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은 어쩌다 빈부격차의 상징 됐나 [마켓톡톡]
우리나라 엥겔지수 G5보다 높아
소득 하위 20% 채소·과일 소비 ↓
한국, 농식품 바우처 2025년 지원
식품 인플레로 지원량 줄어들 듯
미국에서는 신선식품 구매가 어려운 지역을 '음식 사막'이라고 부른다. 미국인의 12% 이상이 '음식 사막'에 산다. 신선식품이 빈곤층을 나누는 잣대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도 물가 상승으로 식료품에 쓰는 지출이 늘면서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 대신 가공식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 신선식품의 경제학을 알아봤다.
![뉴욕시는 2008년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그린카트를 보내 과일·채소 소비를 권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뉴욕시 브루클린의 한 식료품점 모습. [사진=뉴시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4/09/thescoop1/20240409172951604sxkr.jpg)
채소, 과일, 신선한 수산물과 육류를 먹는 것이 언제부터 고소득자의 특권이 됐을까.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36년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겪은 체험을 담은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빈곤의 특이한 해악은 건강에 좋은 음식에 돈을 쓰려는 마음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조지 오웰의 주장은 미국에서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미국에서 사과, 브로콜리, 토마토는 이제 값싼 음식이 됐다.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보다 채소가 더 싸기 때문에 이를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로 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미국 저소득층 주거지에는 채소나 과일, 수산물을 파는 가게가 많지 않다. 뉴욕시가 2008년 그린카트(Green Carts) 정책을 시행한 이유다. 뉴욕시는 공공주택, 노인 복지관이 밀집한 지역에 '그린카트'라는 이름의 냉장 탑차를 보내 매주 같은 시간에 1시간 동안 과일과 채소를 팔도록 했다.
그린카트가 주로 방문한 지역은 우범지대라고 알려진 맨해튼 북부 할렘, 브롱크스, 브루클린 서부 등이다. 뉴욕시 보건국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신선식품 소매점에 접근하기 힘든 뉴욕 시민은 300만여명으로 전체 시민의 40%에 육박했다.
그린카트가 등장하자 이 지역 사람들의 식료품 구매 습관이 극적으로 변했다. 뉴욕시 정신건강국 소속의 섀넌 팔리(Shannon M Farley), 레이철 대니퍼(Rachel Dannefer), 임성우 등이 2015년 발표한 '뉴욕시 그린카트 프로그램 평가' 논문에 따르면 그린카트가 방문한 지역에서 채소 등 신선식품 소비가 많이 증가했다.
그린카트 사용자의 신선식품 소비량은 1일 1.98회에서 2.58회로 늘어났고, 가공식품을 주로 파는 슈퍼마켓에 1주일에 2회 이상 갔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32.9%에서 9.5%로 줄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2% 이상인 4000만명이 신선식품 판매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음식 사막' 지역에 살고 있다. 미 농무부는 '저소득층이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보고서에서 채소 가격이 10% 내리면 저소득층의 채소 구매량이 하루 1컵(약 80~100g) 늘어나고, 과일 가격이 10% 내리면 저소득층의 구매량이 0.72컵에서 0.74~0.77컵으로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브지히트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MIT대 교수는 「빈곤의 경제학(Poor Economics)」이란 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음식과 칼로리가 아니라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선식품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엥겔지수는 올라가고,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신선식품 구매는 줄어들고 있다. 엥겔지수는 가계의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엥겔지수는 20.3%로 소득 상위 20% 가구의 11.8%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전체 엥겔지수도 상승 추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엥겔지수는 팬데믹 이후 G5 국가 대비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9년 대비 2021년 엥겔지수 상승폭은 한국이 1.4%포인트로, 독일의 1.0%포인트, 미국의 0.4%포인트보다 컸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는 지난해 소비지출이 전년보다 4.5% 증가했지만, 식료품·비주류음료 구매는 0.5% 줄였다. 육류가공품 지출이 4.1%, 기타수산동물가공품 지출이 8.5% 늘었지만, 신선수산동물 지출은 7.6% 감소했다.
물가를 반영한 신선식품 지출액도 줄었다. 농촌진흥청 농식품 소비자패널조사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전체 가구의 신선식품 실질 지출액 증감률은 2019년 -3.1%, 2020년 7.2%, 2021년 -2.5%였다.
채소·과일 소비량은 월 소득에 따라서 크게 차이 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2 식품소비행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채소를 주 2~3회 이상 구매한다'고 답한 비율은 월 소득 500만원대 이상에서 39.4%였지만, 월 소득 200만원대 가구에선 25.0%에 불과했다. '과일을 주 1회 이상 구매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월 소득 500만원대 이상에서 74.9%였지만,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는 49.7%였다.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가 물가 상승으로 신선식품 소비를 줄이고, 가공식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과일·채소 코너. [사진=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4/09/thescoop1/20240409172954317lhwg.jpg)
우리 정부의 해결책은 '농식품 바우처'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빈곤선을 중위소득의 40%로 보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농식품 지원 대상은 전체 가구의 14.4%다. 그중 가구주 연령이 60대 이상인 가구가 84.1%였다.
농식품 바우처 제도는 2020년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 중 일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2025년에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식품 인플레다. 농식품 바우처 예산은 1조2765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최근 과일·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올해 3월 기준으로 과일 가격은 2020년 1월보다 평균 80.6%, 채소 가격은 평균 31.2%가 올랐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