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인텔의 굴욕, 퀄컴 인수설까지 나왔다
한때 ‘반도체 왕국’으로 불렸던 미국 인텔이 극심한 운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수합병(M&A)의 매물로 거론되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CEO직에 오른 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2030년에 세계 2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이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인수 위기에 봉착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20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매수 제안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20일 기준 931억 9100만 달러(약 125조원)로, 이 거래가 성사될 경우 이는 최근 수년간 이뤄진 M&A 중 가장 크고 중요한 거래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거래가 성사될 경우 퀄컴의 반도체 사업 영역은 순식간에 넓어지게 된다. 모바일 뿐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PC), 그리고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각광 받는 서버용 반도체도 사업 품목으로 편입하게 되는 것이다. 퀄컴은 스마트폰용 AP의 주요 공급업체로, 시가총액은 인텔의 2배인 1880억 달러에 달한다.
다만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통신칩 등 분야에서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유력 반도체 기업인 퀄컴이 세계 1위 중앙처리장치(CPU) 제조 업체인 인텔을 인수하는데는 엄격한 반독점 심사가 따를것으로 예상된다. 인텔 인수를 강행할 경우 퀄컴은 각국 반독점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인텔의 일부 자산을 포기해야할 수도 있다. WSJ는 “거래가 진행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며 “그럼에도 (인수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인텔이 지난 50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퀄컴과 인텔은 AI가 촉발한 ‘반도체 붐’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제조’ 기조 아래 손을 잡은 동맹관계였다. 퀄컴은 인텔 파운드리의 수율이 확인되기도 전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으로 자사 반도체를 제조를 맡기며 인텔의 ‘파운드리 굴기’ 돕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인텔 파운드리에서 퀄컴 칩을 제조하는 테스트 과정 중 문제가 생겨 결국 주문 제작을 중단하기도 했다.
동맹 관계였던 퀄컴이 인수 제안에 나선 배경에는 인텔의 위태로운 재정상태가 있다. 인텔은 지난 8월 16억 달러라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암울한 2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이후 인텔은 적자 주범인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하고, 독일과 폴란드에서 짓고 있는 공장 건설을 중단하며 전체 직원의 15%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까지 나서며 ‘생존 몸부림’에 나섰다. 그럼에도 핵심 사업인 CPU 부문을 경쟁사 AMD에 추격 당하고, 모바일·AI 분야에서 뒤처진 상황을 타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소식이 전해진 후 인텔의 주가는 20일 3% 정도 상승 마감했고, 퀄컴 주가는 3% 하락했다. 다만 소식을 전한 주요 매체들은 모두 이들의 거래가 반독점 및 국가 보안 문제 등으로 복잡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앞서 2017년 미국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에 나섰을 때 미 당국의 반대로 실패로 끝났고, 엔비디아가 2021년 영국 반도체 기업 설계 업체 ARM 인수를 추진했다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제소를 당하며 포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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