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성신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난 김홍희.

본래 성악가를 꿈꿨지만 가정 형편상 진로를 바꿨고, 이후 소르본 누벨 대학에서 불문학 석사를 마치고 통역사로 일하며 유럽 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차 한국을 방문한 레바논 출신의 억만장자 레이몽 나카시안을 통역 현장에서 만나게 된다.
당시 나카시안은 20대에 이미 170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30대 초반에 36개의 회사를 거느린 중동 재계의 거물이자 ‘젊은 부호’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동양적 분위기를 좋아했던 그는 김홍희를 본 순간 “마치 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고 회상할 정도로 강렬한 첫인상을 받았다.
1년 가까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남편은 결혼을 기념하며 아내의 첫 음반을 제작해주겠다고 제안했고, 김홍희는 본래 성악에 가까운 클래식 앨범을 원했지만, 팝 음악을 좋아하던 남편의 권유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게 된다.
프랑크 프루셀 등 유명 편곡자들과의 협업 아래, 클래식 아리아를 팝과 전자음악, 심포니로 재해석한 실험적 사운드.

그렇게 1985년, 세계 최초의 ‘팝페라’ 앨범이라 불리는 《The Lost Opera》가 탄생했다.
예명 ‘키메라(KIMERA)’는 본인의 성 Kim과 오페라를 결합한 이름.

파격적인 무대 분장과 동양적 이미지를 담은 비주얼, 고음 중심의 창법이 더해지면서 유럽 무대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앨범은 약 1,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7년, 다섯 살이던 딸 멜로디가 스페인에서 등굣길에 납치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들은 머리카락과 녹음 테이프를 보내며 몸값으로 23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했다.
세계적인 가수와 억만장자 아버지를 노린 치밀한 범죄였다.

경찰에 협조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키메라 부부는 방송에 나와 납치 사실을 알렸고, 남편 나카시안은 “몸값 대신 현상금을 걸겠다”며 정면 대응을 선언한다.
그는 “범인을 찾으면 딸의 몸값보다 더 큰 액수를 주겠다”고 공언했고, 프랑스와 스페인 경찰 600명이 투입되면서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결국 범인의 실수로 단서가 드러났고, 납치 11일 만에 멜로디는 무사히 구출됐다.
유럽 주요 방송사들이 귀환 장면을 생중계할 만큼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엄마가 노래하는 게 싫어”라는 딸의 말, 그리고 자신의 유명세가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자책감이 겹쳐 그녀는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이 사건은 먼 훗날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랜섬(Ransom, 1996)>의 모티브가 되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억만장자 아버지가 납치범과의 협상 대신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정면 승부에 나서는 설정은 키메라 부부가 실제로 택했던 방식과 닮아 있다.


이후 키메라는 가족과 함께 스페인 마르베야에서 지냈고, 딸의 이름을 따 ‘빌라 멜로디’라는 이름의 대저택에서 조용한 삶을 이어갔다.

가끔 방송을 통해 그녀의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대중 앞에 다시 선 건 무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건국 60주년 기념 ‘코리안 페스티벌’ 무대에서 키메라는 오랜만에 국내 팬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자신을 “그냥 평범한 한국 엄마”라고 소개하며 웃었다.
남편 레이몽은 여전히 그녀의 든든한 지지자였고, 아들 아미르와 딸 멜로디는 가장 큰 삶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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