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 '엑셀'로 美 첫 발 내딛은 현대차·기아…"올해 3000만대 누적 판매 달성"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와 기아 본사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미국 시장 진출 39년 만에 누적 판매 3000만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등 선대회장들이 기틀을 잡은 미국 시장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지 전략형 모델과 모빌리티 신기술을 앞세워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전망이다.

2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1986년 1월 미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올해 2월까지 누적 판매 2930만3995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 누적 판매량은 1711만6065대, 기아의 경우 1218만7930대로 집계됐다. 현 추세라면 높은 상품성과 유연한 생산체제로 시장 내 입지를 더욱 강화해 올해 미국 시장에서 누적 판매 3000만대 달성은 무난히 가능할 전망이다.

정주영-정몽구-정의선 ‘3대’ 걸친 美 시장 공략법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신차 발표회장에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의 미국 시장 진출은 1986년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 세단 '엑셀'을 수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차 창립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동차를 '달리는 국기'라고 묘사하며,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다른 상품들까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엑셀은 발매 후 7개월 만에 판매량 10만 대를 돌파하며, 1년 동안 총 16만8882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거두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해외 생산기지 구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대차는 1989년 완공했던 캐나다 브로몽 공장(연산 10만 대)을 4년 만에 접어야 했다. 일본차 공세로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1999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현지 공장을 지어 달라'며 러브콜을 보냈을 때 정 명예회장과 임직원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때가 왔다'며 미국 공장 건설을 밀어붙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2014년 미국 앨라배마에 위치한 ‘HMMA’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정 명예회장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2002년 4월 16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시 근교에서 미국 현지공장 건설 첫 삽을 떴다. '현대 모터 앨라배마 공장(HMMA)'로 명명된 이 공장은 10억달러(약 1조4400억원)을 투자해, 196만평 규모로 세워졌다. 2005년 상반기부터 생산을 개시, 연산 3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기아의 미국 시장 공략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92년 미국 판매법인을 설립한 기아는 1994년 2월 '세피아'와 11월 '스포티지' 판매를 시작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2009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설립된 '기아 오토랜드 조지아'가 가동에 들어간 이후 본격적인 판매 가도를 높였다. 기아 오토랜드 조지아는 정 명예회장이 현지 생산의 필요성을 느끼고,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공장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3년 울산공장에서 전기차 전공 공장 기공식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기아의 성공은 3세 경영인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은 전동화,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현대차그룹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간 전기차 10만대 판매를 달성했다.

지난해 10월 양산을 시작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전기차 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차량도 생산해 급변하는 미국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예정이다. 또 현대차는 울산에 54만8000㎡의 부지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6년 초부터 양산이 시작될 계획이다.

美 진출 39년만에 누적 판매 3000만대…풀라인업·품질·미래전략주효

현대차가 미국 진출 이후 가장 많이 판매한 차량인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사진=현대차

현대차·기아는 3대에 걸친 오너의 리더십 아래 미국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다. 1990년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한 후 2004년 500만대, 2011년 1000만대를 넘어섰다. 이후 매년 100만대 이상 판매하며 2018년에는 2000만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누적 판매 1000만대 달성에 25년이 걸렸지만, 그 후 2000만대 달성까지는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차는 91만1805대, 기아는 79만6488대를 판매해 양사 모두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GM, 토요타, 포드에 이어 2년 연속 4위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현대차의 경우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다. 아반떼는 1991년 미국 판매를 시작해 지난 2월까지 388만대가 팔렸다. 그 뒤를 이어 쏘나타(342만대), 싼타페(238만대), 투싼(187만대) 순이다. 기아는 쏘렌토가 2002년 미국 판매를 시작한 이후 지난 2월까지 183만대 판매돼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스포티지(166만대), 쏘울(152만대), K5(150만대) 순이다.

기아차가 미국 진출 이후 가장 많이 판매한 차량인 ‘쏘렌토’. 사진=기아

현대차·기아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판매 라인업 다양화다. 두 회사는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 비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제네시스, 친환경차 등으로 판매 라인업을 다양화해 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했다. 특히 소형부터 대형까지 풀 SUV 라인업을 구축하며, 현대차·기아의 SUV 판매량은 지난해 128만4066대를 기록해 전체 판매량의 75% 이상을 차지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도 주효했다. 현대차는 2016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제네시스는 미국 진출 첫해인 2016년 6948대 판매에 그쳤지만, 2021년부터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에는 7만5003대를 판매하며 처음으로 미국 연간 판매 7만대를 돌파했다.

품질 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2020년 텔루라이드, 2021년 아반떼, 2023년 EV6, 2024년 EV9 등 5년간 4개 차종이 '북미 올해의 차(NACTOY)'로 선정됐다. 또 지난해 11월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파워)가 발표한 '2025 잔존가치상'에서 코나 일렉트릭이 전동화 SUV 부문, 텔루라이드가 3열 중형 SUV 부문에서 수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올해 안에 미국 시장 누적 판매 3000만대 돌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면서 엑셀로 시작된 두 회사의 미국 시장 진출 39년 역사에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을 전망"이라며 "고(故) 정주영 회장부터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에 이르기까지 책임감을 가진 리더들이 보여준 도전 정신과 혁신이 한국 자동차 산업을 세계 시장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