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전기차 포비아'라 불리는 전기차 공포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과 주차장에서는 전기차의 진입을 막는 곳이 부쩍 늘었으며, 전기차 차주와 내연기관차량 차주 간의 마찰도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기차 관련 이슈가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각종 매체들을 비롯해 온라인에서 '전기차 캐즘'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의 비중이 미미했을 때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기차 캐즘'. 이 생소한 단어는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을 일컫는 말인 것일까.

캐즘이란 무엇인가
전기차 캐즘을 설명하기 전 먼저 '캐즘'이란 단어의 뜻을 먼저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캐즘(Chasm)이란 지각변동 등의 이유로 지층 사이에 큰 틈이나 협곡이 생겨 서로 단절되는 것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로, 마케팅・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초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던 제품이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해 일시적인 침체기를 겪는 현상을 뜻한다.
사실 캐즘 현상은 과거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신제품이라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하나의 통과 의례로, 대표적인 캐즘 사례로 e-book을 꼽을 수 있다. e-book은 '전자책이 종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1990년대 중반 신문・잡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던 온라인 플랫폼 사업으로, 당시 많은 매체와 기업들이 전자책 전용 프로그램과 단말기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했다. 하지만 종이책보다 가독성이 떨어지고 단말기와 프로그램의 편의성이 좋지 않아 결국 인기를 끌지 못해 긴 시간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기차 캐즘도 e-book과 분야만 다를 뿐 지니고 있는 의미는 같다.

주춤한 성장세, 이것이 전기차 캐즘?
전기차의 판매량은 테슬라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2008년을 기준으로 그 수요가 매년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의 상품성에 가려져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진 못했다. 실질적으로 전기차의 수요가 폭발한 것은 디젤 게이트 이후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가 시장에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이상 기후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전기차의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그 결과 2019년 250만대가 되지 않았던 2019년 전기차 판매량이 2020년 320만대까지 급격히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2023년에는 1380만대까지 판매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불황이 이어지면서 가격이 비싼 전기차 판매량이 눈에 띄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매체와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기차 캐즘'에 부합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전기차 캐즘 현상의 원인은?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의 캐즘 현상에 대해 높은 가격과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수요 동결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가격이 약 20% 정도 더 비싸 소비자가 차량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매년 줄어드는 전기차 보조금도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전기차 보급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어 최근에는 전기차 화재나 사고 등으로 인한 안전에 관련된 우려도 전기차 캐즘 확산을 가속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기차 캐즘 언제까지 이어질까
많은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의외로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시장이 잠시 정체된 것은 맞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산업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의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기차 시장의 성장률은 전년 대비 21% 더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더해 업계는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고 다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티핑 포인트를 2025년에서 2026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가격적인 측면을 크게 개선한 모델들이 2025년을 기점으로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상반기부터 볼보 EX30을 비롯해 기아 EV3,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 등 가격 부담을 낮춘 전기차들이 시장에 출시됐으며, 2025년에도 기아 EV4, EV5를 비롯한 다양한 가성비 전기차들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