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시끄러워 못살겠다”…툭하면 ‘민폐 시위’, 시민고통 가중
무분별한 이기적 시위 급증
일반시민 기본권 보장해야
이에 집회의 자유 만큼 다른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폭력 시위 적발 건수는 251건이다. 지난 4년 평균치 246건을 벌써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297건의 집시법 위반 사건으로 549명이 검거됐던 2021년을 넘어 최근 5년 내 최다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법 테두리에서 특정 사안의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3자나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고의로 야기하는 근거 없는 이기적 시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입점한 식당과 병원, 약국 등의 업주들은 로비를 점거한 채 대표 면담을 요구하는 노조로 매출 감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소음, 흡연 피해까지 3중고를 겪고 있다며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부 주민들도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수정을 요구한다.
문제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오너인 기업인의 집 앞에서 2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한 무리한 시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선 수정 요구에 대해 지난 23일 오후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은마아파트 주민 의견수렴 간담회에서 근거 없는 주장으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면 사법 조치를 불사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원 장관은 “한 세대의 1만분의 1밖에 안되는 지분을 가진 분이 앞장서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공금을 동원한 불법적 행동을 하고 있는 데 대해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이 주거지역 등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데시벨, 기타 지역은 주간 75데시벨, 야간 65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건수는 2만2854건으로, 일평균 62건을 넘어섰다. 피해 지역도 도심과 주거지역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인근 지역 시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1시간에 3번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해야 경찰 개입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1시간에 2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내고 후 나머지 5분간 방송을 꺼버리는 식으로 단속을 회피하는 편법도 동원하고 있다.
욕설이나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성 발언을 반복해 사생활을 해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시법에 따르면 ‘사람에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규제가 가능하지만 기준이 애매하고 자의적 해석 우려가 있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 대기업 사옥 앞에서 시위대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욕설과 장송곡이 사옥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까지 울려 퍼져 논란이 일어난 적도 있다. 기업인 집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며 삼겹살을 굽거나 술판을 벌인 적도 있다.
시위 참가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의견이 다른 유튜버들 간의 충돌도 시위 현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경찰의 소음 기준 유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6년 동안 형이 확정된 건 19건에 불과하고, 이중 대부분은 벌금 20만~50만원에 그치고 있다.
또한 시위가 예정된 종료 시각을 넘기거나 신고 장소를 벗어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아예 없어 경찰의 현장 통제에도 한계가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자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집시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기준 이하의 소음이라도 악의적 표현으로 신체·정신 장애를 유발할 정도라면 금지’하고 있다.
같은 당 박광온 의원안은 ‘소음과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거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음향 및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와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20여건의 집시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 속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와 달리 해외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데시벨, 야간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한다.
또 집회 및 시위를 위해 공공전기를 사용하려 할 때 관할 지자체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등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의 생활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을 침해 받지 않도록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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