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왜 ‘특검’ 아닌 ‘특감’ 꺼냈을까? [10월25일 뉴스뷰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9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10.25) 아침신문 1면에는 △윤 대통령,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검토” 언급(6곳)이 가장 큰 뉴스였습니다. 이어 △3분기 성장률 0.1%(5곳) △여권내 분란 격렬(2곳) △미 대선 초접전(2곳) 등의 기사가 주요하게 실렸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한동훈의 ‘특감’ 정치
② 시선, 클릭!
- 3분기 성장률 0.1%
- 지난해 아동·청소년 31만명, 정신과 찾아
- 외국인, 전체 인구 4.8% 대구시 규모
③ Now and Then : Lazenca, Save Us(N.EX.T, 1997)
① 차이의 발견
# 한동훈의 ‘특감’ 정치
- 윤-한 면담 이후,국민의힘 내분이 점점 격화되고 있습니다. 양쪽 대결은 11월 초 의원총회가 1차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 친윤계와 친한계의 확전 상황에서 ‘정당성’은 한 대표 쪽에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정을 저지르고, 국정난맥을 무릅쓰고, 김건희 여사 의혹을 무조건 감싸고 있는 쪽은 모두 윤 대통령이고, 한 대표는 이를 시정하자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여론도 상대적으로 한 대표를 더 지지하고 있으며, 언론의 향배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러나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격돌 이후, 그 첫번째 전장을 서둘러 ‘특감’으로 잡은 것이 정당성을 떠나, 정무적으로도 과연 적절한 전략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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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감찰관(특감)의 한계
- 특별감찰관법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만들어졌습니다.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 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 등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 감찰을 담당하는 직책입니다.
- 국회가 15년 이상 경력 변호사 3명을 후보로 추천하면, 대통령은 이중 1명을 지명하게 됩니다.
- 2015년 3월 초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임명됐으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의뢰 직후인 2016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으로 사직하면서 지금까지 8년째 공석입니다.
-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 2016년 9월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주장하며 북한인권재단 이사 선임과 연계시켰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재단 설립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수 쪽 시각에서 설령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를 특별감찰관과 연결짓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따라서 이 둘을 분리하자는 한 대표의 말은 틀린 게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늦었습니다.
1) ‘과거’ 아닌 ‘미래’ 대비
- 그러나 지금 김건희 여사 의혹은 앞으로 있을 일이 아니라, 이미 저질러진 일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앞으로 김 여사를 감시하자는 것인데, 그렇다고 과거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다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순 없습니다.
2) 특별감찰관, 또 검찰 거쳐야
- 그리고 특별감찰관은 제한적인 감찰 기능만 있을 뿐, 수사나 기소 권한이 없습니다. 만일 문제점을 발견하더라도 결국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의뢰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검찰의 중립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특별감찰관의 수사의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론의 지원을 받을 순 있겠으나, 지금처럼 국민이 뭐라 하든말든 신경쓰지 않는 윤 대통령, 그리고 무조건 ‘김 여사는 불기소’ 방침인 지금의 검찰을 이대로 두고선 아무런 효능이 없습니다.
2. 한동훈은 왜 ‘특감’ 꺼냈나?
- 한 대표가 ‘특감’의 이런 한계를 모를 리 없습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잘 알기에 ‘특검’ 아닌 ‘특감’을 꺼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1) 한동훈 특유의 어중간
- 한 대표는 지난 추석 연휴 때 CBS에 출연해, 비틀스의 ‘Come together’를 소개하면서 당시 “존 레넌이 폴 매카트니에게 '너는 왜 절벽 앞에 와서 뛰어내리지 않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나라가 잘되고, 국민들이 잘되기 위해서 (내가)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 ‘뛰어내릴 시점이 지금이냐’라는 점에 대해선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특감은 ‘절벽’이 아니라, ‘계단’입니다.
2) 검사 출신의 한계
- 법조인 출신들이 처음 정치를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라는 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문외한이지만, 법은 잘 안다고 생각하고, ‘법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해야 자신의 전문성을 뽐내고,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를 본인 스스로에게도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별법’에 대해 한 대표는 ‘잘못된 법’, ‘위헌적 요소’ 등의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한 대표 주장에 동의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의 한 대표는 ‘정치인’이 아닌 ‘법조인’으로서 기능하는 듯합니다. ‘법조인’은 ‘법조’에서 역할을 하면 됩니다. 무한사고가 가능한 ‘정치’의 영역에서 ‘법조’ 논리를 들이대는 건 이종격투기 옥타곤(6각 링)에 올라와 도복 입고 품새 연습하는 태권도 선수 같습니다.
