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처음 본 건 국립발레단 무대였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터지는 박수와 환호.
발레 무대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라 바야데르’ 속 전사 솔로르 역을 맡은 무용수는 가볍게 뛰었고, 객석은 숨죽인 채 시선을 모았다. 무대를 가르며 날아오른 그는, 김기민이었다.

올해로 서른한 살.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다. 전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위치다.
김기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학 중이던 열아홉 살에 마린스키에 입단했다.

이곳은 러시아 고전 발레의 본산이자, 300명 가까운 단원 가운데 외국인은 단 두 명. 동양인은 김기민이 유일했다.

입단도 쉽지 않았다. 마린스키는 오직 부속 발레학교 출신만 선발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그 전례마저 흔들어놨다.

단장실에서는 “이런 친구를 놓치면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입단 두 달 만에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순수한 실력만으로 마린스키의 ‘왕자’가 됐다.

놀라운 건 그가 흔히 말하는 ‘발레 체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유연하지 않은 관절, 이상적인 발목 라인도 없었다. “발레를 하면 돈 버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실 문이 닫히면 몰래 들어가 연습했고, 입단 초창기에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본기를 반복했다.

공연을 앞두고 부상을 입었을 땐, 감자 껍질을 붙이고 보드카를 뿌리며 붓기를 가라앉혔다. 무엇이든 해볼 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적인 무용수가 됐고, 마린스키에서는 그의 이름만으로 공연장이 매진될 정도다.
“춤을 추면서 박수를 받은 게 정말 오랜만”이라는 동료 무용수의 말처럼, 그의 무대는 늘 특별하다.

무대 위 그는 테크닉보다 해석에 집중한다. "점프 연습보다 점프 전후 동작을 더 연습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덜어낸 동작은 아름답지만, 감정을 품은 동작은 오래 기억된다. 김기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레가 ‘몸으로 전하는 언어’임을 증명하고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별한 사연을 꺼냈다. 평생 그의 공연을 따라다닌 프랑스인 할머니 팬.
목발을 짚고도 객석에 앉았고, 해외 공연에도 빠짐없이 나타났던 이 팬이, 생을 마감하며 그에게 유산을 남긴 것이다.
그 유산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좋은 데 쓰고 싶어서 고민 중이에요. 제게는 너무 큰 선물이니까요.”
할머니의 응원은 그가 발레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고, 이제 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질 예정이다.

김기민은 지금도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강아지 산책을 마친 뒤 리허설장으로 향한다.
루틴은 슬럼프를 견디게 해줬고, 무대 위에선 늘 ‘어제보다 나은 솔로르’가 되기 위해 자신을 다듬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웠다는 그.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김기민의 춤에는 그런 진심이 배어 있다. 무용수로서 가장 아름다운 자세는, 결국 무대 아래에서의 태도라는 걸 그는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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