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 2개가 실린 폭격기가 추락해 ''도시 자체가 날아갈 뻔한'' 추락 사고

배경 – 언제나 비상발령 ‘핵무장 B‑52’ 비행 중

1961년 1월 24일, 미 공군의 B‑52G 전략폭격기 ‘Keep 19’는 미 전략공격사령부의 ‘Cover All’ 작전의 일환으로, 수소폭탄 2기를 탑재한 24시간 공중대기 임무 중이었다. 폭탄은 각각 **3.8메가톤(Yield)**급 Mark 39 핵무기였다. 당시 군 당국은 핵전력을 상시 대기시키는 전략이 ‘냉전 억지’를 위한 핵심 정책이라 판단했다.

사고 발생 – 급유 후 연료 누출, 기체 파괴

야간 비행 중, 폭격기는 공중급유 도중 연료 누출이 발생했고, **37,000파운드(17톤)**에 이르는 연료가 3분 만에 유실됐다.

이제 기체는 균형을 잃었고, 귀환 도중 고도 9,000피트(2,700m) 지점에서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다.

조종관은 즉시 탈출 명령을 내렸고, 승무원 5명이 무사 탈출, 3명은 사망했다 .

핵폭탄 낙하 – 두 기 모두 추락 후 분리

비행기가 공중에서 해체되면서 핵폭탄 2기는 강하하여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지로 떨어졌다.

기폭장치 1: 낙하산이 펴져 나무에 걸렸고, 완전한 안전 모드 상태였다.

기폭장치 2: 낙하산이 터지지 않았고 고속으로 강하해 땅에 박혔지만, 안전장치가 일부 작동해 완전 폭발은 피했다.

폭발 임박 – 단 한 개 버튼이 재앙을 막았다

조사 결과, 폭탄 2호는 6개 중 5개의 안전장치가 해제되었다.

만약 마지막 저전압 안전 스위치 하나만 더 작동했다면, 기폭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50배, 즉 3.8메가톤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

피해 상상 – 17마일 반경 도시는 완전히 사라질 뻔했다

만약 폭발이 현실화했다면, 반경 17마일(약 27km) 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졌을 것이다.

방사능 낙진은 워싱턴·필라델피아까지 도달해 수백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며,

지금의 수도권 규모 도시 전체가 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회수 작업 – 8일간 펼쳐진 핵폭탄 수색 작전

미국 핵안전팀은 즉시 출동해 8일간 현장에서 하나의 폭탄을 완전 회수, 다른 하나는

지름 약 180피트(55m) 깊이로 땅속에 박혀 위치만 확인된 채 뇌관만 제거됐다.

나머지 부품들은 지하 깊숙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사후 조치 – 안전장치(PAL) 도입의 계기

이 사건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비상 핵전력 상시 순환을 줄이고,

핵무기가 인식 암호(PAL) 없이는 작동 불가능하도록 하는 안전장치 정책을 마련했다.

골즈버러 사고는 핵무기 안전 시스템의 획기적 전환점이 됐다 .

기술적 분석 – ‘핵폭탄은 멍청하다’

핵무기의 안전장치는 사람이 직접 조종해야만 해제된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낙하중 일부 자동장치가 활성화되었고,

전문가들은 “폭탄이 사람 의도 없이 모두 정상 작동했다”는 점에서

“정말 위험천만한 사고였다”고 평가했다 .

핵폭탄 2발의 행운, 시스템 전환의 기폭제

골즈버러 사고는 단순한 군사 사고가 아닌,

핵전력 운용 방식 전환을 이끈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한순간의 실수’가 세 도시를 지울 수 있음에도, 마지막 장치 하나가 재앙을 막았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핵안전 장치를 강화했으며,

세계는 ‘핵전력은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루빨리 모든 핵무기에 **인식 암호(PAL)**를 적용해야 할 이유가

이 사고로 인해 더욱 명확해졌다.