3) 통하지 않는 눈속임
- ‘특감’이 통과되면, 국민들이 ‘우리 한동훈이 최고’라고 할까요. ‘이제 김건희 문제 해결됐다’고 할까요.
- 곧바로 ‘이젠 특검’ 압박이 더 커질 것입니다.
- 한 대표의 ‘특감’ 주장 자체만 놓고보면,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특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라면,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 그리고 한 대표는 ‘서울법대 - 검사’ 등의 간판과 깔끔한 외모 등을 무기로 똑똑함이 넘쳐 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많은데, 가끔 보면, ‘왜 저렇게 금방 탄로날 멍청한 짓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때도 많습니다. 총선 때 김포시에 가서 ‘목련이 피면 김포는 서울 된다’고 하거나, 당 대표 나서면서 ‘채 상병 특검법’을 소리높이 외치고선 막상 되고나선 우물쭈물 하거나 하는 점 등이 대표적입니다.
- ‘서울대 출신, 초년 출세자’들의 한계인데, 늘 국민들은 나보다 더 똑똑하고, 나의 의도는 다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보가 오픈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집단의 사고보다 결코 뛰어날 수가 없습니다.
4) 조급한 마음
- 한 대표는 1973년생, 51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적은 나이라 할 순 없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젊은 편입니다. 어리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 대표는 정치신인입니다.
- 그런데 한 대표를 보면, 마치 무슨 시한부 인생인 듯 ‘차기 대통령’이 안되는 큰일 날 것처럼, 서두르는 모습이 비춰집니다.
- 초년 출세자 또는 늘 각광받던 사람은 잠시 뒤로 물러나거나 한동안 잊혀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이미지를 스스로 소비하고 갉아먹습니다. `하고잡'(뭐든지 일단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경험많고 노련한 정치인들은 가끔 ‘물러날 줄’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조차도 마지막 얼마를 견디지 못해 패착을 저지르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정치신인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 어찌됐든 비대위원장으로서 총선에 참패를 했으면, 좀더 물러나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명분과 정당성을 계속 쌓아나가야 했습니다. 두 달만에 대표로 나서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습니다. `국민이 원한다'는 걸 핑계로 대면 안 됩니다. 차라리 `내가 하고 싶었다'고 해야지. 정치인생을 ‘3년 뒤 윤석열 다음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를 10년, 경우에 따라선 20년을 할 수도 있다’고 하면, 한 대표의 결정과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훨씬 달라졌을 것입니다.
- 한 대표는 22살, 대학교 4학년 때 사시에 합격했습니다. 검찰에서도 문재인 정부 때 브레이크가 걸리기 전까진 늘 선두주자였고, 늘 최연소 대열에 있었습니다. 그런 습성이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연결되고 있는 듯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72년 30살 때 연방 상원의원이 돼 최연소 대통령을 노렸지만, 최고령 대통령이 됐습니다. 한 대표도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의 인생여정과는 달리, 자신의 정치여정을 좀더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여긴다면, 현시점에서 개별의 결정과 판단이 지금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5) 혼자 결정의 한계
- 수사는 보안이 중요합니다. 검찰 발표는 일부러 흘리는 게 아니라면, 발표 직전까지 외부 유출을 최대한 통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특수수사를 주로 해온 한 대표는 이런 분위기에 더욱 익숙할 것입니다.
- 한 대표는 총선을 지휘하던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논의를 하기보단, 혼자 결정해서 불쑥 꺼내놓을 때가 많다는 이야기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종종 들리곤 했습니다.
- 이번에 특별감찰관을 전장으로 삼은 것도 주변 누구와 얼마나 논의를 했는지 의문입니다.
- MBTI로 볼 때, 한 대표는 아마도 INTJ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타고난 성향이 갑자기 바껴지진 않겠지만, 최소한 정치인의 결정은 절대 혼자 ‘고독한 결정’ 방식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비단 한 대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는 어우러져서 하는 것이지, 결정한 뒤 공표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윤석열 정치'(정치라 이름붙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만)가 이런 방식 아닙니까.
3. ‘특감 전략’, 성공은 할 수 있을까?
- 어렵다고 봅니다.
1) 국민의힘 내부
-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이기는 싸움’을 해야합니다. 계산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친한계는 20여명, 친윤계가 40여명, 나머지 40여명은 ‘중립·관망파’로 분류됩니다. 그렇다면, 한 대표는 ‘나머지’ 40여명 중 30여명을 우군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 아무리 한 대표에게 정당성과 여론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굳건한 상황, 한 대표의 미래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에서 의원들이 정치적 모험을 거는 건 쉽지 않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안전지향 쪽 의원들이 많습니다.
