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거친 초크 칠 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깼다. 마이크를 쥐고 무대를 찢어놓던 독기 품은 눈빛이, 이번엔 차가운 초록색 테이블 위를 매섭게 훑고 있었다. 큐대 끝에서 짜릿한 반전의 샷이 터져 나온 순간, 비웃던 사람들의 입에선 경악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이크 대신 큐대? 독기로 똘똘 뭉친 경기도의 딸
2013년 무렵 경기도 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거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쳐도 나오지 않던 완벽한 무명 지망생 키썸(KISUM). 버스 안에서 신나게 춤추던 이 소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편견을 깨고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라는 피 튀기는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초반엔 가사를 절어 뼈아픈 혹평을 들었지만, 기어코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제시를 꺾어버리는 대반전을 썼다.
그런데 이 지독한 근성 캐릭터가 랩 다음으로 꽂힌 분야가 진짜 골 때린다. 바로 '당구'다. 바쁜 스케줄을 쪼개 스포츠 채널의 당구 예능 '7전 8큐'에 나가더니, 남다른 각도 계산과 엄청난 집중력으로 결승까지 올라가 당당히 준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랩 하던 깡다구가 초록색 테이블 위에서도 그대로 폭발한 셈이다.
동네 스코어보드 자랑? 진짜 고수는 '국가공인'을 딴다
당구라는 게 사실 체력만큼이나 고도의 멘탈을 요구하는 멘탈 스포츠의 끝판왕이다. 당구에 미친 사람들이 큐대 좀 휘두르다 결국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 퀘스트가 있는데, 바로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당구)' 자격증이다.
이게 뭔지 감이 안 온다면 동네 오락실과 프로게이머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동네 당구장에서 친구들 상대로 짜장면 내기 이기는 수준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 자격증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체육 관련 국가공인 타이틀이다. 이 자격증 하나면 나중에 정식 당구 아카데미를 차리거나 방과 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진짜 '사부님'이 될 수 있다.

필기부터 실기까지, 게임 퀘스트 깨듯 박살 내는 법
다만 이 합격 목걸이를 거는 과정은 고3 수험생 뺨치게 살벌하다. 일단 책상에 앉아 뇌를 굴려야 한다. 스포츠심리학, 운동역학, 스포츠윤리 등 이름만 들어도 어질어질한 7개의 전공과목 중 자신이 있는 5과목을 골라야 한다. 과목당 무조건 40점을 넘겨야 하는 '과락' 방어전을 펼치면서,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1차 관문이 열린다.
진짜 지옥은 2차 실기와 구술시험이다. 날카로운 눈빛의 면접관들 앞에서 3쿠션이나 4구의 정해진 미션을 흔들림 없이 쳐내야 한다. 손만 잘 써선 안 된다. 입으로는 당구의 복잡한 룰과 지도 방법론을 래퍼처럼 막힘없이 줄줄 읊어야 한다. 실기와 구술 모두 각각 70점 이상을 받아야만 통과다.
검색창조차 외면했던 버스 안 무명 소녀가 끝내 자신의 이름을 증명하고, 낯선 당구대 위에서도 기어코 승리를 쟁취해 내는 모습. 결국 인생이라는 것도 내가 원하는 각도를 찾아 끝까지 밀어치는 '3쿠션'과 똑같지 않을까?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큐대가 있다면, 오늘 당장 초크를 칠하고 첫 샷을 날려보자.
당구공은 원래 값비싼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졌는데, 이를 대체할 싼 물질을 찾으려다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셀룰로이드)이 당구장에서 발명되었다는 소름 돋는 사실!
Copyright © 저작권법에 따라 허락 없이 무단 복제, 배포, 전재를 금지합니다. 에디터 공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