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을 보다 보면 짙은 초록색 꽃송이가 수북하게 달린 채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데치면 식감이 밋밋하고 특유의 향이 난다는 이유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슬쩍 지나치기 쉽습니다. 몸속 염증이 걱정될 때 생강이나 마늘, 값비싼 영양제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냉장고에 몇 송이 넣어 두고 반찬과 국, 볶음 요리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평범한 채소가 있습니다. 바로 브로콜리입니다. 브로콜리가 온몸의 염증을 약처럼 한 번에 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채소 가운데 공식적인 항염 식품 1위라는 순위도 없습니다. 다만 브로콜리에는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세포의 방어 과정을 연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설포라판 전구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브로콜리와 양배추, 무, 청경채 같은 십자화과 채소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라는 식물성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브로콜리를 자르거나 씹으면 세포 조직이 부서지고, 글루코라파닌이라는 성분이 미로시나아제 효소와 만나 설포라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설포라판은 세포가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과정과 염증 신호를 조절하는 경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연구돼 왔습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도 브로콜리와 양배추 같은 십자화과 채소에 글루코시놀레이트가 들어 있으며, 이 성분이 분해되면서 인돌과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계열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결과가 일정하지 않고, 브로콜리나 설포라판이 염증성 질환을 치료한다고 결론 내릴 만큼 근거가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브로콜리 한 조각을 천천히 씹으면 단단했던 조직이 부서지면서 섬유질과 여러 식물성 성분이 위장관으로 내려갑니다. 일부 영양소는 작은창자의 표면을 지나 혈류로 들어가고, 간에서 가공된 뒤 각 조직과 세포로 이동합니다. 설포라판은 몸속 염증을 직접 빨아들이거나 혈관을 씻어 내는 청소부가 아닙니다. 세포가 외부 자극과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할 때 사용하는 방어 체계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과 조리 방법이 달라 실제로 만들어지고 흡수되는 설포라판의 양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브로콜리를 먹은 뒤 설포라판이 비교적 빠르게 흡수되고 배출될 수 있지만, 전구물질이 설포라판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개인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브로콜리를 몸에 좋다며 푹 삶는다면 중요한 성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로시나아제는 열에 민감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끓이거나 지나치게 익히면 활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생으로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브로콜리가 질기거나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짧게 찌거나 살짝 데쳐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면 됩니다. 익힌 브로콜리에 겨자나 무처럼 미로시나아제를 포함한 식재료를 소량 곁들이면 설포라판 이용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는 익힌 브로콜리에 겨잣가루를 더했을 때 설포라판의 생체이용률이 높아졌습니다. 다만 많이 먹는다고 효과가 계속 커지는 것은 아니며, 브로콜리 한 가지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채소를 번갈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로콜리는 한꺼번에 많이 먹기보다 매일 식탁에 조금씩 올리는 편이 좋습니다. 송이를 작게 나눠 3~5분 정도 가볍게 찌고, 두부나 달걀, 생선과 함께 곁들이면 단백질과 채소를 한 접시에 구성할 수 있습니다. 초고추장과 마요네즈를 듬뿍 찍으면 당류와 나트륨, 지방이 늘 수 있으므로 레몬즙이나 식초, 들기름을 소량 활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브로콜리 수프를 만들 때도 버터와 생크림을 많이 넣으면 채소의 장점보다 포화지방과 열량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평소 십자화과 채소를 잘 먹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큰 그릇으로 먹으면 가스와 복부 팽만이 생길 수 있으므로 양을 천천히 늘려야 합니다. 항응고제를 복용하며 비타민 K 섭취를 일정하게 유지하라는 안내를 받은 사람은 갑자기 섭취량을 크게 바꾸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브로콜리는 온몸에 퍼진 염증을 하룻밤 사이에 잠재우는 약이 아닙니다. 실제 임상시험에서도 설포라판이 염증 지표를 개선하지 못한 결과가 있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근거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가공육과 튀김, 달콤한 간식이 차지하던 자리에 브로콜리와 여러 채소를 자주 올리는 식습관은 몸이 받는 부담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장을 보다 싱싱한 브로콜리를 발견했다면 한 송이는 오늘 반찬으로, 다른 한 송이는 살짝 데쳐 냉장 보관해 보십시오. 몸을 지키는 힘은 특별한 식품을 한 번 많이 먹는 데서 생기지 않습니다. 매일 접시에 초록색 채소를 빠뜨리지 않는 작은 선택이 쌓일 때, 10년 뒤에도 가벼운 관절과 편안한 혈관으로 가족과 일상을 누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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