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응급실 대란 없었다지만…지금도 ‘위태로운 뺑뺑이’

이정연 기자 2024. 9. 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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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앞을 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추석 연휴에도 응급의료체계가 우려와 달리 큰 혼란 없이 운영됐다. 연휴에도 응급환자 곁을 지킨 의료진과 중증환자를 담당하는 응급실에 환자가 쏠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분산을 유도한 덕이다. 다만, 당직 병·의원이 적었던 추석 당일을 전후로 전국 곳곳의 응급실과 응급환자의 전원을 연결하는 상황실에선 위태로운 장면이 포착됐다.

18일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추석 당일인 17일 문을 연 당직 병·의원은 2223곳이었다. 추석 연휴 기간 가장 적은 규모다. 대부분의 당직 병·의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혹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열었다. 때문에 추석 당일 늦은 오후와 저녁에 발생한 환자들은 병원을 찾는데 다소 혼란을 겪어야 했다.

17일 오후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만난 주아무개(48)씨는 70대 후반의 어머니와 동행했다. 주씨의 어머니는 평소 건강했지만, 아들 가족과 점심을 먹은 뒤부터 “이상하게 어지럽다”고 주씨에게 말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체한 것이라고 여긴 어머니는 소화제를 먹고도 어지럼증이 계속되자 그제야 아들에게 병원을 가보자고 하셨다. 주씨는 “뇌 관련 질환일까 싶어서 일단 집 근처에 가장 큰 응급실인 서울의료원으로 왔다”고 했다.

어머니를 응급실로 들여보내고 바깥에서 대기하던 그는 연신 전화를 해댔다. 주씨는 “진단 뒤에 바로 처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해서 다른 병원도 찾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서너 군데 전화를 걸었는데, 처치와 입원이 가능한 곳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당직 병·의원까지 거의 문을 닫은 이날 저녁엔 환자들이 일반 병원의 응급실에서 오래 대기해야 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진아무개(37)씨는 추석 당일 늦은 오후 아이와 놀아주다 팔을 다쳤다. 결국 119에 문의해 집 주변 병원에 있는 응급실을 찾았지만, 이곳에선 정형외과 관련 진료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피부가 찢어지지 않았기에 응급처치로 부목만 댈 수 있었다.

진씨의 가족들은 다시 119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마포의 한 병원에선 “오시는 건 상관없지만, 대기 시간이 얼마나 될 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진씨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추석 전에 동료들과 농반진반으로 했는데, 급한 입장이 되니 정말 심란하다”고 말했다.

중증응급환자의 이송, 의료기관 간 전원 등을 연결하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엔 긴박한 상황이 잇따라 전해졌다. 18일 국립의료원과 광역응급의료상황실 등에 따르면, 16일 저녁 충북 옥천에서 한 60대 남성이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에 피가 고이고, 복부가 파열돼 흉부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 5개의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옥천의 한 병원은 주변 병원에 전원을 알아봤지만 계속 거절당하자 결국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에 연락했다. 광역상황실은 경북, 대구, 충청, 수도권 등으로 전원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했고, 16일 밤 10시30분께 서울에 있는 한 외상센터가 수용 의사를 밝혀와 환자를 옮길 수 있었다.

16일 오전 호남고속도로에서 차량 뒷좌석에 있다 교통사고로 다친 13살 환자도 상황이 긴박했다. 사고 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뒤늦게 안전벨트 압박으로 십이지장 파열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가까운 응급센터에선 중환자실 부족 등으로 환자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광역상황실은 차로 2시간 넘게 가야 하지만, 수술 등이 가능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연결해 환자가 무사히 이송돼 치료받을 수 있었다. 전국 6개 광역상황실의 콘트롤타워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엔 이렇게 위급한 사례가 내내 전달됐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16일 저녁 8시부터 17일 저녁 8시까지 꼬박 24시간 지킨 차명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의-정 갈등이 아니었다면 더 가까운 외상센터에서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 덕분에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현장에선 추석 연휴 기간 환자가 평소 연휴보다 늘지 않아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봤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이번 연휴엔 전반적으로 환자가 예년 연휴보다 증가하지 않아서 걱정했던 만큼 상황이 악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연휴 이후엔 증세가 악화한 채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 것을 우려했다. 이 회장은 “연휴 뒤 상태가 나빠진 환자들이 대거 병원을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휴 기간 2차 병원이나 병·의원으로 분산됐던 환자들이 다시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으로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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