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쓰레기' 버리고 다시...렘브란트 명작까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파리의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
앙드레 부부의 명작 수집...300여점
유명한 렘브란트 '엠마오의 순례자'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도 꼭 감상하길
경제 침체로 미술시장이 부진한데도 아트페어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열리는 아트페어가 무려 72개에 달합니다. 한 달 평균 6개가 열리니 정말 대단하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2030세대들의 관심과 구매력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인데요. 꼭 사지는 않더라도 아트페어를 방문하면서 요즘의 트랜드와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접하는 것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좋은 자극이 되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쓸수 있는 비용 범위 내의 ‘나의 작품’을 만난다면 컬렉터가 될 수도 있고요. 작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스토리를 써가는 행위입니다. 작품이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나의 취향과 방향성이 구체화되는 거고요.
그런데 여러 작품을 구매한 분들의 고민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작품을 사다 보니 집과 사무실 벽은 이미 포화 상태고 더 이상 걸 공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됩니다.
오늘은 19세기 파리의 컬렉터 부부 넬리 자크마르(Nélie Jacquemart, 1841~1912)와 에두아르 앙드레(Édouard André, 1833~1894) 부부가 어떻게 그들의 컬렉션을 형성해갔고 컬렉션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박물관으로 문을 열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초기엔 '아름다운 쓰레기' 구매
그들의 박물관이 있는 몽소(Monceau) 구역은 1860년에는 파리 경계에 인접한 마을이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의 지시 아래 오스만 남작은 중세식의 좁고 비위생적인 골목길을 없애고 파리를 완전히 뒤집어엎었는데요. 이때 지금도 파리에 가면 만나는 많은 대로가 만들어지고 규칙적으로 구획된 거리를 따라 파리의 전형적인 스타일의 근대적인 아파트들이 지어졌습니다.
이 때 파리는 3,400㏊(34㎢)였던 면적이 7,802㏊(78㎢)로 확장됩니다. 두 배 정도로 커진 셈입니다. 몽소 구역도 이 때 편입되었고 나폴레옹 제정 하의 귀족들이 이 곳에 대저택을 많이 지었습니다. 은행가 가문 출신인 에두아르 앙드레가 자신의 저택을 지은 것도 이 때입니다. 건물은 건축가 피에르 파랑(Pierre Parent)의 설계에 따라 오스만 대로변에 1868년에서 1875년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고전주의 양식의 저택은 건축물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티켓 오피스를 지나 크지 않은 정원을 가로질러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회화방과 대살롱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대살롱의 왼쪽으로는 부부의 침실과 서재, 사무실 등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음악살롱이 나옵니다. 17세기와 18세기 그림이 전시된 음악살롱을 지나가면 겨울정원과 흡연실, 아름다운 계단이 나오고 2층의 전시실로 이어집니다.
이 박물관의 컬렉션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1881년에 에두아르는 화가 넬리 자크마르와 결혼합니다. 부부의 초기 컬렉션은 보석이나 예쁜 공예품, 19세기의 풍경화, 초상화 등이었다고 합니다. 컬렉터들이 하는 우스개로 ‘아름다운 쓰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사고 보니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어떻게 처분할 지 난감한 거죠. 자크마르 앙드레 부부는 과감하게 초기 컬렉션 작품들을 되팔아버립니다. 그리고 1887년부터 본격적으로 걸작들을 찾아다니며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루브르 미술관을 보완할 만큼 탁월
이탈리아뿐 아니라 이집트,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그림, 조각, 천장화, 벽난로, 태피스리 등을 사들였습니다. 이렇게 사들인 작품이 우첼로, 만테냐, 보티첼리, 벨리니, 반 다이크, 렘브란트, 티에폴로 등 300여 점에 이릅니다. 1894년 에두아르가 사망하고 난 뒤에도 넬리의 작품 구입은 1912년 그녀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됩니다. 프랑스 학사원에 기증된 부부의 저택과 컬렉션은 넬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13년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으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은 개인의 컬렉션이 국가 기관에 기증되어 공공이 향유할 수 있게 된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부부가 열정적으로 수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걸작들은 루브르의 이탈리아관을 보완해줄 만큼 탁월합니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 있는데요. 1층의 북쪽 가장 안쪽에 전시되어 있는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순례자들>(1629)입니다. 티치아노, 베로네세 뿐 아니라 카라바조, 루벤스 등 많은 화가들이 다룬 주제이고 렘브란트는 이 주제를 다룬 그림을 10여 점 그릴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미술감상에 놓쳐선 안될 작품들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에 있는 이 그림만큼 누가복음의 일화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그림도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가 길을 가다 제자 둘을 만나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던 제자들은 빵을 뜯는 예수의 손에서 못자국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순간 제자들의 눈은 “열리고” 예수의 부활과 현성용(顯聖容 예수가 거룩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일컫는 말)의 신비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렘브란트는 세부적인 묘사를 과감히 생략하고 화려한 색깔을 쓰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알아본 순간의 제자들의 공포와 경외심을 놀랍도록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로 세로 40㎝ 남짓의 작은 그림인데다 북향의 어두운 서재였던 방에 전시되어 있다 보니 직접 보아도 그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기적처럼 예수를 알아보는 제자들의 ‘눈뜸’이라는 주제에 더할 나위없는 전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 1696~1770)의 프레스코화도 놓칠 수 없는 걸작인데요. 부부는 1893년 이탈리아 여행 중, 베네치아 지역에 있는 빌라 콘타리니(villa Contarini)에서 프레스코화를 보고 구입합니다. 프레스코화는 젖은 회벽에 안료를 발라 마르면서 완성되는 작품이므로 조심스럽게 벽을 뜯어서 파리로 운반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요. 작품이 파리로 와서 설치되는 데는 8개월여가 소요되었죠.
원래는 하나였던 프레스코화는 1층 카페 천장화와 계단 위 2층 벽면 장식화로 따로 설치되었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 중 하나라는 화려한 계단을 올라가면 16세기 프랑스 역사의 한 장면이 화사하게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프랑스 왕 샤를 9세가 갑자기 서거하자 당시 폴란드에 있던 동생 앙리 3세가 급히 프랑스로 가면서 베네치아에 들렀고 콘타리니 총독이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베네치아의 풍광을 뒤로 하고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른쪽 소년의 튀어나온 발이나 위험을 알리려는 듯 뛰어나오는 흑인 소년, 앞쪽의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지금이라도 움직일 듯 생생함을 느끼게 합니다.
두번째 프레스코화는 1층 카페 천장에 있는데요. 관람을 마치고 나가기 전에 카페에 꼭 들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천장화와 세 벽면에 전시된 18세기의 우아한 태피스리를 보다 보면 관람의 피로가 다 풀리실 겁니다.
작품을 수집한다고 모두가 다 훌륭한 컬렉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시할 아름다운 공간을 갖는 것도 쉽지 않고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와 유지를 하는 기관도 있어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자크마르와 앙드레 부부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 덕분에 관람객들은 19세기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고대부터 19세기에 이르는 걸작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요. 파리에 가시면 잊지 말고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