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하의 대표 모터사이클이라고 한다면 단연 플래그십 모델로 온갖 첨단 기술이 집약된 YZF-R1을 꼽을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 못지 않게 주목하는 모델이 있다. 바로 MT 시리즈다. R1이야 플래그십이기도 하고, 현재도 레이스에서 사용되는 건 물론이고 모토GP에서 활약중인 YZR-M1에서 얻은 기술력을 투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 라이더가 일상에서 활용하기 좋은지 생각해보면 그리 좋다고는 할수 없기 때문. 그런 점에서 MT 시리즈는 R1에 비해 트랙에서의 퍼포먼스는 조금 떨어지지만 일상에서 어지간한 스포츠 주행까지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는 만능 모터사이클로 자리하고 있고, 이에 맞춰 MT-03부터 MT-10까지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출시된 MT-09야 말로 MT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모델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3기통의 엔진을 새롭게 개발해 적용함으로써 2기통과 4기통의 장점만을 모아 라이더가 두루두루 만족할 수 있는 성능을 내도록 구성했다. 이에 힘입어 MT-09가 높은 인기를 얻자 야마하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는데, 최근 유행하고 있는 어드벤처 스타일로 단장한 로드 바이크인 트레이서 9(구 MT-09 트레이서)를 출시했고, LMW(Leaning Multi Wheel)이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투입한 스포츠 모터사이클인 나이켄 역시 MT-09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여기에 역시 유행에 맞춰 내놓은 또 하나의 모델이 있으니 바로 네오 레트로(모던 클래식) 스타일의 XSR900이다. 2016년 처음 등장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모델이 2021년 EICMA에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국내에는 반도체난으로 인해 물량 공급이 늦어져 출시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해 이 XSR900의 신형이 한국 시장에 공식 출시를 알렸다. 시승차를 받아 무엇이 달라졌는지, 특유의 매력은 여전한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신형 XSR900의 슬로건은 ‘Legend Reborn(전설의 재탄생)’이다. 긴 역사를 지닌 야마하인 만큼 브랜드 역사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기록한 모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모델인 TZ250을 오마주했기 때문. 이에 맞춰 공식 홍보영상에 TZ250으로 야마하에 챔피언 트로피를 안겨준 크리스티안 사론을 등장시켜 전설적인 레이서에 대한 헌정과 존경심을 보여주었다. 그런만큼 외관에서도 TZ250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원형 헤드라이트, 연료탱크에 그려진 세로 선, 두툼하게 처리된 시트 후미 등에서 TZ250과 닮은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로켓 카울을 비롯한 풀페어링 등을 갖췄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면 오마주가 아닌 복각판 모델이 되어버리니 이 정도로 마무리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꾸밀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으니 순정 옵션으로 판매하는 미터커버로 부담은 적게 들이면서 스타일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시트의 경우는 서브 프레임 위를 시트가 감싸는 형태로 디자인되어 스타일은 살리면서 실용성을 챙기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차량 크기는 전장 2,155mm, 전폭 860mm, 전고 1,155mm에 휠베이스 1,495mm이다.


최신 제품답게 탑재된 장비들 역시도 최신 기술이 적용된 것들이 탑재됐다. 헤드라이트는 우수한 광량과 수명, 낮은 전력소모의 LED 방식이 장착됐으며, 주간주행등을 더해 스타일과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계기판은 3.5인치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로, 주행 정보 제공과 함께 기능 설정이나 계기판 설정 등이 가능하다. 물론 조금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겠지만, 가격 인상의 요인이 되는 건 물론이고 너무 크면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가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한다.


핸들에는 기본적인 조작버튼 외에도 차량 설정 변경을 위한 메뉴 호출 버튼 겸 다이얼과 상하 조절 버튼이 있으며, 장거리 주행에서 피로를 줄여주는 크루즈 컨트롤 버튼, 그리고 주행모드를 변경할 수 있는 모드 버튼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핸들 양 끝에는 핸들바 미러가 장착되어 스타일과 실용성을 모두 갖췄다.