2) 민주당
- 특감을 추진하려면, 우선 당내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내 상황은 숫적으로 한 대표에게 극히 불리한 구조입니다.
- 그러니 민주당의 지원이 유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민주당 입장에선 ‘웬 특감’이라며, 한 대표의 의도를 불순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검’’을 회피하기 위해 ‘특감’을 꺼냈는데, 그마저도 ‘친윤계’로부터 부정당하는 상황인데, 민주당이 이 사안을 두고 한 대표를 적극 지원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3) 대중
- 아마도 한 대표는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여론의 도움을 받아, 국민의힘을 압박해서, 의원들을 흔들리게 만드는 형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윤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국민의힘 의원들은 평균적 여론과 다소 떨어져 있습니다. 지역구적 특성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 아울러 대중들도 ‘특검’ 아닌 ‘특감’을 지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검’ 지지 여론이 70%를 넘는데, 국민들이 원하는 게 아닌, ‘그건 됐고, 특감’이라고 하면, 그 지지가 그대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 요즘 대중들은 매우 똑똑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언급한 정도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다 알고 있고, 웬만한 사람들도 한 대표가 무슨 생각인지도 다 읽고 있습니다.
4. ‘특검’ 전략을 세워야
1) 훨씬 위협적
- ‘특감’은 당내 과반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습니다. 호기롭게 칼을 빼냈으나, 만일 다음달 초 의총에서 단칼에 거부당하면 한 대표의 리더십은 추락하게 됩니다.
- ‘특검’은 8표만 확보하면 됩니다. 만일 한 대표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먹으면, ‘특검’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야말로, 윤 대통령과 친윤계에 위협 요소가 됩니다.
- 다만, 한 대표는 ‘특검 이후 상황’이 두렵고, 예측이 안 되기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 유승민처럼 ‘배신자 프레임’에 빠질 것이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유승민이 당시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 반기를 들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따랐다면, ‘지금 유승민’이 어디 있을까요.
- 싸움에서 무기란, 상대방이 움찔할 수 있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싸움에선 나도 한 대 맞을 수 있고, 심할 경우 내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싸움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되어야 하지, ‘내가 한 대도 맞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면, 싸움은 하기도 전에 집니다.
-일단 싸움을 제대로 하고, 이기겠다고 하면, 그 방법은 무궁무진해 집니다. 그리고 손을 잡을 곳도 야당까지 포함해 무수히 많아집니다. `어디는 안돼'라고 선을 긋고 한계를 짓는 순간, 싸움의 승산은 줄어듭니다.
2) 당내 설득작업 필요
- 이를 위해서는 방법론으로 일종의 ‘바닥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 대표는 이에 서툴고, 본인도 그런 걸 잘 하고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 본인 성향도 그렇고, 검찰에서의 인생경험도, 한 큐에 뭔가 터뜨리고, 그러면 사람들의 주목이 확 쏠리고, 여론을 장악하는, 그런 스타일에 익숙하고, 그런 움직임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 그러나 당내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보단,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고, 얘기 나누고, 하는 일의 반복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 40여명의 중립·관망파를 한 사람 한 사람씩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정당성과 국민여론이 한 대표에게 있는데, 당당하지 못할 게 어디 있습니까.
- 그러니 발품을 더 팔아야 합니다. 술을 못 먹더라도, 제로콜라라도 앉은 자리에서 수십잔씩 마셔야 합니다.
- 정치는 패션쇼 런웨이 무대가 아닙니다.
3) 왜 정치를 하는가
- 유승민의 책 제목 중에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2017)라는 게 있습니다.
- 한동훈 대표도 이를 다시 한 번 자문해 봐야 할 듯합니다. ‘대통령 되기 위해서 정치를 하면’ 제2의 윤석열이 됩니다.
- 개인적으로, 한국정치를 위해선 ‘연이은 검찰 대통령’은 한 대표가 아무리 윤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든 말든, 한 대표가 아무리 윤석열과 다르든 말든, 한 대표가 아무리 똑똑하고 대통령 될 사람이든 말든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때론 그 사람의 내면보다 그 사람이 지닌 환경과 외형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훨씬 나은 대통령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두환-노태우 승계가 결코 우리 역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듯 말입니다.
- 한 대표가 정치를 길게 하길 원한다면, 본인의 정치 일정보다 한국의 바람직한 정치 일정을 먼저 상정하고, 그 뒤에 자신을 거기에 맞춰보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경우,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의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 대증 전략은 실패합니다. 피부암인데, 대일밴드 붙인다고 결코 낫지 않습니다.
