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과 마차로 버티는 쿠바, ‘트럼프 제로’ 견딜까?

[박상주 칼럼니스트]

[1분 핵심 요약]

사태의 심각성:
2026년 2월, 트럼프의 석유·자금 전면 차단 선포로 쿠바는 1962년 미사일 위기 이후 최대 고립 상태.

마비된 일상: 하루 3시간 전기 공급, 20리터 제한 배급된 휘발유, 텅 빈 관광지 등 국가 기능이 한계치에 도달.

민초의 적응력:
가스 대신 숯과 나무로 요리하고, 개인 태양광 판넬로 전기를 자급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쿠바인들의 역설적인 차분함.

물밑 반전 기류: "혁명 사수"라는 구호 뒤에서 라울 카스트로의 아들이 미국과 비밀 접촉 중이라는 시나리오 부상, '극적 타협' 가능성 대두.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결핍의 면역력’이 변수다: 주민들이 숯과 나무를 쓰는 모습은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외부 압력에 대한 '심리적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트럼프의 '최대 압박'이 정권 전복보다는 쿠바의 '영구적 저발전'만 고착화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카스트로 가문의 '생존 실용주의':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장군의 등장은 쿠바 정권이 체면(항전)은 지키되 실리(협상)는 챙기는 '이중 트랙'에 능숙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트럼프 역시 '위대한 거래'의 성과가 필요하기에, 쿠바는 제2의 북한식 '핵 협상 모델'처럼 전개될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혁명 세대의 딜레마: 체 게바라의 동상과 현실의 굶주림 사이에서 방황하는 쿠바. 결국 이번 위기는 쿠바가 '사회주의의 박물관'으로 남을 것인지, '개방의 파도'를 탈 것인지를 결정할 최후의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에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사진이 붙어 있는 기둥 너머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재집권후 강화된 트럼프의 봉쇄

늦은 밤 쿠바의 관문인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고 남루한 공항이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캄캄한 암흑이다. 도로와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수도 아바나 중심가에 접근하면서 드문드문 불빛이 나타난다. 관광객들로 흥청거려야 할 아바나 올드시티 역시 인적이 끊어지다시피했다. 쿠바엔 지금 어둠을 밝힐 전기도, 자동차를 움직이는 석유도, 경제를 지탱하던 관광객도 모두 끊기고 있다.

석유를 수입하는 해상로가 봉쇄되자, 급기야 자동차 대신 마차를 몰고 나온 쿠바 국민. 사진= 박상주 칼럼니스트

미국이 쿠바의 목을 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SNS) ‘트루스 소셜’에 “쿠바로 들어가는 석유나 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제로!”라고 썼다. 트럼프 정부는 “올해가 쿠바 공산주의 혁명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지금 쿠바는 1962년 10월 미사일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편집자주- 쿠바에 대한 트럼프의 봉쇄는 1기 집권 시작때부터 이뤄졌다. 여행 제한과 송금 제한을 실시했던 트럼프는 쿠바를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접근도 막았다. 집권 2기에 들어선 트럼프는 2025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석유 수입로를 해상 봉쇄하며, 쿠바 정권의 붕괴를 목표로 경제적 질식 작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월 쿠바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다. 쿠바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바나와 비냘레스, 트리니다드, 산타클라라, 바라데로 등 쿠바의 주요 도시들은 여러 마비 증상들을 보이고 있었다.

첫째, 전기가 끊기고 있다. 수도인 아바나조차 수시로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지방도시나 농촌의 상황은 훨씬 열악했다. 쿠바 서부 관광거점 도시인 비냘레스를 찾았을 땐 낮 시간엔 아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비냘레스에서 만난 마릴린 그란디아는 “전기 공급을 받는 시간은 하루 3~4시간 정도”라면서 “더운 날씨에도 냉장고를 아예 쓰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아르만도 로드리게스 바티스타 쿠바 과학·기술·환경부(CITMA) 장관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밤이 되면 아바나의 여러 동네가 한꺼번에 어둠에 잠긴다”면서 “촛불이나 휴대전화 손전등의 희미한 빛만이 어둠을 깨뜨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현재 쿠바는 “또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완벽한 폭풍”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진 후, 쿠바 시민들은 다양한 교통수단을 꺼내 이용하고 있다. 사진= 박상주 칼럼니스트

둘째, 자동차가 멈춰 서고 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석유수입이 전면 중단됐다.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 택시와 자전거 택시(Bicitaxi), 마차 등이 교통수단을 대신하고 있다. 쿠바 서북부 아바나에서 중부 및 동부의 도시들로 연결하는 A1 고속도로조차 차량의 통행이 뜸했다.

