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충전의 발전과 앞으로 나아갈 길
어떤 기술들은 생각보다 갑자기 우리 곁에 빨리 자리를 잡습니다. 무선 충전도 그 중 하나죠. 제가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를 처음 마주했던 것은 2013년이었습니다. 전선을 꽂지 않고 전기를 흘려 보낸다는 것은 마치 영화 같은 일이었고,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20213년에 출시된 옵티머스 G 프로
그런데 LG전자는 일찌감치 무선 충전 기술을 옵티머스 G 프로, 그리고 넥서스 4 등의 스마트폰에 넣어서 상용화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쓰고 있는 것처럼 전용 충전 패드에 올려 놓으면 충전 표시가 뜨던 장면이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무선 충전 기능이 없는 아이폰4에 충전 코일이 들어있는 케이스를 씌워 충전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케이스는 조금 투박했지만 책상 위 충전 패드에 대충 얹어 놓으면 자석으로 찰싹 붙어서 수시로 충전되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편리했습니다.
자석을 사용하는 애플의 액세서리 규격 맥세이프
이런 경험이 불과 1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아이폰의 맥세이프를 즐겨 쓰고, 자동차에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안전하게 올려 둘 수 있는 무선 충전 패드를 둡니다. 쇼파나 침대, 그리고 식탁 등 가구에도 무선 충전 패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재 가장 많이 쓰는, 일반적으로 ‘무선 충전’이라고 부르는 기술은 ‘Qi 방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치’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기운 기(氣)’자를 중국어로 읽은 이름입니다.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WPC, wireless power consortium)가 2008년에 만든 무선 충전의 표준 규격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옵티머스 G 프로와 넥서스 등을 시작으로 지금 쓰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은 바로 이 Qi 방식의 ‘자기 유도’를 이용합니다.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Qi 방식 기술을 이용해서 무선으로 기기를 충전하지만 이렇게 아무 곳에서나 쉽게 충전할 수 있도록 기술이 통일될 때까지는 여느 기술들과 마찬가지로 ‘표준’ 혹은 ‘기술 주도권’ 다툼이 있었습니다.
자기 유도는 코일과 자성이 전기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원리를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동그랗게 말린 코일에 전기를 흘리면 자기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코일을 대면 자기장이 흘러갑니다. 이를 다시 전기로 되돌리면 케이블 없이도 무선으로 전기를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전자기 유도라고 부르는 물리 현상을 이용하는 것인데, 코일끼리 밀리미터 단위로 가까이 맞붙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은 충전 거치대에 올려두는 방식을 많이 쓰지요.
애초 이것보다 더 나은 기술로 고민됐던 경쟁 기술은 자기 공명 방식입니다. 기본적으로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은 비슷한데 자기 공진 방식은 특정 주파수의 자기장을 만들어서 주변에 쏘고, 충전할 기기는 해당 주파수에만 반응하는 수신부를 통해 전자기를 흡수합니다. 아마 일상에서 편리하기는 자기 공진 방식이 더 편리할 겁니다. 충전기에 기기를 올려 두지 않아도 근처에만 있으면 저절로 기기가 충전되니 말이지요.
하지만 아무 기기나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자기 공명 무선 충전은 충전을 허용하는 암호화가 필요하고, 전자파에 대한 일상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충전 신호는 곧 전자파이고, 그 강도에 따라 사람에게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죠. 물론 전자파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요소이긴 합니다.
반면 자기 유도 방식은 훨씬 간단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아주 가까운 곳만 충전된다는 것이 약점일 수 있지만 제품 측면에서는 제품을 충전기에 맞붙이는 것 자체가 충전에 대한 확실한 의사 전달 방법이기도 하고, 전력의 손실도 줄일 수 있습니다. 기기적으로도 훨씬 단순해지겠지요. 결국 많은 기업들이 이 자기 공명 방식을 고민하는 동안 현실은 2~3만원짜리 충전 패드와 함께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쓰고 있는 자기 유도 방식이 기술적 대세가 됐습니다.
자기 유도 방식도 표준을 둔 경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Qi 외에 ‘파워매트(PMA)’ 방식도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기술 원리는 같지만 비즈니스의 주도권 다툼에 가까웠습니다. 영리단체였던 Qi의 세계무선충전협회와 기술 그 자체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비영리단체 PMA는 각자의 방법으로 기술을 키워 나갑니다.
하지만 PMA는 여러 제조사들이 협회에 참여하면서 기술을 키워나간 Qi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말기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글머리에 이야기했던 아이폰 4에 코일 케이스를 씌워서 쓰는 것이 대표적이 예였지요. 결국 이 PMA는 자기 공명 방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A4WP(Alliance for Wireless Power)과 기술을 통합하기로 하면서 잠깐 쉬어가는 중입니다. 언젠가 다시 자기 공명 방식 무선 충전 기술을 통해 돌아올지 모를 일입니다.
2017년에 발표됐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출시되지 못한 애플의 에어파워
현재의 무선 충전은 Qi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금 묘한 방식이 더해집니다. 바로 애플의 맥세이프입니다. 애플은 아이폰 X부터 무선 충전을 도입했습니다.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무선 충전의 경험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적으로 ‘에어 파워’가 있었지요.
무선 충전을 하면서 묘하게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기기를 두는 위치입니다. 기기와 무선 충전기에는 전자기를 만들어서 주고받는 코일이 있고, 두 코일은 가까이 맞붙어야 합니다. 중심이 정확히 맞아야 충전 효율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기기마다 코일을 두는 자리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충전이 시작되는지 살펴야 합니다.