5. 사설
한겨레 = 특별감찰관은 ‘김건희 특검’ 대신할 수 없다
경향 = 특별감찰관으로는 ‘김 여사 문제’ 막을 수도 덮을 수도 없다
한국 = 지금이 특별감찰관 놓고 '與-與 내전' 벌일 때인가
동아 = 실명 지목된 '김 여사 라인' 8명… 빠른 정리가 최선이다
② 시선, 클릭!
# 3분기 성장률 0.1%
## 지난해 아동·청소년 31만명, 정신과 찾아
### 외국인, 전체 인구 4.8% 대구시 규모
③ Now and Then
27일(일)은 가수 신해철(1968~2014)의 10주기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헌정 콘서트도 26~27일 열립니다. 세상 떠난 지 10년 지난 가수가 지금도 소환되는 건 흔치 않습니다. 지금도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그의 음악성이 바탕이겠지만, 음악외적으로도 신해철 특유의 당당한 자신감과 도전의식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후배 가수들뿐 아니라, 이른바 X세대를 포함하는 1970~80년대생들 중에는 기억 속 신해철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의 리더로 참가해 본인이 작사·작곡한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대중 앞에 등장합니다. 그때 가장 마지막 순서로 등장했던 무한궤도는 모든 사람들이 전주만 듣고서 ‘대상’을 확신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무한궤도 및 솔로 활동 등 전형적인 ‘오빠부대’ 대중가수로 활동하다, 갑자기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하며 로커로 돌아섰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 있다가 온그라운드로 올라오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신해철과 이상은 정도가 유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최정상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과감하게 버리고 던질 수 있는 게 신해철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넥스트는 당시 ‘양지에는 서태지, 음지에는 넥스트’라고 할 정도로 열혈 팬층을 형성하며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이전의 `오빠 신해철'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렇게 또 최정상에 있을 때, 그는 또 활동을 접고 영국 유학을 떠나 ‘모노크롬’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젊은날의 그는 이처럼 음악적으로 끊임없이 변신하고, 새로운 악기나 기법을 도입해 보는 등 실험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또 전혀 거리낌 없이 사회적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그때문에 논란을 빚을 때도 많았지만, 사회 부조리에 대해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연설 등 자신의 소신을 숨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최근 대중예술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것이 체질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아마 그가 살아 있었다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강대 철학과 87학번인 그는 80년대 학생운동 정파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인 CA(제헌의회파)에 잠시 관여하며, 교련 반대투쟁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단순참가자 수준 아니었을까 싶긴 합니다) 그는 나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음악을 하느라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과 부채의식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신해철을 보면, 80년대 후반 학번의 특징이 엿보입니다. 386으로 묶여지는 80년대 학번 중에서도 후반 학번들은 교복·두발 자율화 1세대입니다. 1970년대에도 ‘얄개’류의 교복 10대 문화가 없진 않았으나, `남자아이들은 록음악, 여자아이들은 오빠 부대', 심야 음악방송, 뮤직비디오, 패스트푸드 및 대중문화 향유 등 이른바 ‘10대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이 세대부터입니다. 그리고 이전 세대와 달리 딸들도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보내는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인 80년대 초반 학번이 출생자 수는 조금 더 많았지만, 학생 수로는 이때가 최대치를 기록했던 이유입니다. 또 1984년 무렵부터 대학에 상주하던 사복경찰이 물러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대학 분위기가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80년대 후반 학번들이 초반 학번에 비해 사고나 행동이 훨씬 더 자유분방한 데에는 이런 여러가지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그 결과, ‘강철’같은 의지나 비장함은 80년대 초반 학번들에 비해 다소 약하나, 학생운동권에 풍자나 위트가 더해진 것도 이런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신해철에게는 그런 세대적 배경도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10주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의 노래 가운데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인 ‘Lazenca, Save Us’(1997)입니다. 만화영화 주제가 작사·작곡을 의뢰받았는데, 동요풍이 아니라 아예 대작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신해철다운 모습입니다. ‘복면가왕’ 하현우(음악대장, 2016)의 노래가 가창력에서는 더 뛰어날 지도 모르나, 오리지널의 위상과 신해철이 풍기는 카리스마는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신해철이 떠난 지 2년 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인 2016년 12월3일, 그룹 넥스트가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라는 노래 가사가 국정농단 사태에 빠졌던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졌던 것이지요. 아마 그때 신해철이 있었다면, 그는 당연히 그 무대에서 크게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해철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아마 그는 지금 이 노래를 또 부르진 않았을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OT7kKqNR2c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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