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록히드마틴을 노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무와 거버넌스, 성장전략을 조명합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을 인수하기로 하며 '한국형 록히드마틴'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오너의 꿈에 걸맞게 몸집을 키웠으며 2022년 한화디펜스, 2023년 한화방산을 각각 흡수합병하고 2024년 말 한화오션을 연결 편입해 그룹 내 방산 역량을 결집했다.
K-9 자주포는 폴란드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고 독자 개발 능력을 갖춘 잠수함은 캐나다에서 60조원 규모의 수주전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항공방산은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을 생산하고 있으나 이와 연계할 플랫폼이 개발되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F-21 전투기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을 늘린 것은 항공방산의 마지막 퍼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KAI 지분 인수 '민영화 대비' 포석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KAI 지분율은 지난해 말 기준 4.99%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 매입에 대해 밝힌 공식 입장은 "전략적 협업 강화"다.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방산·항공우주 분야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라고 밝혔으며 출자 목적에도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투자로 기재했다.
그러나 업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AI 지분 인수를 민영화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해석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을 매집한 사실이 확인되자 경쟁사인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은 인수 검토를 위한 TF를 꾸리는 등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AI 인수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자체 전투기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육상방산은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K9 자주포를 비롯해 K10 탄약 운반차, 천무 다연장로켓, 레드백 장갑차 등의 플랫폼을 확보했다. 해상방산은 한화오션이 최신예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등을 건조한다.

항공방산은 전투기 플랫폼이 없는 만큼 무기체계 판매가 아닌 부품 공급에 그친다. KAI와 맺은 KF-21 양산 부품 17종 공급 계약의 규모는 4731억원이며 방위사업청과 계약한 KF-21 최초양산 엔진은 1조2155억원이다. KF-21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약 1조7000억원의 수주를 쌓았다.
KAI를 인수하면 항공방산의 수직계열화가 완성된다. KAI가 양산한 기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과 레이더 등을 납품하는 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F-21에 4대 항공전자장비로 꼽히는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추적장비(IRST)를 공급하고 있으며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F414 계열을 면허생산해 납품한다.
분명한 장단점...수직계열화vs독점·비용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과거 정부가 수차례 거듭됐던 KAI 민영화 추진 때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인수합병을 통해 땅과 바다로 방산 덩치를 키웠으나 유일한 공백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인수로 인한 시너지와 명분은 분명하나 걸림돌이 많다. 독점 우려를 해소해야 하며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도 막대하다. 독점 우려와 관련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할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3가지 시정조치를 내렸으며 △함정 탑재 장비의 견적 가격을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 △경쟁사가 방위사업청을 통해 함정 장비의 기술정보를 요청했을 때 부당하게 거절하는 행위 △경쟁사로부터 취득한 영업 비밀을 계열사에 제공하는 행위 등이다.
또 상장사인 KAI를 연결 편입하려면 지분을 30%까지 확보해야 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KAI의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주식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574만5964주(26.41%)로 1주당 18만원일 경우 4조6343억원이며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반영하면 6조원으로 증가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방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11조원의 중장기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KAI 인수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인수로 인한 장점은 분명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부품·장비 역량과 KAI의 체계통합(조립·완성)을 결합해 기체-엔진-레이더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다. 최근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 방산 수입국들은 한 기업에서 모든 분야 구매가 가능한 턴키 방식을 선호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투기 부품 양산 체계를 갖췄지만 기체가 없는 만큼 이를 확보해야 패키지 수출이 가능하다. 우주산업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우주 발사체에 KAI의 위성 체계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민영화 이후 항공전자 생태계 붕괴 우려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AI 지분 인수로 민영화 이슈가 재점화된 상황이다. 다만 어떤 기업이 KAI를 인수하더라도 한국의 항공전자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LIG D&A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시스템이 항공전자 시장을 양분한 상황에서 KAI가 인수되면 특정 기업집단이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KAI 인수로 한국 유일의 전투기 플랫폼을 확보하게 될 기업은 장비, 시스템 연동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항공전자 부품 수주가 경쟁입찰 등으로 이뤄지더라도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 기술적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한 기업이 항공전자 시장을 독점하면 경쟁이 사라져 기술 개발의 동력이 떨어지고 무기체계 가격은 상승할 수 있다.
다만 독점 방지책으로 방위사업청이 전투기 핵심부품을 직접 구매해 KAI에 조립을 맡길 수 있다. 실제 KF-21의 엔진 등 핵심 부품 구매처는 KAI가 아닌 방위사업청이다. 또 KAI가 항공기 체계통합 분야의 유일한 플레이어인 만큼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도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한화오션 인수 때처럼 강력한 시정조치를 내려 독점을 견제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전투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KAI뿐"이라며 "KAI가 특정 기업집단에 소속되면 한국 유일의 전투기 플랫폼이 독점될 만큼 경쟁 구도로 성장한 항공전자의 시장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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