 “워낙 온 국민의 관심사라 연말까지 공론 과정을 거쳐 충분히 시민 의견을 존중해서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서울시의 새 광화문광장 대표 설계자인 진양교(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는 3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광화문광장의 주인은 시민이고, 시민이 원하는 것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고집부리지 않겠다’고 서울시에도 얘기했다”며 “시가 시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아 우리에게 전달하면 새 광화문광장 설계안에 반영하겠다. 설계축이 비워져 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상을 존치한다 하더라도 설계안이 크게 바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진 대표는 “우리는 화가나 음악가처럼 자기의 작품세계를 고집하는 아티스트가 아니고 공공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라며 “설계자의 덕목은 공간 주인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세종대왕상에 대해서는 “(세종대왕상이) 광화문광장 구조 축을 막고 있다”며 이전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시민 의견을 수렴해 이순신·세종대왕 동상의 이전 여부를 결정한다.
이순신의 장인 방진(1514∼?) 보성군수의 후손 방성석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상임이사는 30일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이순신 장군이 구원해서 나라가 살아있는 건데 그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정부서울청사 한쪽 구석에, 존재감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 옮긴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상은 단순히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라 굉장히 큰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도연·이후민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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