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 판박이 논란인데 '문제 유출' 가능성도 있나요?[궁즉답]
“합숙기간 중 휴대전화·전자메일 모두 차단…유출 불가”
학원강사, 수능검토위원 통해 모의평가 문제 빼낸 일도
이데일리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담당기자들이 상세하게 답변하는 ‘궁금하세요? 즉시 답해드립니다(궁즉답)’ 코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Q: 지난 17일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이 입시학원 모의고사 문제와 유사하다는데 수능 문제가 유출될 수도 있나요?
통상 수능 때마다 △출제위원 300명 △검토위원 200명 △보안요원·의사·간호사·관리요원·생활요원 200명 등 약 700명이 39일간 외부와 단절된 합숙 생활을 합니다. 이 기간에는 외출은 물론 휴대전화·전자우편이 모두 차단되고, 문제 출제를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때도 보안요원이 참관한 가운데 이뤄집니다. 말이 합숙이지 사실상 ‘감금’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죠.
원래 합숙 기간은 34일이었지만, 2017년 수능 전날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시험이 1주일 연기된 적이 있었죠. 그 이후부터 국어·수학·영어 등 모든 영역의 문제지를 두 세트씩 만들기 시작하면서 감금 기간이 늘었습니다. 수능 도중에 지진이 발생, 시험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예컨대 3교시 때 지진이 발생, 시험이 연기되면 이미 시험을 치른 1·2교시 성적은 유효 처리되고 지진으로 중단된 3교시만 무효 처리한 뒤 이후 시험 재개 시 예비문항을 사용합니다.
수능 출제과정에선 워낙 철저하게 보안이 지켜지기에 평가원은 수능 문제의 외부 유출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논란이 된 영어 23번에는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Too Much Information) 79페이지에서 발췌한 지문이 출제됐습니다. 그런데 수능 직전 한 대형 입시학원 스타강사 A씨가 제공한 모의고사에서도 같은 지문이 등장한 겁니다. 실제 수능에선 지문을 읽고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을 찾는 문제가 출제됐지만, 해당 모의고사에선 문맥상 낱말의 쓰임이 적절치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평가원은 지문은 같지만 문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연의 일치”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수능 이의신청 게시판은 이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제기됐습니다. 해당 지문을 접한 뒤 수능을 본 학생들이 있다면 점수를 얻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죠.
교육계 일각에선 해당 모의고사 문제를 낸 출제위원(현직 교수·교사 등)이 실제 수능 출제진에도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수능 출제진은 시험 34일 전부터 합숙에 들어가는데 그 직전에 해당 모의고사를 출제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A 강사가 운영하는 모의고사 출제진과 수능 출제·검토위원 간 연결 관계입니다. 1년에 수백억 원을 버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강사들은 개인이 관리하는 모의고사 출제진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평가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중에 나와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이나 학원 모의고사 출제진은 수능 출제진 구성 때 배제하고 있다”며 “학원 모의고사 출제진이 수능 출제진에 포함되거나 학원강사와의 연결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다만 이런 반론을 인정한다고 해도 관련 선례가 있어 평가원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예컨대 2016년 경기도의 한 고교 국어교사 박모씨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박씨는 경찰에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인 송모씨를 만나 구두로 시험문제를 전달받아 이를 학원강사인 이모씨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당시 강남·목동의 유명 입시학원에서 국어강사였던 이씨는 이를 전달 받아 본인 수업 중에 특정 지문이 출제된다며 학생들에게 이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죠. 수능 출제진 선정 때 주의를 기하고 출제·검토위원들이 감금 생활을 한다고 해도 한 두 단계를 거치면 문제 유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교육계에서 이런 의심이 나오는 이유는 해당 지문이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연계와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EBS 교재·강의 연계 정책으로 수능에서 EBS 교재에 실린 지문과 관계된 지문이 출제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캐스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 다른 부문이 교재에 실렸다면 애초에 큰 논란이 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죠. 하지만 해당 저서는 EBS 교재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학원에선 79페이지 지문을 콕 집어 모의고사에 출제했고 수능에서도 한 문장만 다른 흡사한 지문이 나왔습니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수능에서 학원 모의고사와 같은 지문이 출제될 확률은 벼락에 맞을 확률만큼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평가원은 이번 수능 직후 제기된 이의신청 663건에 대한 심사 후 29일 정답을 확정합니다. 현재 수험생·학부모들 사이에선 수능 영어 23번에 대한 ‘전원 정답’ 또는 ‘전원 오답’ 처리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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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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