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 외치는 이재명의 금투세 유예, 그 지독한 포퓰리즘
금투세 논쟁, 진보-보수 문제 아냐…‘소득 있는 곳에 과세’ 원칙 지켜야
저의 지인으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민주당 권리당원이 있었습니다. 총선 때 제가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을 비판하자, 지인은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우는 데 그런 지엽적인 문제로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오히려 저를 비판했습니다.
그랬던 지인이 얼마 전 민주당을 탈당했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지인은 사업 경험도 많고 증권시장 사정에 밝은 사람입니다.
“이재명 대표라면 금투세 논란을 ‘수년에 걸친 논의가 이미 끝났다. 시대정신에도 맞는다’고 초기에 잠재웠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유예론을 제기했다. 너무 실망했다. 한국 경제, 증권시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쟁점은 분배 문제다. 자산 인플레, 조세 형평 문제가 너무 심화하여 경제의 하부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저출생도 거기서 파생됐다.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민초들의 아픔은 더 커질 것이다. 절망스럽다.”
민주연구원 보고서와도 어긋나
이재명 대표는 지난 7월10일 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금투세 유예 의사를 밝혔습니다. 기자의 금투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고 대한민국 미래가 어두워서야 주식투자 하겠나. 매집하고 작전 써서 덤터기 씌워 도망가고. 주식이라는 게 회사 실체를 반영하는 건데, 알맹이 쏙 빼서 자회사 만들고. 이런 주식시장에 누가 희망을 갖고 투자하겠나.”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하는 게 정말 맞나.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생각하고 거래세 대체하는 거라서 없애는 건 신중해야 하지만, 시행 시기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금투세를 내고 싶지 않던 주식 투자자들은 환호했습니다. 올해 초 금투세 폐지를 선언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금투세 폐지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의힘도 반색하며 “아예 금투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공세를 취했습니다.
자가당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된다는 뜻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7월10일 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구성원의 기본적인 삶을 권리로 인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기본사회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했습니다. 8월18일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개정된 민주당 강령에는 “우리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사회를 원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기본사회를 구현하려면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고 재정을 확보하려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는 공정 과세가 필수입니다. 따라서 기본사회와 금투세 유예는 모순입니다.
민주연구원은 지난 7월31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재정’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의 금투세 개편 방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실현된 모든 소득은 종합적으로 개인의 소득에 합산되어야 하고 누진세율에 의한 응능(應能) 과세가 가능해야 한다. 주식의 양도차익 비과세는 부동산 양도차익이 과세되는 것에 비교하여 비중립적 혜택이며 또한 배당·이자 등 다른 대부분의 금융소득이 과세된다는 점에서 비중립적 혜택에 해당한다.”
“2025년 이후에 적용되는 금융투자소득세는 유예 없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정착한 이후에는 공제 규모와 세율 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 정책연구소가 이재명 대표와 전혀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낸 것입니다.
‘면피용’ 상법 개정은 비현실적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를 유예하겠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조세저항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입니다.
금투세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찬성할 이유도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은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언젠가 내가 큰돈을 벌어도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큰손들이 빠져나가면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과 주식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민주당에서는 금투세 유예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아예 폐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금투세 ‘시행이냐 유예냐’를 놓고 민주당 의원들이 ‘토론 배틀’을 했습니다. 토론자들은 2시간30분의 격론 뒤에 이런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금투세 디베이트 결과, 필요성과 시급성이 모두에게 인정된 주식시장 밸류업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정책위원회는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를 법률안으로 성안하여 당론으로 추진하겠다.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 독립이사 의무화, 감사의 분리 선출,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주총 의무화 및 권고적 주주제안 허용 등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은 현실성이 별로 없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왜냐고요? 민주당이 시급하다고 내세우는 5대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대기업 자본과 기득권 세력이 극구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금투세도 폐지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상법 개정에 찬성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장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극구 반대할 것입니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상법 개정은 앞으로 상당 기간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민주당의 상법 개정 시도는 금투세 유예에 대한 비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면피용’인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의심이 많은 것일까요?
