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구타했던 학폭 가해자가 KBO 레전드?" 불사조 박철순의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2022년 KBO가 리그 40주년 레전드 40인을 발표했을 때, 한 이름을 두고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불사조' 박철순. 원년 22연승의 주인공이자 두산 영구결번(21번)의 주인이지만, 그 이름 뒤에는 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구타 사건의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레전드 40인 중 가장 먼저 선정된 고(故) 최동원이었다.

배트가 부러질 때까지, 1979년의 그날

사건은 1979년 3월 연세대 시절로 거슬러 간다. 대통령기 준결승에서 동국대에 패한 뒤, 당시 2학년(복학생)이던 박철순이 3학년 최동원을 배트로 구타했다. 동기 이윤상의 증언으로는 배트가 부러질 정도였고, 최동원은 허리에서 피가 나 이불이 피범벅이 된 채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매 때리는 곳인지 야구하는 모임인지 모르겠다"는 최동원의 절규는 당시 동아일보에 그대로 실렸다. 확인된 구타만 세 차례. 최동원이 선수 생활 내내 시달린 허리 부상의 원인을 이 구타에서 찾는 시각도 많다.

책임 공방은 지금도 남아 있다. 최동원은 생전에 "4학년 선배들의 지시였다"고 했지만, 박철순은 지시설을 부인하며 후배가 건방져서 때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박철순이 4학년들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점에서 그가 주도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아이러니한 건 그 뒤다. 학교가 박철순의 미국 진출을 두고 피해자 측 의견을 물었을 때, 최동원의 부친은 "자식 키우는 아비 입장에서 기회를 주자"며 길을 열어줬다. 그 관용 덕에 박철순은 마이너리그를 거쳐 1982년 프로 원년의 영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2연승의 빛, 그리고 이어진 그림자

원년의 박철순은 분명 위대했다.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 한 시즌 22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OB의 원년 우승과 MVP를 쓸어 담았다.

이후 허리와 아킬레스건이 무너지는 부상 속에서도 몇 번이고 재기해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고, 마흔까지 던진 뒤 1996년 은퇴했다. 이 인간 승리의 서사가 올드팬들이 그를 사랑한 이유이자, 영구결번의 근거였다.

문제는 은퇴 후에도 그림자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1997년 코치 시절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돼 면허정지 100일 처분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2군에서 후배를 구타한 고참 선수들을 구단이 문책하자 이에 반발하다 시즌 중 사임했다.

후배를 때릴 때와 구타 문책을 받을 때의 기준이 달랐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여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팬서비스와 관련한 좋지 않은 경험담까지 회자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재평가 여론이 커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덮이지 않는 것

옹호론이 없는 건 아니다. 빠따와 기합이 일상이던 시대였고, 박철순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 전체의 악습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 기준으로도 퇴학 이야기가 나오고 언론에 보도될 만큼 도를 넘은 폭력이었다는 반박이 더 무겁게 남는다.

원년의 22연승은 사라지지 않는 기록이고, 최동원의 피멍 든 허리도 사라지지 않는 기록이다. 레전드라는 호칭이 업적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경까지 담는 말이라면, 박철순이라는 이름 앞에서 팬들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불사조가 끝내 태워버리지 못한 그림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