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만져보고 싶어서.." 가족들조차 외면한 최악의 살인마 오종근 교도소에서 결국..

보성 어부 오종근 옥중 생 마감…수감 15년 만에 자연사

2007년 ‘보성 어부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이 확정된 오종근이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2024년 광주교도소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당시 나이는 87세였다. 그는 2010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장기 수감 생활을 이어왔으며,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자연사했다. 오종근의 사망은 한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2025년 6월 말에서야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 공개됐다. 그는 생전 “나는 억울하다”는 주장을 이어갔지만, 재판부는 명확한 물증과 증언을 토대로 유죄를 확정지었다.

대학생 4명 연쇄 살해…잔혹한 범행

오종근은 2007년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20대 대학생 남녀 4명을 연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피해자들을 자신의 낚싯배에 태운 뒤, 여성을 추행하려다 남성이 이를 막자 폭행하고 함께 바다에 빠뜨렸다. 같은 해 9월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여성 2명을 바다에 밀어 살해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모두 관광객으로, 오종근은 이들을 평범한 체험 낚시 승객인 것처럼 속여 유인했다. 실종 신고 이후 수색 작업에서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사건은 빠르게 전모를 드러냈고,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미확인 범행 존재 가능성도 제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오종근의 추가 범행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는 수년간 관광객 상대로 낚싯배 영업을 해왔으며, 피해자와 유사한 조건의 실종 사례가 지역에 남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수사당국은 공식적으로 혐의를 추가하지 않았지만, “오종근의 범행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의혹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7명의 자녀들.. 가족들도 큰 고통

한편, 가족 역시 이 사건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종근의 장남은 사건 이후 충격과 수치심에 시달리다 2008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해당 내용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부인은 사건 직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딸의 집 근처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녀는 총 7명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 언론 노출을 피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종근이 수감된 이후, 그의 고향 마을에서도 조용한 단절이 이어졌다. 보성 회천면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그가 머물던 집은 사건 이후 철거됐다. 일부 주민들은 “이웃하기조차 불쾌한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오종근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졌으며, 사건 이후 한동안 외부 낚시 관광객들의 방문도 크게 줄었다. 한 주민은 “그 배에 나도 타봤다.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 생겼는지도 몰랐다”며 “멀쩡한 얼굴로 악마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수감 생활과 사형제 논쟁

오종근은 사형 확정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장기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고령 수형자로서 별다른 분쟁 없이 조용히 복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간에 지병 치료를 병행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도소 수감 생활 역시 조용했다. 고령과 지병으로 병실과 수감실을 오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냈고, 동료 수형자들과도 교류가 거의 없었다. 교도소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말이 없고 감정 표현이 드물었으며, 면회를 거의 받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녀들이 교도소를 찾았다는 기록은 없으며, 유언장이나 메모 같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종근은 수감 중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다퉜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형은 끝내 집행되지 않은 채 스스로 생을 마무리했다. 수감 중에는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 제청도 시도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0년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오종근은 끝내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자연사하면서 사형제 존폐 논쟁에 다시 불씨를 지폈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도 수십 명의 사형수가 복역 중이다. 형벌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