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정밀아 인터뷰: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
2014년 1집 《그리움도 병》을 낸 후 3년마다 정규 앨범을 내고 있는 뮤지션 정밀아. 3집 《청파소나타》는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음악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 《리버사이드》는 ‘포크’라는 영역을 넘어서는 사운드와 세상의 고통을 위로하는 가사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뮤지션 정밀아를 만나 그의 새 앨범과 창작 활동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Q. 새 앨범 제목과 타이틀곡이 《리버사이드》입니다. 어떤 의미를 담은 음반인가요?
《리버사이드》는 제목 그대로 한강과 한강 주변을 걸으며 보고 듣고 채집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저의 이야기들로 채워진 앨범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마포대교를 건너다가 ‘생명의 전화’ 바로 아래 누군가가 국화꽃 다발을 매달아 놓은 것을 목격했어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풍광, 서울의 발전사와 엮인 ‘한강의 기적’ 등 한강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명의 전화와 국화꽃이 너무 강렬해서 저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꽤 무거운 이야기라 작업 기간 동안 심적으로 힘들었고, 작업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감정이 이어져서 털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앨범에는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에 기댄 마음〉이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기도하고 애도하고, 또 그러다가 자연이 내어주는 너른 품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물론 저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순간 바다, 바람, 풀과 나무, 하늘 등 자연으로부터 큰 위로를 얻었고,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좀더 의지를 했었습니다.
Q. 《리버사이드》에서 〈한강 엘레지〉는 유일하게 가사가 없는 곡입니다.
엘레지(Elegy), 그러니까 ‘비가’는 이별이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슬픔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리버사이드》의 마지막 트랙은 애도의 마음을 정중하게 표하며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가사도 조금 쓰긴 했는데, 말의 가벼움, 하찮음 같은 게 느껴졌어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더 필요한 태도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쓰던 가사를 엎어버렸습니다.
마포대교에서 국화꽃을 본 이후로 계속 마음이 무거운 상태였어요. 그 다리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이후 알게 됐고, 밤에 순찰선이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절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상상하게 됐지요. 한강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운동하고 여가도 즐기는 곳이라고 여겼는데, 그 안에서 그런 죽음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것이 제 안에서 큰 슬픔과 허무 같은 것으로, 또, 그것이 미농지(꽃잎처럼 얇은 종이)처럼 얇고 여러 겹으로 쌓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작년 2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다가 들른 성당에서 마침 미사가 열려 참관하게 되었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었어요. 순간, 아, ‘애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녹음을 하게 됐어요.
그 녹음 트랙을 〈한강 엘레지〉 시작에 사용했어요. 그리고 한강 다리 위 현장 소리가 오버랩 되도록 입혀서 묵언과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며 앨범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Q. 시대상을 관찰하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은 숙고 끝에 직접 목소리를 내셨다는 느낌이고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창작에서 아주 기본이고 그런 만큼 중요한데,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 중요했어요. 네 번째 앨범을 준비할 때 먼저 써둔 곡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리버사이드》의 내용들은 제가 노래할 수밖에 없었던 ‘무엇’이었습니다. 사회적 맥락에서든 음악적 성취든 그 전에, 이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야 내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내 안에 무겁게 들어차버린 이 감정을 노래로 만들고 불러재껴 날려 보내던가 해야겠다는 마음이랄까요.
이런 노래를 세상에 내놨을 때, 청자에게 어떤 작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가 앞서서 섣불리 갖지는 않아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되어서 세상을 바꾼다거나 하는 거대한 목표를 세워 두지 않아요. 다만 세상의 이런 부분을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받아들여 이렇게 기록하고 표현하고 있다, 까지가 창작자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요즘 발표되는 곡들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인데, 정밀아 님의 곡들은 플레이타임이 긴 편입니다.
원래 제가 긴 호흡인 것 같아요. 곡의 템포는 곡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사에 맞춰 적절하게 선택합니다. 가사는 일단 이런저런 것 생각 안 하고 실컷 써요. 그 다음 내용에 어울리는 것이 느린 템포이면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거예요. 대신 곡이 길어질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길어도 지루하지 않게 편곡에도 신경을 많이 써요. 몇 분짜리 곡이라야 한다는 제약을 굳이 두지는 않습니다.
Q. 3집 《청파소나타》의 청파 시절과 비교하면 이번 《리버사이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예전에 살았던 청파동은 복작복작하고 아기자기한 동네였어요. 한강이 가까운 지금의 동네로 오려고 했던 것은 서울 한가운데 그나마 넓고 광활한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선택했고요. 《리버사이드》 작업에 있어서는 이곳에서 본 강물이나 풍경의 전반적인 색감을 담는 사운드를 찾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녹음 스튜디오도 바꾸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헤비니스 음악(록, 메탈 등)의 성지인 곳이었어요. 지금까지보다 더 무겁고 폭과 깊이가 있는 사운드를 담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지 하던 참이었는데 스튜디오 선택을 잘한 것이지요. 모든 환경이 바뀌었으니 적응과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어려워서 더 즐거웠어요. 뭔가 흥미롭다 싶은 것에 이어 그 결과도 마음에 들었고요.