금투세 논쟁의 대립 전선은 보수와 진보가 아닙니다. 보수 성향 정치인이나 경제학자 중에도 금투세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투세 논쟁은 조세저항과 조세정의, 부자감세와 공정과세, 비상식과 상식의 대결에 더 가깝습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은 지난 8월22일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금투세법을 가지고 민생 관련 법안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 한다.” “이재명 대표가 기본사회나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금투세를 얘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붙는 건 당연한 이치다.” “금투세를 폐지하자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증권 투자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는 거지.”
언론은 어떨까요? 고현곤 중앙일보 편집인이 지난 9월10일치 신문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유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금투세 도입 배경과 당위를 짚은 탁월한 칼럼입니다.
강령 “서민과 중산층 대변” 어디로
서경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9월24일치 신문에 이용우 전 의원, 최운열 전 의원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기획 기사를 썼습니다. “당연히 가야 할 세제…보수 대 진보의 문제 아니다”라는 세제실장 출신 전직 관료들의 의견을 큰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박중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9월25일치 칼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각자 나름의 리스크에 쫓기고 있는 윤 대통령, 이 대표, 한 대표(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이해가 한 점에서 모인 것이 금투세 문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청년층이 다수 포함된 1400만 주식 투자자를 의식해 금투세 폐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깎아준 증권거래세를 원상 복구하는 데 대해선 입도 뻥끗 않는다. 물론 지지율에 득이 될 게 없어서다. 이 대표는 ‘부자 과세’ 강행을 주장하는 당내 세력 및 ‘개딸’을 의식하면서도 한편으론 주식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에게 몰아칠 사법 리스크 방어를 위해 어느 쪽 하나 포기하기 싫어서다.”
조선일보는 9월11일치 신문에 “증시 불안 키우는 ‘금투세 논란’,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 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당초 금투세 도입은 증권거래세 폐지와 패키지 형태로 만들어졌다. 증권거래세는 이미 폐지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만약 금투세를 폐지하거나 유예할 경우, 주식 관련 조세 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어떻습니까? 이처럼 금투세는 보수 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저항 대 조세정의, 비상식 대 상식의 문제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금투세 유예론자들은 금투세를 3년 정도 유예하고 증시 개혁과 부양으로 코스피 4천이 되면 금투세를 걷자고 주장합니다. 3년 뒤에 코스피가 4천이 될까요? 설사 코스피 4천이 된다고 해도 투자자들이 그때는 순순히 금투세를 받아들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또 다른 핑계를 들이대며 저항할 것입니다.
혹세무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뜻입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금투세 유예를 하든 예정대로 시행하든 그것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금투세 폐지나 다름이 없는 금투세 유예를 선택한다면 민주당 강령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문장을 지우시기 바랍니다. “금융 세제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하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과세 기반을 확충하여 자산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문장도 지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론과 이재명 대표의 금투세 유예론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얼마나 다른 정당인지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너무 과격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 [속보] 정부, 쌍특검법·지역화폐법 거부권 건의안 의결…“여야 협의 없이 일방통과”
- 한덕수 “김건희 명품백, 대통령 사과했으니 국민이 이해해 줘야”
- 뉴진스 팬들 “민희진 해임으로 수백억 피해 예상…배임 고발할 수도”
- 김호중 “정신 차리고 살겠다” 최후진술…검찰, 징역 3년6개월 구형
- “화투놀이 불화 있었다”…‘봉화 경로당 농약’ 용의자는 숨진 80대
- “교육계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잇따라…아연실색”
- 조국 “명예훼손죄, 친고죄로 바꾸자는 이재명 제안 전적 동의”
- 일 언론 “이시바, 중의원 조기 해산→10·27 총선거 방침”
- “SNS는 청소년 유해물질” 여론 떠밀려…빅테크 업계 ‘땜질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