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2년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눈물보다 먼저 이상한 감정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슬퍼야 하는 게 맞는데 마음 한구석이 자꾸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죄스러워서 애써 눈물을 짜내야 했다.

결혼 삼십 년, 겉으로 보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다. 집도 장만하고 작은 건물도 세우고 딸 둘 다 시집보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나를 짓눌렀던 건 남편이 아니라 시댁이었다는 걸, 남편의 장례식장에 앉아서야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됐다.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삼십 년을 살았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는 매주 일요일마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늘 조용히 밥만 먹었고, 상을 차리고 치우는 건 내 몫이었다. 명절이면 시댁 형제들 옷가지까지 챙겨야 했고,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며칠씩 이어졌다.
남편에게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그냥 좀 참아라, 어머니가 원래 그런 분이니 이해해라.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더 외로워졌다. 남편이 앓기 시작하고 나서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병수발을 전담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장례식장에서 유언장이 낭독됐다
발인 전날, 온 가족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눈물바다가 된 그 자리에서 변호사가 남편이 남긴 유언장을 꺼냈다. 고인이 직접 작성한 유언장이라며 낭독을 시작했다.
재산 이야기가 먼저 이어졌다. 남편은 자신의 몫으로 남은 재산과 건물을 전부 내 앞으로 정리해 두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언장 끝자락에는 시댁 쪽 형제들에게 앞으로 시어머니를 함께 부양하는 책임을 나눠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나 혼자 짊어졌던 짐을, 남편이 떠나면서 처음으로 나눠준 셈이었다.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다
유언장 낭독이 끝난 뒤,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시댁 형제들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장례를 다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분명 컸지만, 그 슬픔 아래에는 오랫동안 억눌러온 것들로부터 풀려났다는 안도감이 함께 있었다. 이제야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