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나섰다 계엄군에 참변…국가 상대 손배소송 승소
5·18민주화운동 당시 헌혈에 나섰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고등학생의 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 민사14부(나경 부장판사)는 A씨 등 315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 청구 금액의 50∼89%를 인정했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유족들은 최소 8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
소송에는 고교생이거나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숨진 박금희양, 전영진군, 차종성군, 정윤식씨 가족과 다섯 살배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조사천씨의 유족 등이 참여했다.
박금희양은 전남여상 3학년이던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이 쏜 총탄에 사망했다. 박양은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차량 방송을 듣고 헌혈을 하고 오던 중 버스 안에서 참변을 당했다. 전영진군은 대동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차종성군은 1980년 5월19일 시민을 구타하는 계엄군에 항의했다가 광주교도소로 끌려갔다. 고문을 당한 차군은 45일 만에 풀려났으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3년 3월5일 숨을 거뒀다. 정윤식씨는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으로 항전하다 계엄군에 체포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982년 2월28일 세상을 떠났다.
조사천씨(당시 36세)는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 집단 발포로 숨졌다. 조씨의 장례식에서는 당시 다섯 살배기 아들이 영정을 들었는데, 이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언론에 실리면서 5·18의 상징이 됐다.
재판부는 “전두환 등 신군부가 헌법 질서 파괴 범죄를 자행하며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로 위법성 정도가 중대하고, 고인과 가족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0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두루 고려해 배상금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정부는 5·18보상법으로 이미 보상받은 사람은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해 더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정신적 손해를 고려하는 내용은 없었다며 2021년 5월 위헌 결정을 했다. 이후 5·18 유공자와 유족 1000여명이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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