아바나 교외 코히마르에서 만난 라미로 차베스는 “에너지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면서 “휘발유 배급량은 현재 20리터(ℓ)로 제한돼 있으며 배급 간격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대중교통은 며칠 동안 완전히 중단되기도 한다”면서 “운행을 하더라도 그 횟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셋째, 관광객 발길이 끊기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관광지조차 적막감이 감돌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트리니다드와 체 게바라 무덤이 있는 산타클라라나, 22킬로미터(㎞)황금빛 백사장을 자랑하는 바라데로 해변에서도 배낭 여행객 몇몇을 만났을 뿐이었다. 가는 곳마다 숙소를 통째로 차지하는 ‘황제 투숙’을 했다.

트리니다드에서 묵었던 호텔의 매니저는 “예년의 경우 한창 성수기엔 빈방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려왔지만, 요즘은 객실 한 두개 정도 밖에 채우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몇 해 전 코로나로 손님의 발길이 끊기더니, 이제 트럼프의 봉쇄로 연쇄 타격을 입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존의 위협' 견디는 쿠바 국민들

하지만 쿠바 국민들은 예상외로 큰 동요 없이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코히마르에서 만난 차베스는 “지금은 미사일 위기(편집자주- 1962년 10월,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는 일로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냉전 시대 최고의 일촉즉발 상황.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했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합의하며 위기가 해소됐다.) 때인 1962년보다도 더 나쁜 수준”이라면서도 “전기와 가스 공급이 중단될 때는 숯과 나무로 요리를 한다”라고 말했다. 비냘레스의 그란디아는 “현재 상황은 심각하지만, 집에 설치된 태양광 판넬을 통해 전기 문제를 조금은 해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바나 올드시티에 있는 호텔의 매니저인 주디스 로페스는 “쿠바는 11월~다음해 3월이 관광 성수기이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손님이 계속 줄었다”라면서도 “다행히 우리 호텔은 최근 손님이 조금 늘었다”라고 말했다.

쿠바는 지난 1월 1일 혁명 67주년을 기렸다. 과연 쿠바의 혁명은 지속될 것인가. 피델 카스트로는 생전에 “목에 칼을 들이댄 상태에서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쿠바를 겨냥한 트럼프의 칼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쿠바의 속살 깊이 파고들고 있다. 쿠바는 이번에도 미국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 쿠바의 운명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휘발유 배급량이 20리터로 제한된 쿠바. 한 시민이 간신히 기름을 구해 기름통에 채우고 있다. 사진= 박상주 칼럼니스트

쿠바의 혁명은 지속될 것인가

아바나대학교 쿠바경제연구센터의 후안 트리아나 교수는 지난 8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쿠바의 최대 지원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진 이후 모두가 쿠바 역시 붕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쿠바는 건재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아다 페레르는 “과거 쿠바 정부 붕괴 예측이 여러번 빗나갔지만 이번엔 베네수엘라처럼 무너져가는 쿠바 경제를 구해줄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윌리엄 M. 레오그란데 아메리칸대학 교수는 지난 5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칼럼 ‘트럼트-쿠바간 협상의 전망(What a Deal Between Trump and Cuba Might Look Like)’을 통해 쿠바 정부가 미국과의 비밀 접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레오그란데 교수는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의 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에스핀 장군이 최근 멕시코에서 미국 관리들과 비밀 접촉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이는 쿠바의 권력 구조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안보·경제적 이해를 충족하는 합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카스트로 에스핀 장군은 지난 2014년 버락 오마바 대통령 당시 백악관 고위급 보좌진과의 비밀 회동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쿠바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에 서 있는 체 게바라 동상. 기단에 새겨져 있는 'Hasta La Victoria Siempre ‘는 우리말로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다. 사진= 박상주 칼럼니스트

쿠바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캐나다 국립 달하우지대학(Dalhousie University)의 로버트 휴이시(Robert Huish) 교수는 지난 12일 인터넷 매체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경제·사회 재앙에 직면한 쿠바’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미국이나 쿠바 어느 한쪽이 쉽사리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휴이시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석유 봉쇄로 쿠바의 공산 정권이 무너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긴 시간을 기다릴 각오부터 해야 한다”라면서 “연료 봉쇄가 지속된다면, 쿠바는 자원을 더 엄격히 배분하기 위해 계엄령과 민방위를 선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쿠바 중부도시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을 찾았다. 높이 6.7m의 체 게바라 청동상이 15m의 화강암 기단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청동상의 기단엔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체 게바라의 말이 적혀 있었다.

만일 체 게바라가 지금 쿠바의 위기를 본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가 카스트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속의 구절대로 “조국이냐 죽음이냐!”를 외치면서 총을 들까, 아니면 현실적인 타협에 나설까? 과연 쿠바의 혁명은 이어질 수 있을까?


※ 박상주는 20여년 동안 신문기자로 살았다. 신문사를 그만둔 뒤 ‘지구촌 순례기자’를 자처하고는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 세계 오지를 여행하면서 글을 썼다. 어쩌다가 서울교육청과 국무총리실과 국회의장실에서 공무원 생활도 했다. 지은 책으로 ‘세상 끝에서 삶을 춤추다’, ‘나에게는 아프리카가 있다’, ‘나에게는 중동이 있다’, ‘아름다운 동행’, ‘부의 지도를 바꾼 사람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