Q. 이번 앨범에서 ‘사운드’를 많이 신경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앨범을 하면서 많이 생겼어요. 《리버사이드》는 녹음은 물론, 믹스, 마스터링까지 새로운 곳에서 진행하면서 보고 느끼는 게 많았어요. 예전에는 전문 연주자들이 막 장비 이야기 할 때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욕심이 생겨서 이런 저런 장비를 바꿔볼까? 그런 고민을 부쩍 해요.
또, 어쩌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앨범을 내며 조금씩 프로듀싱 경험이 쌓였고, 좋은 기술을 가진 새로운 작업자들과 시설을 만나 제가 원하는 부분을 예전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찾을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다음 앨범에는 이런저런 것들도 해볼 수 있겠다 싶고요.
그래도 이번 앨범 역시 아주 어리바리했지요, 뭐. 작업자들에게 디렉팅도 참 장황하게 했던 것 같아요. “저녁 무렵 한강 강물 색깔 아시죠? 초록, 파랑, 검정도 아닌 그 색깔, 그걸 담아야 해요!”, “서강대교 위에 바람 엄청 불잖아요, 머리카락 막 날리고 그런 상황을 담아야 해요!” 그러고는 “무슨 말인지 알죠?” 하고. 그래도 잘 이해하고 작업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Q. 정밀아 님 주변의 공간, 시간, 사람이 노랫말이 되기까지 내면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일상을 자주, 많이 기록합니다. 자다가 깨서 떠오른 문장도 기록하고, 재미있는 일 이를테면 마트 캐셔 아주머니가 귀여운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도 기록하고, 소리도 잘 들어두고. 그렇게 보고 들은 것들을 채집·수집해요. 앨범에 담을 때는 곡의 쓰임에 맞게 추려내고 다듬고 또 새로이 쓰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또 피드백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 소중한 기회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음과 음 사이를 채우기 위해 그냥 소리 나는 말을 넣고 싶지는 않아요. 가사를 최대한 정확하게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치고, 거기서 한 번 더 고치려고 합니다.
제가 관념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싫어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게 어떤 음악이고 어떤 내용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구체적으로 세세히 다 알고 있고 싶어요. 그래서 내 음악을 말할 때 “별이 5개!”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광고처럼 자신 있고 명확하고 싶어요. 여러 번 불러도 말이 말 같기를,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때 왜 이런 말을 썼지” 후회하지 않고 “이런 말하길 잘했어” 할 수 있기를 바라요.
Q. 미술을 전공하셨던 경험을 음악을 만드는 데도 활용한다고 하셨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정말 끌어다(?) 쓰는 부분이 많은데, 우선은 미술을 하면서 현상을 다각적으로, 입체적으로, 여러 감각, 그러니까 공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달까요. 색감, 색깔, 바람의 세기, 난간의 차가운 느낌까지 제 안에 들어오는 모든 걸 최대한 기억하고 활용하여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물론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적인 것을 두드러지게 채집하기는 해요.
또 대학에서 수업 시간에 했던 '작가 연구'도 도움이 됐어요. 어떤 작가가 초기에는 이런 주제/화풍/경향이었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래서 어떤 작품으로 진화하고 확장되는지 등을 연구하는 거예요.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인생 전반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요. 제가 음악 작업을 하는 데도 이 공부들을 적용해 봅니다. 다음 작품을 연구할 때 틀을 만들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요. 지금도 덕후처럼 파고드는 창작자들은 주로 미술 작가들이에요.
Q. 어떤 작가들을 좋아하시나요?
학생 때는 고 박이소 작가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양혜규 작가(설치/시각예술), Peter Doig(회화), Mariam Sitchinava(사진)을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아주 많아요.
Q. 음악인 정밀아와 인간 정밀아는 어떤 관계일까요?
음악을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지요. 그 가운데 실제로 음악 작업을 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에는 정말 음악만 생각하고요. 점점 더 경계가 흐려지고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이 ‘내가 없다/나와 멀다/나와 다르다’ 등의 방향이 아니에요. 저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음악을 하지는 않거든요. 예전 언젠가 “왜 음악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점점 더 나 같아지려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답을 여기에 적용해도 되겠네요. 나의 음악 안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다른 내가 뒤섞이고 녹아들겠죠. 추상적이지만, 그리하여 먼 훗날 그냥 그 음악이 정밀아이고, 정밀아가 그 음악이 된다면 그것도 참 좋은 결말이겠다 싶어요.
Q. 공연 소식 등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앨범 발매 공연은 발매 후 2~3달 안에 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진행하려고 합니다(그렇지만 상반기에는 합니다). 대신 2월에 기타 하나와 저의 목소리만으로 꾸려지는 소규모 어쿠스틱 솔로 공연을 대구/통영/속초에서 열었고,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이 소규모 어쿠스틱 솔로 공연 시리즈는 〈춥지 않은 겨울밤〉이라는 타이틀로 매년 한겨울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2015년부터 이어 온 초여름과 초겨울 정기 단독 공연도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주세요. 저는 정성껏 즐겁게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인터뷰 이주호, 신태진, 이은서
사진 신태진, 금반지레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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