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HD현대일렉 6700억대 '한전 입찰 담합'…형사재판 본격화 [CEO와 법정]
7년 담합 의혹 본격 심리
단일 범죄 여부·가담 정도 쟁점
행정·민사 소송 영향 주목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핵심 전력 설비 입찰에서 7년간 6700억원대 담합을 벌인 혐의로 적발된 업체들의 형사재판이 본격화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이후 형사 책임을 가리는 절차가 시작되면서, 향후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류경진 부장판사)는 6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일진전기 등 주요 전력기기 업체와 임직원 사건의 첫 공판을 열고 본격 심리에 착수했다.
검찰, 입찰 담합부당이득 "최소 1600억" 산정
검찰은 이들 업체가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약 7년간 한전이 발주한 장비 입찰 145건에서 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을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했다고 보고 있다.
문제가 된 장비는 가스절연개폐장치(GIS, Gas Insulated Switchgear)로, 전기가 과하게 흐르거나 사고가 났을 때 전류를 차단하고 절연하는 고압 전력 설비다.
이번 사건의 입찰 대상인 170kV GIS는 발전소와 변전소 전력망에 사용되는 고가 장비로, 계약 규모가 수백억에 달해 업체들이 담합 유인을 느끼기 쉬운 시장으로 꼽힌다. 이들 업체의 전체 담합 규모는 약 6776억원으로, 이로 인한 부당이득은 최소 1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산정됐다.
검찰은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역할을 나눠 입찰 물량을 배분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들이 낙찰 순번과 가격을 정하고, 중소기업군은 한국중전기사업협동조합 등을 통해 일정 물량을 배정받는 방식으로 담합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업체들은 담합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른바 '총무'를 내세워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초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물량 배분 비율이 87대13 수준이었지만, 이후 중소기업 참여가 늘어나면서 60대40, 55대45 수준까지 조정됐다. 실제 담합 기간 낙찰률은 평균 96%를 웃돌았다.
공정위는 낙찰 예정자 선정과 가격 합의가 결합한 전형적인 입찰 담합 구조로 판단해 총 39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가운데 가담 정도 등을 고려해 6개 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과징금 규모는 효성중공업이 약 112억원으로 가장 컸고, 이어 일진전기 약 75억원, LS일렉트릭 약 72억원, HD현대일렉트릭 약 67억원 순이었다.
입찰 담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경쟁 자체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원래 공공입찰은 업체들이 가격 경쟁을 벌여 가장 낮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도록 설계돼 있다. GIS는 전력 공급 안정성과 직결되는 장비라는 점에서 담합의 파급력이 컸다는 게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이다.
이날 재판에서 업체들은 담합 자체를 전면 부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효성중공업 측은 "국내 GIS 시장 선두 사업자로서 굳이 담합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담합 기간 오히려 시장 점유율과 계약 금액이 감소한 점은 검찰 주장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제시한 '기본 합의'에 대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특정되지 않았다"며 공소사실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피고인들도 개별 입찰별로 낙찰자와 가격을 사전에 합의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입찰마다 조건과 참여자가 달라 일괄적인 합의 구조가 존재하기 어렵고, 일부 입찰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검찰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145건에 걸친 입찰 담합이 개별 행위가 아닌 하나의 계속된 합의에 따른 단일 범죄라고 보고 있다.
피고인 '보석 청구'에…재판부 "신중 검토"
이날 재판에서는 보석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효성중공업 측 피고인 최모씨 변호인은 "장기간 수사로 이미 방대한 증거가 확보돼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피고인 배우자의 건강 문제 등 인도적 사정도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일진전기 측 피고인 노모씨 변호인 역시 “공정위 단계부터 성실히 조사에 임했고 추가적인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방대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진술 번복 가능성 등을 들어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담합 구조와 가담 정도를 둘러싼 증인 진술이 핵심인 만큼,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오후에는 2015년 일진전기에 담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중소기업체 동남의 실무 담당자 한모씨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되며 사건 실체에 대한 공방이 본격화됐다. 한씨는 "공정위와 검찰 조사에서 다수 입찰에서 담합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며 중소업체가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담합에 참여하게 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어 "적정 가격에 낙찰받기 위해 먼저 접촉해 담합 참여를 요청했다"며 낙찰 순번과 물량 비율을 조정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담합의 성립 여부와 함께 개별 피고인의 가담 정도, 그리고 공정위 조사 자료와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의 증거능력으로 압축된다.
특히 대기업 주도의 담합 구조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중소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어지는 소송 영향도…'담합 카르텔' 뿌리 뽑힐까
형사재판 결과는 현재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인 과징금 취소 소송은 물론, 향후 한국전력이 제기할 수 있는 손해배상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전형적인 공공입찰 카르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공입찰 담합은 국가 기간산업과 공공재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정위와 검찰이 가장 중대하게 보는 카르텔 유형 중 하나로 꼽힌다.
재판부는 이날 증거 정리와 일부 피고인에 대한 심리를 분리 진행하기로 하고, 향후 실무자 중심의 증인신문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음 기일은 5월 20일로 지정됐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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