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지도를 보라. 전국 각 시도에 있는 백화점 갯수인데 ‘0’인 지역이 단 두 군데, 바로 세종시와 제주도다. 섬 전체 인구로 치면 70만명에 육박하는 제주도에 왜 백화점 하나가 없을까.

유튜브 댓글로 “왜 제주도에 백화점이 없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처음부터 제주도에 백화점이 없던 건 아니다. 제주시 연동에 1990년 신한백화점이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1000억원을 투입했다는데, 이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900억원. 하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4년 뒤 부도처리됐다. 건물은 방치되다가 20년쯤 뒤에야 철거됐고, 그 자리엔 신라스테이가 들어섰다.

1996년엔 같은 연동에 ‘롯데참피온백화점’이 생겼다. 1960년대 동양챔피언 복서 출신 ‘이안사노’라는 사람이 당시 돈 410억원을 들여 세워는데, 건물 안에 복싱링이 있는 나이트클럽을 만들어 프로 권투시합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개점 1년도 지나지 않아 부도처리 되고 말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우나가 운영 중이다. 이 두 사례는 ‘제주도에서 백화점 하면 망한다’는 예시로 지금도 종종 거론된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인구도 많이 늘었고 상황도 바뀌었을텐데, 이젠 백화점이 생길 법도 하지 않을까. 백화점 업체에 물어보니 그렇진 않다는 답변이 왔다.

[롯데쇼핑 관계자]
“인구가 그 정도로 되지가 않아서라고 알고 있어요, 밀집도가”
적어도 이 업체에선 제주도에 백화점을 여는 사업 자체가 애초에 검토가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구 수와 분포 자체가 백화점을 새로 열기엔 부적합 하다는 거다.
제주도는 북쪽에 제주시 남쪽에 서귀포시로 나뉘는데 전체 인구 70만명 중 50만명 가량이 제주시에 산다. 이것 역시 백화점을 열만한 대도시라기엔 다소 부족한 인구인데, 문제는 이 인구조차 너무 넓게 퍼져있다는 거다.

백화점은 일반적으로 점포 한 곳당 3~5㎞ 범위에 수십만 정도는 거주하거나 오가야 하는 걸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최고 밀집지인 연동과 도형동은 합쳐도 인구 10만명이 되지 않는 데다가, 다음 밀집지인 아라동과 이도1동 쪽까지 못해도 6㎞ 이상은 떨어져 있다. 게다가 대중교통도 대도시처럼 원활하진 않으니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 거다.
인구가 없어도 관광객이 많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백화점업체 입장에선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관광지가 워낙 섬 전체에 넓게 퍼져있기에 관광객 역시 널리 분산된다는 거다. 또 제주시의 면적 자체가 전국 지자체 중 상위 10%에 들만큼 넓기도 하다.

갈수록 고급화되는 백화점의 특성상 소득수준도 고려 안 할 수가 없는데, 제주도는 이 부분에서 최근 특히 어려워졌다. 제주도의 1인당 소득은 2018년 이후 계속 전국 지자체 중 뒤에서 4위 안쪽이었고, 재작년과 지난해에는 연속 꼴찌였다. 아무래도 고급·명품 브랜드 위주인 백화점이 들어서긴 쉽지 않아보이는 조건이다.

제주도 사람들의 전통적인 소비성향 역시 한몫 한다고 한다. 돈이 많든 적든 고급이나 명품브랜드보단 ‘알짜형’을 선호하는데다 고가제품 수요를 충족할만한 시장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게 제주 지역 경제를 연구한 전문가의 설명이었다.
제주도민들은 육지에 나가 쇼핑을 하더라도 백화점보다는 중고가 프리미엄 아울렛을 향한 수요가 매우 크다고 한다. 최근 제주도에 문을 열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이 좋은 예시인데, 이 곳에 입점한 브랜드를 살펴보면 물론 명품 브랜드도 있긴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면세점의 존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면세점이 3곳, 제주관광공사(JTO) 면세점이 2곳이다. 적어도 제주도에선 이 면세점들이 백화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 면세점들은 나름 지역에 적응해서 담배나 양주, 화장품 등 적당한 가격의 상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굳이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최근에는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지방도시에 새로 백화점이 생기기 어려워진 조건도 있다. 지방 인구 자체가 급감할 전망인데다가 현재도 구매력의 50~70% 가량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