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고점 판독기란 풍자와 내부자의 탐욕

이윤찬 기자 입력 2023. 5. 29. 11:42 수정 2023. 5. 3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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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리즈] 회장님은 고점 판독기➊ 관점+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국민연금 수익률로 본 증시
어느 전문가의 비판과 반론
‘투자의 대가’는 장기전 운운
증시서 기다림의 미학 통할까
SG발 주가조작사태 후폭풍
내부자 주식매도 이대로 괜찮나
금융당국 사전공시 검토해야

# '주가 고점 판독기'. 상장기업의 대주주‧임원 등 내부자들이 은밀하게 주식을 팔아치우면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진다는 걸 비꼰 신조어新造語다. 비아냥 섞인 이 신조어는 SG발 주가조작사태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르며 증시에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목할 점은 법망 안에서 개미를 울린 내부자의 주식매도사태는 이전에도 숱했다는 거다.

# 그럼 '주가 고점 판독기'라 불리는 내부자의 탐욕을 막아설 방도는 없는 걸까. 금융당국이 지금껏 놓친 건 없을까. 더스쿠프가 視리즈 '회장님은 주가 고점 판독기'를 준비했다. 그 첫번째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기업 내부자의 무분별한 주식매도를 방지할 법적·제도적 틀이 왜 차일피일 미뤄졌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충격적 보고서

2008년 7~9월. 국민의 노후자금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그 중심엔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연금공단)이 있었다. 그해 3분기 연금공단이 직접 투자한 국내 주식의 손실액은 1조8000억원에 달했다. '기금의 효율적 투자·관리'란 명목으로 자산운용사에 위탁한 국내 주식도 278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분기 손실률은 각각 20.29%, 12.98%였다.

국민이 납부한 연금액을 직접 운용했든 위탁했든, 연금공단으로선 단 석달 만에 2조787억원을 날린 셈이었다. 그해 우리가 단독입수해 보도한 '연금공단의 2008년 3분기 국내 주식 운용성과 및 관리내역 보고서'엔 이런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최악의 베팅

사실 연금공단의 투자 실패를 '단순 손실'로 보긴 어려웠다. 그들의 투자 과정에는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심각했다. 무엇보다 2008년 7~9월 증시 안팎에선 '10월 경제위기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죽하면 '친親시장' 성향이 짙은 증권사들마저 "주식 투자에 신중하라"는 메시지를 내보낼 정도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견은 적중했다. 그해 10월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붕괴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국내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9월 -1.78%였던 코스피지수 수익률은 한달 만에 -23.13%로 고꾸라졌다. 누가 봐도 연금공단은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투자를 단행한 꼴이었다.

# 명백한 실책

연금공단은 밑도 끝도 없는 투자 강행을 "저가 매수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둘러댔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치울 요량이었다는 건데, 궤변이었다. 저가 매수를 노렸다면 '증권사가 왜 주식 투자를 말렸는지' '10월 경제위기설이 불거진 이유는 뭔지' 등을 면밀히 검토했어야 했다.

금융위기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비관적 경제학으로 무장한 누리엘 루비니(뉴욕대 교수), 라구람 라잔(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등 몇몇 경제학자는 일찌감치 금융위기의 발발 가능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연금공단이 2조원에 이르는 기금을 석달 만에 날린 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내부자의 주식 대량 매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 허상의 추격

자! 이쯤 되면 연금공단의 투자 전략에 어떤 흠결이 있는지, 또 국민의 노후자금을 이렇게 위험하게 굴려도 되는지 짚어보는 게 수순일 거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보도를 탐독한 어느 경제전문가가 '저주'란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연금의 총 적립액 중 78%는 채권이고, 주식 비중은 약 12%다. 채권 수익률의 4배만큼 주식에서 손해를 봐도 국민연금의 재정은 안정적이다."

여기까진 일견 납득할 수 있는 지적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주식 투자는 애당초 단기 모멘텀이 아닌 마라톤 투자이기 때문에 단기 수익률에 연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주식은 어차피 장기 레이스의 결과물이니 단편적인 수익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이 주장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주식의 신'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투자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주식의) 보유 기간은 '영원히'이다(Our favorite holding period is forever·워런 버핏)." "주식을 사고 수면제를 먹어라. 10년 뒤에 깨어나 보면 부자가 돼 있을 것이다(Buy stocks, take sleeping pills, and stop looking at the papers. After many years, you will see: you'll be rich·앙드레 코스톨라니)."

'투자의 대가'라 추앙받는 이들의 조언이니 귀담아들어야겠지만, 왠지 궁금해진다. 주식은 정말 오래도록 묵혀야만 빛을 볼 수 있는 걸까. 어느 경제전문가의 주장대로 주식은 단기 수익률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상품일까. 자타공인 투자전문가란 이들이 실은 현실이 아닌 허상虛想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 뼈아픈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면, 주식시장은 '기다림의 미학'을 즐길 만큼 한갓진 곳이 아니다. 버핏의 말처럼 '영원히'란 말이 통용되는 곳도, 코스톨라니의 주장처럼 '10년 뒤 깨어나 보면 부자가 돼 있는' 곳도 아니다. 자본과 정보로 무장한 큰손과 작전세력이 시장을 이리저리 흔드는 탓에 하루에도 몇번씩 돌발이슈가 터지는 그런 곳이다.

우린 이 뼈아픈 이야기를 視리즈 '회장님은 고점 판독기'를 통해 짚었다. SG발 주가조작사태에 숨은 이슈, 조광lLl·신풍제약·부광약품·카카오페이 등 법망 안에서 개미를 울린 대주주의 주식매도사태를 상세하게 꼬집었다.

대주주, C레벨 임원 등 기업 내부자의 무분별한 주식매도를 방지할 법적·제도적 틀이 왜 차일피일 미뤄졌는지도 살펴봤다. '회장님은 고점 판독기', 그 첫장을 연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 참고: 548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5월 30일 발간하는 더스쿠프의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파트 기사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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