애플은 이 위치를 신경 쓰지 않고 큼직한 충전 패드 위 어느 곳에든 아이폰을 올려두면 최적의 상태로 충전되는 기술을 연구했고, 실제 양산 단계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출시를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그 대안으로 아이폰에 ‘맥세이프’를 도입합니다.
맥세이프 규격을 지원하는 벨킨의 충전기
맥 세이프는 단순히 보면 Qi 방식 무선 충전 접접에 강력한 자석을 더한 겁니다. 정확한 충전 위치를 잡아주고, 충전 거치대만이 아니라 케이블을 통해서 기기 뒷편에 붙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력이 세서 자석식 거치대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붙기도 합니다.
iOS17에 도입된 아이폰의 스탠바이 모드
간단하고 단순한 원리인데, 여기에 애플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자석 커넥터 이름인 맥세이프라는 익숙한 이름을 붙여서 더 잘 와닿습니다. 아예 애플은 iOS17에서 스탠바이 모드를 도입하면서 충전중에 간단한 정보를 전달하는 탁상 시계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냥 자석만 붙은 것은 아니고 내부에 간단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통신 모듈이 붙기 때문에 맥 세이프 충전기를 알아채거나, 케이스의 색깔을 표시하기도 하고, 심지어 연결된 액세서리의 펌웨어 업데이트도 할 수 있습니다.
맥세이프는 당연히 애플이 만든 규격이고, 애플의 브랜드지만 그렇다고 아주 폐쇄적이지는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충전에 대한 기술이 Qi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보면 Qi를 애플 기기에 최적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확한 접점을 찾고, 거치대에 단단히 붙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최근 무선 충전기들은 꼭 맥세이프가 아니어도 맥세이프와 같은 크기의 자석 충전 패드를 넣곤 합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기기나 맥세이프 이전의 아이폰들도 이 충전기에 척 붙도록 하는 자석 링이나 전용 케이스가 나옵니다. 사실상 맥세이프가 비공식적으로 무선 충전의 다음 단계가 된 셈입니다.
사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파워매트 충전기도 정확한 위치를 위해서 자석으로 붙는 위치를 잡아주긴 했으니 애플이 처음 만든 기술도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맥세이프는 적절한 기술들을 잘 조합했고, 안정적으로 달라붙는 강력한 자석 패드와 통신 모듈을 통해서 액세서리의 경험을 높여 주었습니다. 적절한 브랜딩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누구의 것이냐를 떠나서 이용자 입장에서는 자석이 달린 무선 충전 패드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이 된 셈입니다.
좋은 기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도록 표준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애초 무선 충전 기술을 만든 WPC도 맥세이프의 자석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바로 요즘 주목받는 Qi2, Qi v2.0입니다.
Qi가 무선 충전의 가능성을 현실화했다면 Qi2는 현실의 문제를 다시 기술로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다르지 않지만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맥세이프와 같은 자석, 그리고 15W 이상의 고속 충전입니다. 사실 지금 나와 있는 맥세이프와 거의 같고, 근래의 Qi 충전 기기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Qi가 처음 제시됐던 2008년에는 5W면 기기 충전에 충분했지만 배터리가 커지고 충전속도가 예민해지면서 7.5W를 넘어 15W까지 충전 속도가 높아졌습니다. Qi2는 이 속도를 기본으로 하고, 향후 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두었습니다.
자석은 사실상 Qi2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속 무선 충전이 매끄럽게 이뤄지려면 코일과 코일이 정확히 맞닿아야 합니다. 자석은 정확한 위치를 잡아주고,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에 전송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충전 속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전기 에너지의 손실은 대부분 열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에 손실을 줄이면 발열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열이 줄어들면 배터리는 다시 충전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충전에 대한 적절한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Qi2는 맥세이프와 별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사실 애플은 WPC가 Qi2 표준을 만드는 데에 맥세이프의 기반 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결된 기기간에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것을 제외하고 자석 접촉과 충전에 대한 부분은 사실상 같다고 보면 됩니다. 기기간 통신은 아이폰에 특정 케이스를 씌운다거나, 무선 충전 보조배터리 등을 연결할 때 주로 쓰는데 이는 직접적인 충전 기술이 아니라 액세서리에 대한 부가 기능에 가깝기 때문에 표준화에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편리하게 쓰고 있는 자석과 무선 충전의 결합은 이제 곧 공식적으로 모든 무선 충전기와 모든 스마트폰에 적용될 겁니다. iOS17이 깔린 아이폰을 가로로 충전하면 탁상시계처럼 쓸 수 있는 스탠바이 모드도 많은 스마트폰에 기본 기능, 혹은 앱으로 구현될 수 있겠죠.
무선 충전은 이제 스마트폰의 가장 중요한, 그러면서 당연한 일상 기술이 됐습니다. 그리고 맥세이프의 경험과 Qi2 표준으로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듯 합니다. ‘무선으로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술은 가치가 있지만 여기에 자석을 붙이고, 소프트웨어를 더하면서 기술이 경험으로 더 큰 가치를 갖게 되는 게 무선 충전에서 보이는 기술 흐름입니다.
여전히 무선 충전은 더 나은 효율과 안정성, 그리고 거리의 제약을 뚫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근처에만 있어도 충전할 수 있는 자기 공명 방식도 여전히 개발중이고, 그 활용 범위도 스마트폰을 넘어 PC부터 전기차까지 고려되고 있습니다. 충전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이 결국 무선 충전 기술의 가야 할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