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장애인 고용 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5곳 중 1곳 道 기업… 취업 벽 여전히 ↑
차가운 일자리 시장에서 장애인은 유독 춥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회사에 벌금 형식의 부담금을 물리지만, 기업들은 돈을 내더라도 장애인 채용을 피한다. 단순히 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위해 취업을 돕자는 게 아니다. 이들을 사회로 이끌어 고립을 막자는 취지도 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내일의 나’를 위한 일자리 실태를 경기도에 맞춰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1. “죄송하지만 같이 일하긴 좀…”
이영만(48·수원시 권선구)은 오늘도 면접에서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시각장애와 더불어 선천적으로 단어나 문장 표현이 잘되지 않는 언어장애를 타고난 영만은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매번 불합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육원을 전전하던 영만은 원내 원장의 폭력에 질려 무작정 탈출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추위와 더위를 맨몸으로 버티던 어느 날 정체 모를 손에 이끌려 따라갔다. 도착지는 전남 한 섬의 양식장. 끊임 없이 김을 매도록 강요 받았지만 급여는 없었다.
“계속 인신매매 당하며 안 해본 일이 없다”던 영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내가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평생 그의 능력과 재주는 취업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 학력 없는 장애인이라는 이유였다.
#2. “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도와”
뇌병변장애인 황준하(27·안양시 동안구)는 어릴 때부터 장애인복지사가 꿈이었다. 자신이 장애인이었기에 다른 장애인을 돕고 싶어서다. 대학교에서 인간재활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기관에 처음 사회복지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자신이 복지기관 직원으로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에게 ‘기존’ 비장애 복지사들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면서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돌보냐”는 질문을 빙자한 괄시가, 차가운 거절보다 아프게 꽂혔다. 준하는 그날 일을 회상하며 “모멸감이 들었다”고 했다.
#3. “장애인을 뽑긴 하는데, 걸을 수는 있어야죠”
꽃 같은 스물셋, 지체장애가 발병한 박재숙(57·수원시 팔달구)은 현재까지 30여년간 천천히 근손실이 진행됐다. 그동안 자영업 생활을 지속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게 됐다.
자영업을 포기한 건 50대 초반. 장애인 구직 시장에 대해 전혀 몰라 막막했지만, 재숙은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도 분명 일할 곳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장애인 구인광고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그마저 이력서를 넣으면 모두 거절당했다. 재숙이 마지막으로 취업 지원을 했던 건 지난 2017년, 한 대학에서 장애인 일자리를 구할 때였다. 면접에 오라는 전화에 수동 휠체어를 밀고 장소로 찾아갔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찾는 사람은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사이에서도 차별 받는 기분이 들었다”던 재숙은 면접관들에게 “제가 일 할 수 있을까요?” 물었다. 돌아온 답은 결국 거절이었다. 정중한 말들 뒤로 ‘휠체어는 안 된다’는 진의가 담겨있었다.
■ 영만·준하· 재숙은 왜 취업하지 못할까
장애인 고용지원금 혹은 장애인 고용부담금.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쓰며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고 있음에도 장애인 취업률이 진작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공공기관은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올해의 경우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은 공공기관 3.8%, 민간기업 3.1%로 정해졌다.
하지만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기업 상당수가 이 고용률을 수십년째 맞추지 못한다. 최근 들어 공공기관은 그나마 가까스로 맞추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민간기업의 평균 장애인고용률은 2.99%에 그친다.
경기도에 한정해도 다를 바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현황만 봐도 전체 대상 기업 5곳 중 1곳이 경기도 기업(21.7%)이었다.
■ 전국 장애인 22% ‘경기도민’…道 장애인 고용률은 6위
26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기도 내에는 58만6천421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전국 장애인의 22% 비중으로 최다치다. 이 중 생산가능연령(15~64세)으로 볼 수 있는 ‘만 15세 이상 인구’가 56만7천여명이다.
이들의 취업률은 37%(20만9천832명)로, 전국 평균(34.21%)보단 소폭 높았다. 하지만 17개 시·도로 나눠보면 ▲충남(44.4%) ▲울산(44.2%) ▲강원(43.9%) ▲광주(40.9%) ▲전남(38.8%) 다음에 머물렀다. 전국에서 장애인구는 가장 많은데 취업률은 6위 수준이었다는 의미다.
기업을 중심으로 봐도, 경기도 내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34.9%)은 비장애인 고용률(64.7%)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의무제도가 도입된 지 30년 이상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며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고용부담금 납부에 대한 부담이 적어,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장애인을 위한 직무가 없다’, ‘산재가 우려된다’ 등을 이야기하면서 ‘벌금을 내더라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보이는데, 이는 법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니 괜찮다’는 매우 위험한 사고”라면서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건 장애인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이러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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