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 관계사인 '모셔널'이 글로벌 자율주행 평가에서 1년 만에 10계단 하락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에도 매년 손실이 커지고 있어, 평가지표가 낮아진 것이다. 반면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같은 평가에서 전년보다 순위가 오르면서, 모셔널을 앞질렀다. 누적 투자금액이 500억원대에 불과한 에이투지는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을 투입한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어, 향후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보인다.
14일 글로벌 컨설팅업체 가이드하우스(Guidehouse)에 따르면 최근 발표한 '2024년 자율주행 리더보드' 보고서에서 에이투지는 11위를 기록하며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 관계사 '모셔널(15위)'을 넘어섰다. 에이투지는 2023년 13위에서 두 계단 상승, 추격(챌린저) 그룹에서 경쟁(콘텐더) 그룹으로 올라섰다. 반면 모셔널은 지난해 5위에서 올해 15위로 급락하며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가이드하우스는 매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기업들을 평가하며 순위를 발표한다. 구글의 자율주행 관계사인 '웨이모'는 올해 리더보드에서 1위를 차지하며, 3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이어 중국의 빅테크 '바이두', 이스라엘 자율주행 테크기업 '모빌아이',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평가에서 10위를 기록한 '크루즈'는 모기업 제너럴모터스(GM)가 로보택시 사업을 중단하고 인력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등 사업 축소를 겪고 있어 사실상 순위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감안하면 에이투지의 실질적 순위는 10위로 평가될 수 있다. 또 상위권 기업 중 자율주행 트럭 사업 중심인 오로라(5위), 플러스(6위), 개틱(9위)을 제외하면 승용차와 로보택시 부문에서는 에이투지가 세계적으로 실질적인 7위에 해당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8년 설립된 에이투지는 세종, 대구, 안양 등에서 자율주행 실증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 새벽동행 자율주행 버스 △안양시 주야로버스 △인천공항 자율주행 셔틀 △하동군 농촌자율주행버스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올 3분기에는 운전석이 없는 '레벨4' 자율주행 9인승 셔틀인 '로이(ROii)'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에는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과 합작법인을 설립해서 진출하고 있다. 우선 중동 시장의 경우 아랍에미리트(UAE)의 AI 기업 '바야낫'과 함께 자율주행 합작법인 ‘아부다비 오토노머스 드라이빙(A2D)’을 설립해 자율주행 택시·셔틀·버스 사업을 준비 중이다. 또 아세안 시장에선 싱가포르 AI 솔루션 기업 'KGS'와 합작법인 '오토노머스투글로벌(A2G)'을 세워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이드하우스는 △기업비전(15%) △시장진입전략(20%) △사업파트너(15%) △상품전략(20%) △기술력(30%) 등의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리더보드 점수를 매긴다. 이번 평가에서 에이투지는 기업비전에서 85점, 시장진입전략에서 75점을 기록하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상품전략(68점)과 기술력(68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
특히 기업 비전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에이투지가 국내·외에서 자율주행 셔틀 로이 운행 계획을 발표하며 미래 지향적인 사업 전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에이투지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실제 상용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기술력 부문에서는 68점을 받아 다른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에이투지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핵심 관계사인 모셔널이 올해 리더보드에서 15위를 기록하며 지난해 5위에서 크게 하락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모셔널은 2020년 설립 당시 현대차그룹과 앱티브(Aptiv)가 각각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씩 총 40억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6341억원), 기아(4227억원), 현대모비스(2114억원)가 총 1조2682억원을 추가 출자하며 모셔널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자율주행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모셔널은 △2020년 매출 6억4500만원·순손실 2256억원 △2021년 매출 9억4900만원·순손실 5162억원 △2022년 매출 12억700만원·순손실 7517억원 △2023년 매출 17억7500만원·순손실 8037억원 등 4년 간 매출액 45억7600만원, 순손실 2조2972억원을 기록했다.
가이드하우스는 보고서를 통해 "모셔널이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시장 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모셔널이 기술 개발 뿐 아니라 상업적인 전략 수립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반영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선 에이투지가 520억원 규모의 누적 투자로 가이드하우스 콘텐더(경쟁) 그룹에 진입한 점에 주목한다. 이는 가이드하우스 리더보드 상위 20개 기업 중 가장 적은 투자금이다. 글로벌 경쟁 업체로 꼽히는 중국의 '위라이드'와 '포니AI'의 경우 누적 투자금액이 수조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기업은 지난해 10월, 11월 미국 나스닥에 연이어 상장했고, 시가총액이 각각 6조5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에이투지는 현재 기업가치가 2000억원 점을 감안하면, 발전 잠재력도 큰 상황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에이투지는 자율주행 전기차 아키텍처 설계 기술과 자율주행 토탈 솔루션 기술을 함께 보유하고 있어, 해외 개조형 자율주행차 기업보다 기술적 발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국내 10여개 도시에서 시범서비스를 확장하고 있고, 싱가포르, UAE에 이어 일본, 유럽 서비스 협력도 진행 중이라서 실전에서도 미국, 중국 기업 못지 않게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