본격적인 시승을 위해 도로로 나섰다. 차량흐름이 많은 시내를 통과하기 위해 D-모드를 3으로 낮추고 달리자 출력이 부드럽게 뻗어나와 한결 편하다. 총 4단계까지 있는데, 마지막 4단계는 노면이 젖은 상태나 우천시에 사용하는 ‘레인모드’ 정도여서 조금 덜 답답하기 위한 선택. D-모드 설정에 따라 차량의 각종 정보들, 트랙션 컨트롤이나 윌리 컨트롤, 슬라이드 컨트롤 등의 전자 기능이 바뀌게 되므로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막히는 구간을 빠져나왔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 D-모드를 가장 강력한 1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짜릿한 가속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탑재된 파워트레인은 3기통 CP3 엔진으로, 지난 2020년 MT-09에 탑재된 신형 엔진의 수혜를 이번 XSR900도 받게 됐다. 스트로크를 3mm 늘려 배기량이 845cc에서 889cc로 늘어나며 최고출력은 4마력 늘어난 119마력/10,000rpm, 최대토크는 93Nm/7,000rpm으로 상승함과 동시에 발생구간도 빨라졌다. 이전 모델과 신형을 동시에 시승한 게 아니라서 명확하게 차이를 느끼긴 어렵지만, 동일한 점도 있었다.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왜 이도 저도 아닌 3기통을 선택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막상 제품이 등장해 직접 시승을 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이번 신형 역시나 그 때 경험했던 짜릿한 강력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수치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아도 스로틀 레버를 끝까지 감았을 때 느껴지는 CP3 엔진의 가속력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난폭하다. 물론 이런 난폭함이 부담스럽다면 주행모드를 2나 3으로 낮춰주면 훨씬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모델로 변신하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타일만 레트로일뿐, 기능은 현대적이라고 했는데, 운동성 면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커브 구간에서도 요즘 모델답게 빠르게 방향을 전환한다. 커브 구간을 돌아나가기 위해 차체를 기울여도 기울어지는 과정이 점진적이어서 예측이 수월해 불안함 없이 돌아나갈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앞뒤 조절식 서스펜션은 물론이고 경량 휠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전 세대에서는 일반 주조방식의 휠이 적용됐는데, 이번 신형에 적용된 휠은 제조 방식이 조금 다르다. 기본 형태는 주조 방식으로 만들지만, 크기를 작게 만든 다음 열을 가하면서 빠르게 회전시켜 크기를 늘리는 ‘회전 단조(spinforged)’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휠의 무게를 덜어내면서도 제조 단가에는 기존 주조 방식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양산 모델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량 휠이 갖는 이점은 단연 운동성의 변화다. 스프링, 즉 서스펜션을 중심으로 위에 걸리는 무게(스프링 상중량, upsprung weight)와 아래에 걸리는 무게(스프링 하중량, unsprung weight)는 같은 양만큼 변화해도 운동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레이스용 모터사이클이 단조휠 등을 사용해 경량화를 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XSR900의 회전단조 휠은 일반 단조휠에 비해 감량 수준은 적지만, 이 정도의 변화로도 충분한 운동성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렸을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배기량 증가로 인한 성능 향상, 그리고 운동성의 증가 등으로 예전보다 더 역동적으로 변한 XSR900에 또 하나의 반가운 변화가 더해졌다. 바로 퀵 시프트의 추가. 한적한 도로에서 빠른 가속을 경험하고 싶을 때 클러치로 한 번씩 동력을 끊어주며 변속하다보면 흐름이 끊기고, 회전수를 맞춰 스로틀만 되돌린 상태에서 빠르게 변속하는 레브 매칭(Rev matching)은 배우기도 어려울뿐더러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변속기에 상당한 무리를 주게 되어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고장 걱정 없이 경쾌한 가속을 경험하고 싶다면 퀵 시프트가 제격인데, 이전 모델에서는 따로 옵션을 구매해야 했지만, 이번 신형에서는 기본 사양으로 적용됐다. 따라서 가속은 물론이고, 와인딩 코스에서 코너 진입 전 감속에서도 적극적인 하단 변속으로 엔진 브레이크 활용 및 보다 빠른 탈출 가속이 가능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차체를 유지할 수 있게 백토크를 감소시켜 뒷바퀴가 튀는 현상을 억제하는 어시스트 앤 슬리퍼(A&S) 클러치도 더해져 있으니 적극적인 변속으로 즐거운 스포츠 라이딩을 즐기면 된다.

여기에 안전을 위한 장비도 두루두루 갖춰져 있다. 브레이크는 앞 듀얼 디스크, 뒤 싱글 디스크 방식에 2채널 ABS가 더해졌으며, 마스터 실린더는 브렘보제를 적용해 적은 힘으로도 높은 제동력을 손쉽게 컨트롤할 수 있다. 또한 차량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6축(상하, 좌우, 전후) 관성측량장치(IMU)를 바탕으로 트랙션 컨트롤, 슬라이드 컨트롤, 브레이크 컨트롤, 리프트 컨트롤 등이 적용되어 있어 주행모드를 통해 일괄 조절할 수도 있고, 각각의 기능을 개별적으로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헤드라이트를 비롯한 차량의 전 등화류에는 LED가 적용되어 있어 피시인성을 높여 야간에도 보다 안전한 주행이 가능하다.

정통 클래식이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이를 즐기기 위해선 감내해야 할 불편이 너무 크다. 성능적인 면에서의 부족함은 물론이고 편의장비는 전무한 수준에 가깝고 여기에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스타일은 살리면서 현대적인 성능과 장비, 기능들로 무장한 모던 클래식 장르가 유행하는 것이고, 이 시장에서 자사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해 보여주는 XSR 시리즈를 꾸준하게 선보이고 있는 야마하를 비롯한 많은 브랜드들이 있는 한 이러한 유행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